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염집 마당에서는 초가에 올릴 이엉을 만드느라 한창이다. | ||
궁금함을 참다 못한 한 초등학생이 정지(부엌)문을 열고 안을 빠끔히 들여다본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선비촌. 여염집 초가 위에는 달덩이처럼 둥그런 박이 탐스럽게 열렸고, 저잣거리는 왁자지껄 “국밥 말아 달라”, “막걸리 한 사발 더 달라” 정신이 없다. 기와집 토담 너머로는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지금이라도 들릴 것만 같다.
경북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 일대 1만7천여 평의 부지에 자리한 선비촌은 전통문화가 살아 숨쉬는 곳이다. 기와집 15채, 초가 13채, 누각, 저잣거리 등 76채의 전통가옥과 부대시설을 갖춘 국내 최대 규모의 전통문화 체험 공간으로 지난해 11월 개장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투호, 널뛰기, 제기차기, 연날리기 등 전통놀이 체험뿐만 아니라 붓글씨, 탁본, 다례제, 예절교육 등 선비문화 체험 등 다양한 옛 문화의 향기에 취해볼 수 있다. 또한 고택에서의 숙박 체험도 가능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선비촌의 양반가옥들은 이제껏 보아왔던 대궐 같은 집과는 거리가 멀다.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선비들의 기개와 청백리정신이 느껴지는 한옥들이다.
양반가옥은 수신제가, 입신양명, 거구무안, 우도불우빈 등 4개의 주제에 따라 나뉘어지는데 집마다 그 모양이나 크기 등이 다 다르다. 저마다 개성을 지닌 양반가옥들을 비교하며 보는 것만으로도 선비촌 여행은 즐겁다.
▲ 저잣거리 먹거리장터는 늘 왁자지껄하다. 아래는 꼬마신랑 복장을 입고 말을 타는 어린이. | ||
두암 고택은 ‘입신양명’의 표본가옥이다. 조선 중기 때 영원군수, 해미현감 등을 역임한 두암 김우익이 건립한 이 가옥은 인동 장씨 고택과 함께 선비촌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배치된 가구들도 모두 크고 화려하다. 이곳에는 관료로서 선정을 펼치는 데 최선을 다했던 선비의 모습과 자녀들을 교육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연출돼 있다.
‘거구무안’. 사는 데 있어서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만죽재를 가만 보노라면 청백리들이 지녔던 거구무안의 정신이 새삼 느껴진다. 만죽재는 옛 선비들의 단아한 격식이 느껴지는 고택이다. 안마당을 중심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을 이룬다. 이곳에서는 선비들의 일상생활과 함께 영주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선비에 관련된 일화 등을 알아볼 수 있다.
장휘덕 가옥은 선비촌에서 드문 양반가문의 초가집이다. ‘우도불우빈’(도를 닦지 못한 것을 근심할 일이지 가난을 근심하지 말라는 의미). 가난함 속에서도 바른 삶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물질적 풍요를 제일의 가치로 여기는 요즘의 풍토를 보노라면 옛 선비들의 정신이 그립다. 장휘덕 가옥은 안방, 사랑방, 부엌 등 최소한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난한 선비의 집에는 여느 농가와 마찬가지로 농기구들이 전시돼 있다.
▲ 1만7천여 평 부지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선비촌의 풍경. 아래는 전통 부엌을 보며 신기해하는 어린이들. | ||
선비촌을 둘러보다보면 여염집에서 ‘토르르륵’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바로 물레소리다. 체험객들의 손에서는 끊기기 일쑤인 명주 물레가 할머니들의 손을 타고서야 제대로 돈다.
저잣거리에서는 떡메 치는 소리가 활기차다. 힘만 믿고 자신 있게 덤벼보지만 떡메질이 그리 호락하지만은 않다. 적당히 떡메에 물을 묻혀줘야 하고 내리치면서 한 번씩 떡을 눌러줘야 떡이 달라붙지 않고 쫄깃하다.
저잣거리에는 토속음식점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인근 풍기 지역의 특산물인 인삼요리와 산채, 한우요리 등을 맛볼 수 있다.
선비촌은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유교문화의 본향이라는 소수서원과 맞붙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왕으로부터 토지 등을 받아 권위를 인정받은 서원)인 소수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철폐를 면한 47서원 중 하나로 지금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선비촌에서 10여km 떨어진 곳에는 화엄종의 근본 도량으로 유명한 부석사가 있어 한번 들러볼 만하다. 부석사 은행나무들은 잎이 노랗게 물들어 가을의 정취를 더욱 그윽하게 해준다.
▲가는 길: 경부(중부)고속도로→신갈(호법)IC→영동고속도로→남원주IC→중앙고속도로→풍기I.C→순흥
▲숙박: 선비촌 하루 숙박료 2인1실 기준 2만∼4만원
▲문의: 선비촌(http://www.sunbitown.com) 054-638-7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