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여의도포럼 창립 1주년 세미나에서 생각에 잠긴 당시 박희태 대표의 모습 뒤로 박근혜 전 대표의 모습이 보인다. | ||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 안팎에서는 박 후보가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SOS’를 요청해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냈다는 말이 들리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이번 재보선에 사활을 걸고 있는 박 후보에게 직·간접적인 도움을 줄 가능성이 크다는 것. 박근혜 전 대표는 “선거에 관여하지 않겠다”며 공식 천명한 바 있어 이에 대한 배경에 정가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두 전직 대표 간에 모종의 합의가 이뤄졌을 것’이라는 추측마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경남 양산 재보선의 또 다른 변수로 떠오를 것으로 보이는 박 후보와 박근혜 전 대표의 ‘빅딜설’, 그 실체를 따라가 봤다.
역대 재보선은 집권당의 ‘무덤’이었다. 지난 2003년 이후 치러진 7번의 재보선에서 여당은 단 한 차례도 야당을 이기지 못했다. 지난 4월 재보선에서도 한나라당은 선거가 있었던 5개 지역구에서 모두 패했다. 그러나 이번 재보선은 양상이 다소 다르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었다. 한나라당이 최소한 두 곳 이상에서 승리할 것으로 점쳐졌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여당의 재보선 징크스를 깨게 될 것”이라며 자신해왔다.
한나라당이 이처럼 ‘큰소리’를 칠 수 있었던 것은 강원 강릉과 함께 경남 양산이 확실한 우세지역으로 꼽혔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공천을 받아 선거에 대비해 온 박희태 후보 지지율은 타 후보를 압도했고 ‘대이변’이 없는 한 역전 확률은 낮아 보였다. 일각에서는 공천에 반발해 무소속으로 나온 김양수 후보와 친박계로 분류되는 유재명 후보가 여권 표를 분산시켜 박빙의 승부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지만 박희태 대세론은 견고하기만 해 보였다.
그런데 최근 한나라당 내부에서 ‘경남 양산 위기론’이 불거지고 있다고 한다. 본격적인 선거 유세전에 돌입한 이후 멀찌감치 따돌린 것으로 판단했던 후보들의 지지율이 상승기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역시 자체 분석을 통해 경남 양산 지역을 ‘당선 확실’에서 ‘우세’로 하향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지금 이기고는 있지만 선거가 막판으로 갈수록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특단의 대책 마련이 필요할 것 같다”고 귀띔했다.
박 후보 측이나 한나라당에서도 “초반과 분위기는 달라졌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의원은 “여론조사에서 앞서는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양산이라는 지역 특성을 고려하면 이것마저도 안심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보다 더 적극적으로 ‘표몰이’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양산은 경남에서도 한나라당 정서가 비교적 약한 것으로 평가받는 곳이다. 지난 17대와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기는 했지만 두 번 모두 2위와의 격차는 그리 크지 않았다. 18대 총선에서는 선거직전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10% 초반이던 무소속 유재명 후보가 33.37%의 득표율을 올리며 38.99%를 기록한 허범도 전 의원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도 했다.
박 후보를 제외한 야당과 무소속 후보들은 이번에도 막상 개표함 뚜껑을 열어보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송인배 후보 측은 “송 후보가 문재인 김두관 등 친노 인사와 유세를 다녔는데 반응이 엄청났다. ‘노풍’이 불고 있어 승산은 충분하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오차범위로 좁혀졌다”고 밝혔다. 김양수 후보 측 역시 “투표율 등 여러 조건만 받쳐준다면 한 번 해볼 만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박 후보가 쉽게 이기지는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후보 선거 캠프 주변에서 박근혜 전 대표 이름이 다시 거론되고 있는 것도 이처럼 달라진 선거 판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박 후보가 이 지역에서 영향력이 있는 박근혜 전 대표의 공개 지지만 이끌어낸다면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며 “박 후보는 선거사무소 방문과 같은 박근혜 전 대표의 구체적인 행동을 원하고 있고 실제 이를 위해 다각도로 노력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박 후보가 수세에 몰릴 경우 ‘친박 선언’이라는 ‘깜짝 카드’를 내밀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보좌관은 “대표직을 내던지면서까지 출마를 강행했던 박 후보에게 이번 재보선이 정치인생의 ‘마지막 승부수’라는 것을 감안하면 선거 막판 상황이 다급하면 ‘친박’으로 돌아섰음을 공개적으로 선언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후보는 지난 17대 총선에서 박근혜 전 대표 도움을 받아 당선됐지만 막상 대선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캠프에 몸담아 ‘친박’ 측으로부터 원성을 들은 바 있다. 따라서 박 후보가 박근혜 전 대표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이러한 전과(?) 때문에 ‘보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친박 선언’은 여권 주류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에 대해 친이 측 한 관계자는 “박 후보가 양산에서 패할 경우 정권에는 엄청난 부담이 된다. 상승 중인 이 대통령 지지도에도 찬물을 끼얹게 될 것이다. ‘친박 선언’을 할지 안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당선되는 것이 낫다”고 밝혔다.
박근혜 전 대표 측근들 사이에서도 박 후보의 도움 요청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어차피 당선이 유력한 상황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침묵을 지키면 그 공이 선거 전면에 나선 정몽준 대표에게로 돌아갈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박 후보를 끌어들여 ‘세 확장’에 나서겠다는 전략도 엿보인다. 한 친박계 인사는 “(제안이 온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나. 다만 박 후보로부터 무엇을 얻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박근혜 전 대표 성격상 공개적으로 지지를 호소하지는 않겠지만 측근이나 팬클럽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은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박근혜 전 대표도 자신의 지원으로 박 후보가 당선되면 차기 국회의장을 ‘아군’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차기 국회의장의 주요 과제 중 하나인 ‘개헌’ 추진 등에 있어서 박 후보가 박근혜 전 대표 의중을 최대한 반영할 것을 약속했다는, 이른바 ‘빅딜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박 후보 측은 “‘호사가들이 여러 얘기들을 꺼내놓는 것 같다”면서 “지금도 많은 친박계 의원들이 도와주고 있어 박근혜 전 대표가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