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사설의 핵심은 밀사의 주체와 역할. 북한은 분명 밀사가 있었고, 그들이 거론한 내용도 제시하고 있지만 한나라당과 이회창 전 총재는 ‘사실무근의 음모’라고 주장한다. 과연 이 북한발 북풍의 실체는 있는 걸까.
‘대북밀사설’의 요체는 한나라당의 대북밀사가 평양과 중국 베이징 등에서 북한측과 접촉, 대선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 했다는 것이다.
밀사설은 북한의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조선아태위)가 지난 3월10일 ‘현대와의 경제협력사업 및 대북송금 문제와 관련된 상보’에서 16대 대선 전 한나라당이 밀사를 보내왔다고 주장한 데 이어 14일에는 대변인 담화를 통해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면서 확산됐다. 이에 따르면 한나라당이 대선을 위해 9월과 12월에 대북밀사를 보내 북한과의 관계개선과 대북지원을 약속했다는 것.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외국 외교관을 통해 대북접촉을 시도했다는 주장과 함께 14일 ‘한나라당 대북밀사파견 진상위원회’를 구성, 공세에 나서 밀사설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대북밀사설은 밀사의 정체와 역할이 실재하느냐에 따라 진위가 판명나게 된다. 대북밀사와 관련, 현재까지 유력하게 거론된 인사는 4∼5명에 이른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송영대 전 통일부 차관, 백진현 서울대 교수,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 등이 밀사로 움직였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송 전 차관은 대북문제에서 ‘전략적 상호주의’라는 개념을 정립했다는 이유에서, 백 교수는 이회창 후보의 핵심브레인이었다는 점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밀사와는 무관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박재규 전 장관은 지난해 9월16일 KBS교향악단 평양방문단의 고문 자격으로 방북, 북측 고위 인사들을 만난 사실 때문에 밀사의 한 사람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박 전 장관은 조선아태위 관계자를 비롯한 북측 고위인사들을 만났지만 ‘밀사’는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박 전 장관의 대변인격인 양무진 교수(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는 박 전 장관의 말을 인용, “북측인사들과는 경제·문화교류에 관한 대화가 대부분이었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북측 관계자들은 남한 대선 후보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이회창 후보가 중국에서 밝힌 대북정책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이해했다고 한다.
민주당 정균환 원내총무가 3월14일 “외국 외교관을 통해 대북접촉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해 한나라당 중국통인 전직 의원 L씨가 ‘채널’로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 9월 이회창 전 총재의 중국 방문을 성사시킨 장본인. L씨는 이 전 총재의 방중 일행 중 중국전문가나 남북관계에 정통한 유일한 인사였다는 점에서 ‘밀사’ 의혹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 전 총재의 방중에 자신의 역할이 있었다는 것을 시인하면서도 ‘밀사’에 대해서는 사실무근이라며 일축했다.
이밖에 조선족 사업가 C씨를 통해 남북관계(정상회담 포함)의 디딤돌을 마련했던 전직 대사 K씨, 최근 평양과 서울을 오가면서 대북사업의 기반을 모색하고 있는 북한통 P씨, 중국 내 이회창 전 총재의 인맥으로 북한과도 교류가 있는 조선족 H·L교수 등도 밀사 가능성이 거론됐으나 취재결과 무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각에서는 주중 대사관 직원 중 일부가 이 전 총재의 집권 가능성을 높게 보고 북측과 접촉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지만 ‘설’ 수준에 머물고 있다.
북한은 한나라당의 대북밀사 파견을 주장하면서도 밀사의 실체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이와 관련, 1998년 4월 남북비료회담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밀사 역을 했던 북한전문가 C씨는 “위임장 하나면 모든 게 드러난다”며 최근의 밀사설 공방이 핵심을 잘못 짚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밀사’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신력 있는 위임장이 필수 전제라고 말한다. 이것이 확인된 다음 의제(議題)를 설정하고 협상에 들어간다는 것. 따라서 위임장이 없으면 아무리 밀사(또는 특사)를 자처하고 지원 운운해도 북측이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양무진 교수도 “북한과의 협상에서 모름지기 ‘밀사’라면 신표(信標)가 있어야 한다”며 C씨와 비슷한 주장을 폈다.
북한문제 전문가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북한이 특검법을 앞두고 느닷없이 대북밀사건을 들고나온 배경에 의문을 두고 있다.
이들은 특검법이 통과돼 대북송금 루트가 드러나 무기 관련 자금 흐름이 밝혀질 경우 미국의 타깃이 될 것을 우려한 북한이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노무현정부와 DJ정권 관계자들을 압박하고 나온 것으로 분석한다. 그런 점에서 지난 3월14일 전격 공포된 특검법 내용 중에 대북송금 루트와 북한 관계자들을 빼기로 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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