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수 향일암에서 바라본 해맞이. | ||
낯선 사람들과 뒤섞여 긴 줄을 함께 서고 함께 해를 바라보는 일도 즐겁기만 하다. 어떤 아침이 경건하지 않을까마는 한 해의 첫머리인 정월의 해오름에는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주는 묘한 기운이 서려 있다. 아쉬움은 툭툭 털어내고 새 꿈을 꾸는 희망 여행. 올 1월에는 산이면 산, 바다면 바다로 한번 해와 만나러 떠나보자. 두고두고 후회하지 않을 일출 명소를 소개한다.
바다 위로 솟구치는 희망의 불덩이 [여수 향일암]
남해와 고흥 사이에 들어앉은 작은 반도 여수. 돌아서면 시작점이 되는 반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여수 향일암은 해남 땅끝마을과 함께 전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해돋이 명소다.
향일암 일출은 돌산도 임포항에서 시작된다. 임포항은 거북이 목을 닮았다는 뜻에서 일명 ‘거북목’으로 불리기도 하는, 섬의 남쪽 끝에 자리한 작은 포구다. 향일암은 임포항에서 걸어서 겨우 15분 안팎의 거리에 위치한 암자. 바다를 정면으로 끌어안은 채 암벽 끝에 아찔하게 서 있는 모습 자체가 절경이다.
향일암의 겨울 일출은 오전 7시30분이 되어야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제 해가 뜨는 순간보다는 일출 직전의 푸른 여명이 경건함과 고요함을 더해주니 조금 서두르는 것이 좋다. 이맘때는 6시40분쯤부터 여명이 시작되는데 거북목의 주차장 언덕에서부터 푸른색이 선연하다.
향일암 일주문을 통과하고 나면 이번엔 무수한 돌계단이 나타난다. 이곳 토박이들은 번듯한 계단이 생긴 이후로 흙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던 그 옛날의 투박함과 소박한 정취가 사라졌다며 안타까워한다. 가파른 계단과 좁은 석벽 사이를 통과한 뒤 대웅전의 앞마당에 올라서면 시야는 망망대해로 흩어진다. 멀리 수평선이 보일 듯하고 가까이의 구름은 파도 위에 앉은 듯 자유롭다.
새아침을 기다리는 부지런한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대웅전 앞을 떠나지 않는다. 향일암의 건물들이 모두 해를 바라보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대웅전은 바다에서 솟구치는 장엄한 일출을 정면에서 마주설 수 있는 명당으로 꼽힌다. ‘해를 바라보는 암자’라는 향일암의 뜻도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7시30분을 넘기자 대웅전 처마 밑으로 붉은 기운이 드리워지더니 마침내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파도를 딛고 일어서는 조그마한 ‘불씨’가 바다 위로 드러난 것이다. 아침해는 처음엔 새색시처럼 얌전하고 수줍게 떠오르다가 이내 구름 위로 당당하게 올라서는 청년의 모습으로 바뀐다. 저마다의 감흥이 사람들의 표정 위로 지나간다.
해가 바다 위로 둥그렇게 떠오를 때까지 사람들의 기원은 멈추지 않았다. 바다도 붉고 사람도 붉고 향일암도 붉어질 때까지 무수한 기도와 바람들이 오고 갔다. 우리가 일출여행을 희망여행이라 부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끝까지 달려가 다시 시작하는 여유.
★일출 포인트: 대웅전 오른쪽 길을 에돌아가면 거대한 바위굴이 등장한다. 이는 원효대사가 수도했다는 ‘관음전’으로 가는 길. 온몸으로 해를 받는 관세음보살상과 함께 관음전에서 보는 일출도 대웅전 못지않게 장관이다. 그 외에도 여수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은 많다. 향일암에서 20분 거리인 금오산 정상 역시 훌륭한 전망대다. 또 돌산대교나 몽돌이 아름다운 무슬목유원지, 방죽포해수욕장, 율림삼거리의 작은 어촌마을도 추천할 만하다.
★교통: ▶자가용: 남해고속도로-순천IC -여수행 17번 국도-돌산대교-향일암
▶기차: 서울-여수(매일 14회 운행) 여수역(061-663-7788)
★문의: 여수시청 관광홍보과 061-644-1411, 향일암 매표소 061-644-0309
▲ (위에서부터) 태백산 설경. 천제단은 가장 좋은 일출명소로 손꼽는다. 향일암 대웅전에서 내려다 본 임포항. ‘거북목’이라 불리기도 한다. 태백산을 수놓은 화려한 눈조각들. 조명 덕에 야간이 더 멋지다. | ||
여수 향일암의 일출이 남도의 고찰과 수평선이 빚어내는 고요한 일출이라면 설화와 주목, 그리고 운무가 어우러진 태백산의 일출은 화려함과 장엄함으로 대표된다.
태백산 외에도 설악산, 지리산 등 장쾌한 일출을 볼 수 있는 산들은 많다. 그럼에도 해마다 일출을 보려고 태백산(1566m)으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눈이 많은 겨울에도 등산로가 순탄한 편이라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장군봉이나 천제단에서 백두대간 너머로 솟아오르는 멋진 일출을 보려면 새벽 3~4시쯤 등산을 시작해야 한다. 단체 산행이 아니라면 하루 전쯤 태백산 부근에 도착해 해넘이 축제를 구경하는 여유를 가져보자.
산행기점은 유일사 매표소가 일반적이다. 겨울에는 유일사 매표소에서 시작해 유일사-장군봉-천제단-망경사-당골(4시간)로 하산하는 단거리 코스를 선택해보자. 유일사는 최고봉인 장군봉(1567m)까지 오르는 최단거리 코스로 등산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길이다.
유일사에서 능선까지는 약 40여분이 걸린다. 능선에서는 상고대(나무나 풀에 눈처럼 내린 서리)의 설화가 보석처럼 반짝거리고,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산다는 주목이 신령스런 모습으로 등산객들을 맞는다. 걸음이 느려 일출 전까지 장군봉이나 천제단에 도착하지 못해도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 일출 포인트는 주목 능선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는 주목들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도 비장미를 안겨주기엔 충분하다.
등산객들은 최고의 일출 명소로 최고봉인 장군봉 대신 천제단을 꼽는다. 천제단은 태고 때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백두대간 너머로 솟아오르는 일출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장엄함과 비장미를 느끼게 한다. 어떤 산이건 산정에서 만나는 일출은 ‘힘’이 느껴진다. 많은 사람들이 태백산 일출에 감격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다시 한 해를 시작할 힘을 얻기 때문은 아닐까.
천제단에 놓인 20평가량의 원형 돌제단은 지금도 해마다 개천절이면 하늘에 제를 올리는 곳. 등산객들이 이곳에서 소원성취제나 시산제를 올리기도 한다. 천제단에서는 망경사-당골 또는 문수봉-당골 코스를 하산길로 잡는 게 좋다.
★문의: · 태백시 관광문화과 033-550-2081 · 유일사 매표소 033-550-2746
▲ 포항시 영일만에 위치한 호미곶. 일출을 보려고 몰려온 사람들 뒤로 이곳의 상징인 ‘상생의 손’이 보인다. | ||
▶ 바다로 가든 산으로 가든 겨울 일출을 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추위에서 견딜 수 있는 체력이다. 영하로 떨어지는 날씨에서 최소 3~4시간을 견디려면 방한복과 함께 주머니 손난로, 체력을 보충할 수 있는 이동식(초콜릿, 사탕, 보온병)을 준비하자. 그외에 모자나 마스크, 스키용 장갑 등도 필요하다. 특히 일출 사진을 찍으려면 여분의 배터리를 챙길 것, 배터리는 열이 나는 안주머니 속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 동해안으로 가는 경우 일출 명소를 찾아가는 것도 좋지만 바다가 보이는 어디라도 일출 명소가 될 수 있으니 장소에 크게 연연할 필요는 없다. 경포대, 낙산해수욕장, 추암해수욕장, 정동진 등에는 사람이 몰리지만 그 외에도 작고 조용한 해변은 수도 없이 많다. 삼척 궁촌리에서 장호, 용화로 넘어가는 언덕도 일출을 맞기엔 그만이다.
박수운 여행전문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