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백 년간 이어온 북평장 모습. | ||
관광열차 타고 ‘정선5일장’에 가는 여행상품도 있지만, 5일장의 존재감은 이전에 비해 훨씬 줄어들었다. 물물교환이 시작될 때부터 생겨난 장터가 이제 대형마트로 혹은 사이버 장터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근 각 지방의 5일장은 지역문화의 부활을 꿈꾸는 이들에게 각별한 대상이다.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동해시 북평장도 예외는 아니다.
북평장은 매월 3, 8(끝자리)일 강원도 동해시 북평동에서 열리는 전국 규모의 민속장이다. 영동 지역을 대표하는 장으로 전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 조선 정조 병신년(1796년)에 시작, 2백 년이 넘게 이어져온 북평장은 오늘날 살아 있는 박물관이나 다름없다.
북평은 작은 동네일 뿐이지만 전국 팔도의 상인들이 모여들어 거리의 노점상만 해도 무려 4백여 개를 넘는다. 한창 때는 8백 개의 노점상이 들어서기도 했다. 이는 동해시 북평동이 예부터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동해안을 훑는 7번 국도가 남북으로 지나가고 태백시에서 38번 국도가, 정선에서 42번 국도가 닿는 곳이 북평이다. 영동선 열차도 북평을 지난다. 그래서 큰 장이 설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맥락을 이어오고 있다. 상가연합회 회장 김흥국씨의 얘기다.
“동해항과 바다를 끼고 있는 북평장은 어물전이 제일 유명하죠. 동해시 북평동에서 열리지만 전국 농수산물은 다 모이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입니다. 심지어 농기구도 북평장이 알아주는데요.”
장터 특유의 왁자지껄함은 2백 년 세월에도 변함이 없다. 흔히 ‘장돌뱅이’라고 불리는 장사꾼들의 입담도 마찬가지. 전날은 정선장, 오늘은 북평장, 내일은 양양장에서 만나는 이들은 소주 한잔 받아놓고 걸걸한 농을 주고받으며 장터의 분위기를 띄우곤 한다.
아이들에게도 시골장터는 변함없는 ‘원더랜드’다. 희귀한 볼거리, 먹을거리에 정신이 팔려서 칼바람에 볼이 빨갛게 부푸는 줄도 모른다. 시장 아낙네들이 신어 버릇하던 꽃버선, 시골 장터에서나 볼 수 있는 털 고무신, 뻥튀기 등도 그 옛날 추억을 상기시킨다.
펄펄 뛰는 오징어, 가자미, 각종 활어 등 전국 방방곡곡 산해진미가 올라와 제사상처럼 차려지는 곳, 북평장. 이곳 상인들의 말을 빌자면 북평장은 ‘해 뜰 때 장이 서기 시작해 해 질 때 끝이 난다.’ 그러니 요즘엔 아침 8시쯤이면 장터의 모양새가 제법 꾸려진다.
“이제 왔나. 밥은 뭇나?”
서울에서 무려 4백km를 달려가 듣는 첫 인사는 그렇게도 다정하다.
“이 못생긴 고기는 이름이 뭐죠?”
“이게 물곰 아이라. 곰치국도 못 들어봤나? 해장국으로 이 이상 가는 게 어데 있나.”
▲ 못생겨도 맛은 좋은 곰치를 고르는 사람들(위). 물좋은 꽃게 등 싱싱한 해물은 금세 동이 나고 만다(아래). | ||
북평장은 약 4천여 평 규모로 장터를 한눈에 파악하긴 힘들다. 북평 삼거리를 중심으로 장이 펼쳐지는데 그 중 북평성당길이 가장 번화가다. 기존의 어물전을 중심으로 바다에서 건진 제철 생선과 해물들이 줄을 섰다. 그 중간 골목길에는 쇠전(우시장), 미전, 농기구, 생활용품, 짚공예품 등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늘어서 있다. 도로 맞은편은 겨울 배추, 무, 과일 등 채소전끼리 뭉쳤다. 정해진 자리 없이 오는 순서대로 앉다보니 더러는 채소전 옆에 어물전이 놓이기도 하지만 그 또한 시골장터만의 푸근함으로 다가온다.
“동해에서 막 잡은 꽃게 한 박스에 1만5천원!”, “생물 고등어 다섯 마리에 1만원!”
구경꾼도 돌아보게 만드는 저렴한 가격은 북평장의 또 다른 ‘미덕’이다.
장터 구경은 부지런을 떨어도 족히 2~3시간을 훌쩍 넘긴다. 오후 2~3시부터는 장터에 활력이 넘친다. ‘깎아 달라, 많이 달라’ 등 가격흥정도 재래시장만의 또 다른 재미. 오후 4시께 이르면 흥정이 절정에 이른다. 남은 물건 다 팔고 가려는 상인들이 더 싼 값에 물건을 내놓는다. 하루 종일 장터를 빈둥거리다가도 오후가 되면 두 손 가득 비닐봉투를 들게 되는 것도 그 때문. 대신 물이 좋은 생선이나 해물은 일찍 마감되기 때문에 마음에 들 때 구입하는 것이 좋다.
시골 장터의 매력은 역시 다양한 먹을거리다. 특히 4천여 평이나 되는 북평장에는 골목마다 군침 넘어가는 ‘맛’이 하나씩은 꼭 있다.
먹거리 포장마차는 대로변보다 주로 한가한 뒷골목에 자리를 잡고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아이템은 먼 길 달려온 ‘부산오뎅’이다. 다양한 형태의 부산오뎅은 맛이야 말할 것도 없고 무와 다시마를 푹 우려 만든 국물맛이 칼바람도 잊게 해준다. 줄이 길게 늘어선 또 다른 곳은 꿀호떡집이다. 말 그대로 불티나게 팔려나가 ‘호떡집에 불났다’는 농을 할 정도. 그 외에도 이곳 토박이가 만든 족발, 찐만두, 그리고 신김치와 당면으로 속을 채운 메밀전병 등이 인기다.
만약 식사를 하려면 동해의 별미로 인정받고 있는 ‘곰치국’이나 시골장터의 순대국밥도 먹어보자. 곰치국은 하얀 곰치살이 둥둥 떠올라 처음엔 못 먹는 사람도 있지만, 한번 먹어 본 사람은 그 맛을 또 찾게 될 정도로 맛과 영양이 좋다. 물론 해장국으로 더 좋다.
북평장 삼거리에서 약 1백50m 떨어진 북평성당은 성당 특유의 경건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드라마 <겨울연가>의 두 주인공이 결혼식을 올렸던 곳이라, 일본 관광객들도 즐겨 찾는다. 또 북평장 인근에는 촛대암 일출로 유명한 추암해수욕장과 넓은 모래사장의 망상해수욕장도 지척이다. 겨울바다의 한적함을 만끽하는 데는 망상해변이 더 좋다.
▲ 구룡포 과메기만큼이나 상인의 웃음도 구수하다. | ||
●성남 모란장 (경기 성남시, 끝자리 4, 9일)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5일장. 상인만도 천여 명 넘게 모이는, 그야말로 없는 게 없는 장이다. 팔 수 있는 모든 것(생필품, 화훼, 곡류, 약초 등등)을 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곳.
●정선장 (강원 정선군, 끝자리 2, 7일) 현재 관광열차가 운행중이다. 각종 산나물과 약재, 공예품 등이 상품의 주류를 이룬다. 모란장이나 북평장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향수 어린 물건들이 많고, 먹을거리로 유명하다. 올챙이국수, 메밀국수, 메밀전, 메밀묵 등 강원도 옥수수와 메밀을 재료로 삼은 음식이 대부분이다.
●경기 양평장 03 ,08 일/산나물, 더덕, 고추, 밤, 야채, 곡물, 잡화
●경기 여주장 05 , 10 일/고구마, 땅콩, 참외, 쌀
●인천 강화읍 5일장 02 , 07 일/화문석, 꽃삼합, 인삼, 순무
●삼척 도계 5일장 04 , 09 일/소, 마포. 쌀. 소라. 게. 도루묵. 이면수어, 미역
●평창 봉평 5일장 02 , 07 일/메밀식품. 손두부. 콩비지. 산나물
박수운 여행전문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