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노무현 전 대통령. | ||
무엇보다 이 책이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데는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 오르기 전 작성했던 ‘미공개’ 메모 두 건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하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내려고 했던 ‘청원서’이고, 또 다른 것은 검찰 수사에 대비한 ‘추가진술서’였다. 여기엔 항복을 강요하는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는 ‘죽은 권력’의 넋두리가 곳곳에 녹아 있다. 청원서는 지난 4월 19일, 추가진술서는 검찰 소환조사(지난 4월 30일) 이후 작성됐다.
‘이명박 대통령께 청원드립니다’란 제하의 글은 후임 대통령에 대한 예를 갖추면서도 시종 검찰 수사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따지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편지 첫머리부터 “청원의 요지는 수사팀을 교체해달라는 것”이라며 단호한 입장을 밝힌다.
“지금 수사팀이 하고 있는 모양을 보면 수사는 완전히 균형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수사팀은 너무 많은 사실과 범죄의 그림을 발표하거나 누설했습니다. 피의사실을 공표하거나 누설해 왔습니다. (중략) 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 사건 수사팀이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미리 결론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발표하거나 누설한 내용을 보면 미리 그림을 다 그려놓고 그에 맞게 사실과 증거를 짜맞추어 가고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중략) 이렇게 하는 것은 검찰권의 행사가 아닙니다. 권력의 남용입니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은 이 대통령이 ‘수사팀 교체’라는 정치적 결단을 내리고, “통상적인 보고 라인이 아닌, 대통령께 사실과 법리를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다른 전문가에게 이 사건에 대한 분석과 판단을 받아보면 이 사건 수사가 많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간절히 호소한다.
노 전 대통령은 또 “저는 이미 모든 것을 상실했다. 권위도 신뢰도 더 이상 지켜야할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다. 거듭 사죄드린다”며 자존심을 접었다.
노 전 대통령은 끄트머리에 ‘2009년 4월 노무현’이라고 썼다. 공식직함인 ‘제16대 대통령’을 생략한 것이다. 책은 ‘이미 모든 것을 상실한’ 자신의 처지를 반영하기 위한 장치였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당시 이 편지는 참모진과의 협의를 거쳐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열흘 후쯤 작성된 ‘추가진술서’는 세 단락으로 이뤄진 글이다. 서거 후 노 전 대통령의 컴퓨터에서 발견됐다. 참모진도 글의 존재를 몰랐던 셈이다. 글은 검찰 소환 이후 쓰여졌음을 방증이라도 하듯 청원서에서 느껴지던 강단과 결기를 찾을 수 없다.
▲ 노무현 추모록 표지. | ||
그러나 이 글은 ‘미완성’이다. 특히 마지막 단락은 ‘끄적거렸다’는 게 맞을 정도로 형식이 파괴돼 있다. 어떤 심리에서였는지 진술 준비를 중단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결국 ‘5월 23일’ 아침 사저 뒷산에 올라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렸다. 서거 사실을 공식 발표한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그 발표’가 “이제까지 했던 일 중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며 “대신 발표할 사람을 찾아보자고도 했다.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고 술회했다.
문 전 실장은 당일 오전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경남 양산 부산대병원에 도착해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던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그는 “대통령의 모습은 너무나 참혹했다. 이 모습을 차마 유족에게 보일 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노 전 대통령은 ‘못다 쓴 회고록’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를 당부했다. ‘정치인’을 “빚이 많은 사람,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직업, 대책 없는 사람, 생활비를 설명할 수 없는 사람들. 그래도 품위와 모양을 갖추어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면서, “정치하지 마라”고 했다.
오비이락이었을까, 아니면 의도한 것이었을까. <내 마음 속…>이 출간된 지난 10월 7일, 친노 인사들은 서거 이후 처음으로 ‘노무현’을 내걸고 치르는 선거의 출정식을 가졌다. 10월 경남 양산 재보선에 출마하는, 전 청와대 비서관 출신 민주당 송인배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서였다. ‘친노 핵심’인 민주당 안희정 최고위원, 서갑원·백원우 의원 등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장에 모여 송 후보와 함께 섰다.
문 전 실장과 함께 공동선대위원장에 위촉된 안 최고위원은 “노 전 대통령은 2008년 1월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고개 들어라! 힘껏 박수치고 소리 질러라! 그래서 살아남아라!’ 노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모셨던 저희들이 대통령을 지키지 못한 가장 큰 죄인이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양산에서 뛰겠다”고 다짐했다.
친노 그룹은 “정치하지 말라”던 ‘주군’의 유훈까지 ‘외면’하고 정치적 승부수를 띄웠다. 이제 양산 재선거는 단순히 송 후보 한 사람의 당락으로 끝날 일이 아닌 게 됐다. 친노 그룹 전체의 역량과 향후 정치적 운신의 폭을 결정지을 시험대가 된 것이다. “송인배로는 어렵다”는 우려가 여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선거기간 동안 문 전 실장과 안 최고위원은 물론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등 ‘거물급’ 친노 인사들은 양산을 구석구석 훑고 다닐 것으로 알려졌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양원보 세계일보 기자 wonbos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