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기만 해도 정겨운 외암마을의 풍경. 예스런 초가집은 전시용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이다. | ||
마을의 시계가 아마도 고장 난 듯하다. 그럼에도 시계를 고쳐서 시간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마을의 시간은 정말 느리다. 속도전에 익숙한 ‘바깥사람들’이 보기에 이곳은 정말 희한한 곳이다. 아직도 주민들이 초가집에서 생활하고 돌담길을 돌아 ‘마실’을 다니며 한가롭게 산다. 문명의 변화에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외암리로 들어서려면 개천 하나를 건너야 한다. 마을 뒤쪽에 자리한 설화산 계곡물과 강당골에서 흘러온 물줄기와 합수해 제법 큰 개천을 이루었다. 이른바 ‘배산임수’. 풍수지리학상 외암마을은 최고의 명당자리에 터를 잡았다.
돌다리를 지나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장승들이 길손을 맞는다. 길은 외길. 그러나 이 길은 올라가면서 수많은 가지를 친다. 가지를 친 길이 또 다시 가지를 치는데 그 모양이 나무가 자라면서 사방으로 팔을 벌리는 것과 흡사하다.
외암마을은 이 수많은 길들이 참 인상적이다. 휘감아 돌아가는 길 좌우로는 어른의 어깨 높이까지 돌담이 쌓여 있다. 돌담의 총 길이는 무려 5천3백m. 높지도 낮지도 않은 돌담 너머로 주민들의 생활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 외암마을에선 어디를 가든 어떤 것이든 다 촬영 포인트가 된다. | ||
그 중에서도 선친이 영암군수를 지냈다고 해서 ‘영암댁’이라고 불리는 건재고택이 가장 유명하다. 지은 지 1백80여 년 된 한옥으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집 주위로 서 있고, 십장생 모양의 정원석, 반달 모양의 연못으로 꾸며진 정원은 우리나라 1백대 정원에 꼽힐 정도. 건재고택 사랑채의 편액과 현판들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 또한 높다.
마을은 하나의 숲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전국 아름다운 마을 숲’ 대상을 받을 정도로 숲이 잘 가꾸어져 있다. 수백 년 된 낙락장송들과 당산나무가 돌담길, 초가, 한옥과 어우러져 편안함을 준다.
마을에서는 각종 민속체험이 가능하다. 떡메치기라든가 투호놀이 등은 방문객들에게 인기다. 정월 대보름에 즈음해서는 장승제와 달집태우기, 쥐불놀이 등도 하고 있다.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마을에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전통행사다.
외암마을 안에는 번듯한 식당이 없다. 입구에는 몇 개 있지만 마을에는 상호를 걸어놓고 장사하는 집이 없다. 골판지나 나무판자에 청국장, 된장찌개 등의 소박한 메뉴를 적어 놓고 집에서 먹는 반찬을 그대로 내어 준다. 고기반찬 하나 없지만 텃밭에서 가꾼 무공해 채소 위주의 밥상은 어느 화려한 도심 식당의 것보다 더 정성스럽고 맛있다.
외암마을을 둘러보고 나가는 길, 잠시 들를 곳이 있다. 쌀쌀한 농촌의 고샅길을 걷느라 서늘해진 몸을 녹여줄 꽃들의 천국 ‘세계꽃식물원’. 외암마을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다. 요즘 이곳에서는 겨울꽃축제가 한창이다.
▲ 외암마을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세계꽃식물원에선 ‘겨울꽃축제’가 한창이다.(왼쪽), 아름다운 외암마을 돌담길. 돌담 길이가 무려 5천3백m에 달한다고. | ||
이 식물원의 특징은 ‘오감체험’이 가능하다는 것. 향기를 맡고 감상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맘껏 만져보고 식용꽃은 따서 먹어 볼 수도 있다. ‘식물이 아파요. 만지지 마세요’라는 푯말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다소 신선한 충격이다. 웰빙정원에 있는 종모양의 브라질 아브틸론은 대표적인 식용꽃. 매우 단 맛이 난다. 맛을 잘못 느꼈나 해서 다시 먹어 봐도 역시 달다.
한편 이곳에서는 천연꽃손수건 만들기, 말린꽃 액자만들기, 천연목욕비누 만들기 등 체험거리도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 특히 꽃비빔밥은 큰 인기.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식용꽃 비빔밥 한 그릇에 몸은 벌써 봄 들녘을 거니는 기분이다.
[여행 안내]
★문의: ·외암민속마을(http: //www.oeam maul.co.kr) 041-541-0848 · 세계꽃식물원(http:// www.asangarden.com) 041-544-0746~8
★먹거리: 외암민속마을 내에 식당을 겸하는 집들이 더러 있다. 번듯하게 상호를 내건 것이 아니라서 과연 이곳이 음식을 파는 곳이 맞나 싶기도 할 정도. 골판지나 나무판자 위에 몇 가지 안 되는 메뉴를 적어 놓았다. 그 품새야 보잘 것 없지만 맛만은 일품.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한 정이 들어있는 청국장, 된장찌개, 김치전 등이 모두 4천원. 단 매표소 근처 음식점은 이보다 조금 비싸다.
★가는 길: ▶외암민속마을: 경부고속도로 천안I.C→온양 방면→삼성전자 신도리코를 끼고 좌회전→구온양 사거리에서 39번 국도로 갈아타고 직진. ▶세계꽃식물원: 서해안고속도로 서평택I.C 또는 송악I.C→아산현대차출고장, 도고온천 방향→도고온천역 예산 방향 직진(경부고속도로 이용시에는 천안I.C→아산(온양온천) 21번 국도→도고온천 입구에서 예산 방향 4km 직진→도고 방향).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