▲ 박근혜 전 대표가 지난 5일 보건복지부 국감에서 전재희 장관에게 질의를 하고 있다.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차기 대권주자들 역시 역대 국감에서 적지 않은 활약을 펼치며 잠룡으로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해왔다. 그렇다면 과연 대권주자급 정치인들은 국감에서 어떤 면모를 보여 왔을까. 이들의 역대 ‘국감성적표’를 들여다보았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정치권에서도 알아주는 국감 ‘성실파’다. 거물급 정치인임에도 초선 의원 못지않은 열의로 국감에 임하는 박 전 대표는 법률소비자연맹 ‘국감 모니터단’에서 매해 선정하는 ‘국감 우수의원’에 여러 차례 선정된 바 있다. 법률소비자연맹 관계자는 “박근혜 전 대표의 경우 현실성 있는 질의와 다양한 대안 정책을 내놓아 해마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장에서 직접 국감을 지켜보는 여러 모니터의원들이 박 전 대표를 우수의원으로 추천하곤 한다”고 설명했다.
박 전 대표는 야당 대표 시절인 17대 국회에서도 국감 준비에 대해서만큼은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당 안팎의 모든 조직을 동원해 국감을 지원하도록 독려하며 국감기간 중에는 국감에만 총력을 기울이도록 주문했다고 한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박 전 대표의 활약은 돋보였다. 보건복지가족위원회(보건복지위) 소속인 박 전 대표는 2008년 국감장을 거의 ‘풀타임’으로 뛰었다. 박 전 대표가 국감장을 항상 지키는 탓에 박 전 대표의 ‘후배급’ 의원들 모두가 자리를 지켜 출석률이 크게 높아졌다는 이야기가 나돌았을 정도. 당시는 멜라민 파동으로 한창 시끄럽던 상황이었다. 박 전 대표는 전재희 보건복지부 장관 및 관련업계 전문가들을 상대로 날카로운 질문으로 던지는가 하면 자신이 생각한 정책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은 올해도 반복됐다. 지난 5일 보건복지위 국감장에서 박 전 대표는 복지부가 추진하는 약가제도 개선안의 객관성 부족에 대해 지적하며 해외의 사례를 들어 대안으로 내놓기도 했다.
박 전 대표가 국감장에서 단지 질의에 머무르지 않고 대안정책까지 제시할 수 있는 배경은 꼼꼼한 준비성 때문이다. 박 전 대표는 국감 전에 관련업계의 전문가들을 만나 자문을 얻고 충분한 공부를 한다고 한다. 박 전 대표실 관계자는 “사전에 꼭 필요한 부분에 대해 주제를 직접 정하고 질의 응답지를 꼼꼼하게 확인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2005년 국감장에서는 ‘난감한’ 상황을 겪은 적도 있었다.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국방위원회와 문화관광위원회, 교육위원회 등 주요 상임위 국감마다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인 박 전 대표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문제와 육영재단 비리의혹, 정수장학회 설립과정 등에 대해 따지고 들었다. 국방위 국감에서는 임종인 의원으로부터 면전에서 “친일군인이었던 박정희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다음 18년 집권하면서 군은 물론 정·관계 요직에 친인군일들을 두루 중용함으로써 ‘친일천하’를 만들고 이후 친일청산을 계속 봉쇄했다”는 이야기까지 듣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문화관광위원회에서는 “박근혜 대표를 증인으로 불러내야 한다”는 정청래, 민병두 의원 등의 요구에 곤욕을 겪기도 한 바 있다. 국감장에서는 이렇듯 의원 신분임에도 때로 피감자처럼 ‘공격’받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 정몽준 | ||
정 대표는 탈북자 정책에 관한 관심이 높아 지난해 통일부 국감에서는 탈북자 대책마련을 촉구하며 김하중 당시 통일부 장관을 질책하기도 했다. 18대 국회 들어서 그가 대표 발의한 법률안 역시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이었다.
그러나 정 대표는 역대 국감에서 감사를 받는 대상으로 선 일이 있었다. 지난 2002년 무소속 의원 시절에는 현역 의원이면서도 월드컵 조직위원장 자격으로 국감에 출석해 의원들의 매서운 공격을 받은 바 있다.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은 범여권의 대선 예비주자로 거론되던 그를 향해 “월드컵 프리미엄을 이용해 대권주자로 발돋움하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박세직 전 위원장을 경질하고 정몽준, 이연택 공동위원장 체제를 도입한 것에 대해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은 “정부가 차기 대선을 겨냥해 영남권 표를 모으기 위한 카드로 준비한 것”이라며 따졌다. 또 같은 해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국감에서는 현대그룹 부실 지원과 관련해 집중적인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정 대표는 이색 아이디어를 도입하자는 주장을 펴 눈길을 끌기도 했다. 2002년 국회교육위 서울대 국감에서 ‘왼손잡이용 책상을 도입하자’는 제안을 한 것. 당시 정 대표는 피감자 신분이던 정운찬 서울대 총장에게 “시간과 다투는 수능과 논술 시험에서 왼손잡이 수험생들이 오른손잡이용 책상에 앉아 시험을 치르는 건 무척 불공평하다”며 “서울대가 올해 입시 때부터 왼손잡이용 책상을 비치할 용의는 없느냐”고 물었다. 정 총장은 당시 “아직 생각해보지는 못했지만 본부 임원들과 논의해보겠다”고 긍정검토의사를 밝혔으나 이후 실제로 왼손잡이 책상이 도입되지는 않았다. 정 대표는 2003년 기존의 장애인·노약자 등의 편의 증진에 관한 법률에 왼손잡이를 포함시켜 각종 공공시설에 왼손잡이용 설비를 마련토록 하는 내용의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결국 폐기되었다.
▲ 정동영 | ||
정동영 의원은 지난 6일 작심한 듯 이명박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해 강도 높게 비난하기도 했다. 이날 통일부 국정감사를 앞두고 공개한 질의서를 통해 정 의원은 “현 정부의 통일정책은 사실상의 봉쇄정책”이라며 날을 세웠다. 또한 그는 “대북협력사업 승인 건수가 급감하고 방북승인 불허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남북관계 주도를 원한다면 남북대화를 즉시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이번 국감에서 온라인을 통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고 있기도 하다. 오바마 미 대통령도 가입해 화제가 되었던 ‘트위터’를 통해 국감장을 생중계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종종 올려 네티즌들과 소통하고 있는 것. 지난 4일 국감을 앞두고는 “일요일 오후 국회의원사무실이 꽉 찼네요. 내일 국정감사 준비하러 나온 의원과 보좌진들이지요. 저도 내일 외교부 국감 따질 게 많네요”라고 올렸는가 하면, 다음날 국감장에서는 “국감장에 앉아있는 것도 끈기가 요구됩니다. 지금 여당의석에 3명, 야당 쪽에 5명 남아있군요” “외교부 국정감사가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 중입니다. 이른바 ‘Grand Bargain’(그랜드 바겐)에 관해 열띤 공방이 오고 가는데 장관 답변 중에 애매모호하고 어리벙벙한 대목도 많네요”라며 국감장 풍경을 중계했다. 네티즌들이 “국정감사 중에 트윗을?”이라며 “기자들한테 찍히면 욕 먹을텐데요.ㅋ”라고 하자 “그렇지 않아도 국감 끝나고 오니 우리 보좌관이 걱정했다네요. 하지만 국민들의 알권리 충족과 소통이야말로 국감의 궁극적 목적이지 않을까요”라는 답변을 올리기도 했다.
대부분의 여야 대권주자들은 국정의 감시자 역할을 맡지만 때로 자치단체장이나 장관 등 피감자로서 국감장에 서야 하는 경우도 있다. 공수가 뒤바뀐 입장 때문에 곤경에 처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경우 지난해 국감에서 의원들의 공세에 정면 반박을 하곤 해 네티즌들 사이에서 ‘버럭 문수’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골프 지사 공방도 그중 한 예. “김 지사 재임 2년 동안 승인한 골프장이 여의도 면적 6.4배다. 이 정도면 가히 ‘골프장 지사’라고 해야 한다”는 비판에 그는 “지난 2004년부터 골프장 규제가 완화돼 전국적으로 골프장이 늘었으며 경기도의 골프장 증가율은 전국 최하위다. 나는 골프도 안 치는데 골프 지사는 맞지 않다”고 맞섰다.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소신을 굽히지 않는 그의 성격이 그대로 반영됐던 셈이다.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지난 8일 행정안전위의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 모두에게 거센 공격을 받아 한바탕 곤욕을 치러야 했다. 민주당 강기정 의원은 공무원 노조의 민주노총 가입문제를 꺼내며 아예 “차기 대선이나 (서울시장) 재선에 도전할 계획이 있느냐”고 묻기도 했고, 최규식 의원은 “취임 이후 무슨 일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여론조사에서 ‘오 시장 하면 떠오른 정책이 없다’는 응답이 서울 시민의 65%에 달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시장 재선 도전 의사를 공공연히 피력해 오며 잠룡으로 분류되고 있는 오 시장도 ‘소신발언’을 내놓으며 밀리지 않기 위해 애썼다. 민주당 강기정 의원이 정운찬 총리를 염두에 두고 “억대 고문료를 받고 이중취업한 공무원이 있다면 시장이 생각하는 공직자 상과 배치되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하며 “공무원은 영리 업무에 종사하지 않도록 돼 있다”고 덧붙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정운찬 총리를 무조건 옹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인 것. 또 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도 “가입 자체를 따진다면 불법은 아니다. 근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 정당한 노조활동을 보장돼야 한다”고 답해 정부의 입장과는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이와 같은 국감장에서의 오 시장의 모습은 앞으로의 그의 정치행보와도 무관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