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이 지난 6일 서울 성동구 옥수12재개발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이날 이 위원장은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사무실을 방문해 조합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재개발사업 현황을 점검했다. 연합뉴스 | ||
하지만 그의 광폭행보에 대한 비판적·비관적 시각도 많다. 권익위원장 자리를 위해 탈당까지 했던 그가 중립적인 행보를 하지 않고 ‘경인운하 방문’ 같은 정치적인 ‘쇼’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 정부부처에서 돌고 돌아 온 ‘악성 민원’에 대해 과감하게 해결사 역할을 자임했지만 자칫 실패할 경우 그 후유증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과연 이재오 위원장의 ‘용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이 단단히 칼을 갈고 정치권에 복귀했다. 이 위원장이 장관급이긴 하지만 비교적 변방의 수장 자리를 전격 수락한 배경에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과 기회가 많지 않다는 판단이 자리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대권 지형은 이미 박근혜 전 대표를 정점으로 정운찬 국무총리와 정몽준 당 대표가 정립 구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후발주자인 그가 계속 장외에 남아있을 경우 ‘상장’도 하기 전에 약체 후보로 전락할 위기감이 컸기 때문이다.
특히 10월 은평을 재선거 실시가 물 건너가고 내년 2월 조기전당대회 실시도 난망해지면서 ‘백수’ 기간이 내년 7월까지 이어질 경우 자칫 정치권의 낭인으로 떠돌다 완전히 대권 구도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 때문에 이번에 국민권익위원장 임명을 통해 차기 대권 도전으로 가는 막차를 탄 셈이 됐다. 사실 이 위원장과 그의 측근들은 ‘복귀’ 바로 전까지도 줄곧 “나와 대통령의 생각이 같은데 굳이 정부에 함께 있을 필요가 있느냐”는 말을 할 만큼 정부 입성에 부정적이었다. 특히 이 위원장은 사석에서 내내 “나는 공무원으로 월급을 받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말을 밥 먹듯이 했기 때문에 이번 그의 심경 변화는 대권주자로 가기 위한 마지막 선택으로 읽히고 있다.
이런 이 위원장의 ‘절박한’ 상황 인식은 국민권익위원장에 취임하자마자 그로 하여금 단박에 대권주자급 스케줄을 소화하게 하는 강력한 추진체가 되고 있다. 먼저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초 관가에 퍼뜨린 ‘얼리버드 증후군’을 다시 전파시키고 있어 다른 부처에서도 긴장하는 모습이다. 이 위원장은 간부회의도 이전보다 한 시간 앞당겨 오전 7시 30분에 주재한다. 일반 직원들의 출근시간도 빨라졌다. 최근 출근시간이 느슨해져 이 대통령의 눈치를 보던 일부 부처에서는 이 위원장의 ‘얼리버드’를 보고 다시 출근 고삐를 죄는 모습도 보인다. 한 고위 공무원은 “청와대 모 행정관은 조기 출근 시간 때문에 일을 그만둘 정도로 얼리버드 후유증이 초창기에는 심했다. 그래서 요즘은 출근시간이 다소 탄력적으로 운영됐는데 이 위원장이 다시 관가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 같아 솔직히 눈치가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한나라당 사무총장 겸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인 2003년 당시 비상대책회의를 한 시간 앞당긴 것은 물론 출퇴근 시간을 아끼느라 야전침대를 두고 아예 사무실에서 지낸 바 있다.
그의 현장 방문도 ‘얼리버드’ 못지않은 효과를 거두고 있다. 취임 열흘도 지나지 않아 그는 벌써 아라뱃길(경인운하) 현장을 비롯해 재래시장과 중소기업, 옥수동 재개발 현장, 판교 신도시 건설현장 등을 방문했다. 복장도 허름한 점퍼에 청바지, 운동화 차림이다. 이를 보고 관가의 한 간부는 “10년 넘은 점퍼와 꿰맨 운동화가 청백리의 상징처럼 떠올랐던 원자바오 중국 총리를 연상시킨다”라고 말했다.
사실 그의 현장 방문 일정은 국무총리급 이상이다. 전임인 양건 위원장이 주로 사무실에서 내근을 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그는 취임하던 첫날부터 현장을 돌았다. 이 위원장은 지난 5일 간부회의에서 “매일 현장을 찾아서 국민들의 불편과 요구를 들어야 한다. 주요 간부들은 매일 오후 5시부터 퇴근하기 전까지 1시간 동안 현장을 직접 방문하라”고 지시했다. ‘조기 출근 재점화’와 ‘현장 방문 강조’를 두고 일각에서는 “‘리틀 MB(이명박 대통령 이니셜)’가 관가에 떴다”라는 말들도 나온다.
그런데 그의 현장 방문이 ‘정치적 행보’라는 데 ‘이재오 컴백’의 비수가 숨어 있다. 이번에 그가 대권주자로 발돋움하기 위해 정밀하게 기획한 첫 작품이 바로 ‘현장 방문을 통한 친 서민 행보 강화’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한나라당의 한 전략 관계자는 “이 위원장의 대권 프로젝트가 이미 시작됐다. 현장 방문은 정치인이 가장 선호하는 대민 접촉 방식이다. 정몽준 대표도 첫 일정으로 현충원 방문보다 노량진 수산시장을 먼저 찾을 정도였다. 이 위원장은 정부의 친서민·중도실용 정책에 맞추어 ‘국민소통창구’의 수장답게 현장을 돌며 서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권익위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이 취임한 후 ‘서민들을 위해 일하고, 이를 서민들이 체감하도록 하라’는 말을 수없이 직원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중도실용의 의미가 현장과 서민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 위원장의 이러한 서민 중심 코드는 최근 정치권에서 주목받고 있는 ‘생활정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하토야마 일본 민주당 대표(현 총리)가 자민당의 55년 장기집권을 무너뜨린 가장 중요한 정책이 바로 ‘생활 공감형 이슈 개발’이었다. 이는 우리나라 민주당에도 정권 재창출 관점에서 크게 영향을 주고 있고, 한나라당 소장파도 한국 정치 상황에 맞는 생활정치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런 정치권의 기류는 이재오 위원장의 ‘현장 방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는 송파구청을 방문해 “자동차 임시 번호판이 불필요하다며 앞으로 국토해양부 등에 폐지를 권고할 것”(이 위원장의 송파구 방문은 자동차 임시운행허가 제도 개선과 관련한 송파구의 제안으로 이루어졌다)이라고 밝힌 것을 비롯해 중고차 시장 방문 등 국민 생활과 직접 관련되는 ‘구체적’ 이슈에 대한 해결사를 자임하고 있다. 그런데 권익위는 현장 방문 대상지를 놓고 자주 회의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윗사람의 뜻을 읽는 데 전문가인 공무원 생리상 권익위 직원들이 이 위원장이 표방하는 ‘생활정치’에 가장 부합하는 ‘정치적 선택’을 할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또한 그의 현장 방문은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 전도사’ 역을 자처하면서 대권주자의 길을 가려는 의도와 연결된다. 최근 그의 경인운하 방문은 앞으로의 동선이 기존의 단순한 국민권익위의 역할에만 한정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이는 국민권익위의 역할을 최대한 확장해 ‘대권주자 이재오’의 공간을 확대하는 쪽으로 나아갈 것임을 시사한다.
이런 정치적 의도 때문에 여권 내 친박그룹과 민주당 등은 경인운하 방문을 두고 ‘정치적 행보’라며 맹공에 나섰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현장 방문에 전용 사진사를 대동하고, 보도자료를 작성해 언론에 뿌리는 것이 정당 정치인의 행태를 떠올리게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그리고 권익위원회 내부에서도 현장 방문이 과연 효율적인 해결 방식인지 의문을 표하는 의견도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현장을 방문해서 사진 몇 장 찍고 몇 분 동안 의견 청취하는 것만으로 복잡한 민원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권익위로 들어오는 민원은 각 부처에서 ‘항복 선언’을 할 정도의 ‘악성 민원’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벤트성으로 현장을 방문해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란 지적도 있다. 더욱이 이 위원장이 ‘언론 플레이’를 하며 민원인들의 기대치를 한껏 올려놓았다가 자칫 그 해결률이 저조할 경우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것이란 점도 그에게는 부담이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이재오 위원장이 지휘하는 권익위를 전폭 지지할 것으로 알려진다. 정운찬 총리나 정몽준 대표 등에게도 일을 하기 전 최대한 기회를 주고 그 결과를 기다린다는 점에서 이 위원장도 당분간 이 대통령의 각별한 관심과 지원이 있을 전망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권익위가) 그동안의 소극적 역할에서 벗어나 공직 비리는 물론, 손이 미치지 못했던 지방자치단체들의 독직이나 비리 문제에도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검경과의 업무 협조도 강화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안다”라며 이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는 이 대통령이 지난 8·15 경축사에서 강조했던 토착 비리 근절과도 맥이 닿아 있다는 점에서 이 위원장의 광폭 행보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이재오 위원장의 여의도 측근들은 그의 향후 정치적 거취를 두고 “내년 7월 은평을 재선거에 출마한 뒤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잡아야 한다”라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이런 점에서 그의 ‘포청천 프로젝트’는 내년 7월까지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대권주자로서의 강렬한 임팩트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22개월 동안 권토중래하며 기다렸던 그의 ‘용꿈’도 점점 요원해질 전망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