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계방향으로) 광양 매화마을에는 매화가 활짝 피어 상춘객들의 맘을 설레게 하고 있다. 청매실농원 앞마당에 가득한 매실장아찌 장독대.매화꽃이 떨어지고 나면 시큼한 매실이 열린다. 매실로는 술, 차, 장아찌를 만든다. 사진제공=광양시청 문화관광과 | ||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를 지나고 자동차는 느리게 바퀴를 굴리며 나아간다. 봄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는 섬진강은 유유히 흐르고 있다. 곳곳에 ‘전망 좋은 곳’이라고 써 붙인 팻말이 길을 멈추게 한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평온한 풍경이다.
봄을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강태공들이다. 섬진강 고운 모래 위에 발을 파묻고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 그 자체로 그림이 된다. 섬진강은 5대 강 중에서 가장 맑고 주변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는 곳으로 꼽힌다. 강에는 은어와 누치, 참게, 민물장어 등이 풍부하다. 아직 물고기가 활동하기에는 다소 이른 시기. 강태공들이 낚는 것은 섬진강의 물고기가 아니라 강물에 부서지는 봄 햇살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하고 길을 달린다. 재촉할 일도 없지만 그렇다고 두고 온 풍경이 아쉽지만은 않다. 눈을 또 즐겁게 할 멋진 풍광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화개장터에서 자동차로 20분이면 닿는 곳, 해마다 봄이면 상춘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곳. 바로 섬진마을이다. 워낙 매화나무가 많아 ‘매화마을’로도 불리는 곳이다.
매화마을은 지금 온통 매화꽃 천지다. 마을 주변 밭과 산 능선 등에서 10만 그루에 달하는 매화나무가 꽃을 터트려 장관이다.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매화꽃은 이번 주말 그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줄 예정이다. 주말인 3월 19일까지 매화마을에서는 축제 한마당이 벌어진다.
매화마을에는 여러 개의 농원이 있다. 그 중에서도 ‘청매실농원’은 꼭 한 번 들러볼 만한 곳이다. 이 농원은 매화나무 집단재배를 전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곳. 1930년경 율산 김오천 선생이 심은 70년생 고목 수백 그루를 포함해 매화나무단지가 잘 조성되어 있다. 현재는 며느리인 2대 홍쌍리 씨와 그 장남인 3대 김민수 씨가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매실주와 매실장아찌, 매실원액을 만드는 데 쓰이는 전통옹기 2000여 기가 농원 앞마당에 쌓여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곳은 섬진강을 굽어볼 수 있는 전망대로서도 제 몫을 한다. 청매실농원 뒷마당으로 난 길을 돌아 산중턱을 오르면 섬진강을 낀 매화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따금 섬진강에서 재첩을 잡는 작은 배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 (왼쪽 위부터 반시계방향으로)매화마을 옆으로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 아래는 망덕포구의 해거름 녘 모습. 이곳에 가면 별미 ‘벗굴’을 실컷 맛볼 수 있다. 오른쪽은 광양 매화마을. 풍성한 꽃구름을 감상하고 싶다면 이번 주말을 놓치지 말자. | ||
진상면 비평리 해발 231m에 자리한 불암산성은 백제시대인 600년경에 돌을 쌓아 만든 둘레 500m인 석성이다. 산성이라지만 지금은 무너진 돌담처럼 돌무더기들이 성곽의 형태로 쌓여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한번쯤 역사를 추억하게 만든다.
광양읍 용강리 뒤편으로는 해발 200m 지점에 ‘마로산성’이 있다. 이 산성 또한 불암산성과 비슷한 시기에 축성된 것으로 임진왜란 때에는 광양읍성의 회복을 위해 왜군과 공방전을 벌인 곳이다. 마로산성에는 남과 북에 두 개의 봉우리를 이용한 망루가 있어 광양읍성, 중흥산성, 광양만등 사방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섬진강 하류인 진월면 신아리 170m 고지에 자리한 봉암산성, 옥룡면 운평리 해발 400m 지점에 위치한 중흥산성 등이 오랜 세월을 견디며 그 역사를 전하고 있다.
광양 여행 때 시간이 된다면 백운산 등반을 권하고 싶다. 백운산은 섬진강 마지막 150리 물길을 광양만까지 인도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산이다. 백운산은 살아 있는 식물의 보고이기도 하다. 한라산 다음으로 가장 다양한 식물의 종류를 보유하고 있는 백운산에는 온대에서 한대에 이르기까지 900여 종의 식물이 천혜의 기후여건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나무들이 깨어나기 시작하는 요즘 백운산으로 가면 신비의 약수인 고로쇠 수액을 맛볼 수 있다.
▲ 어른 손바닥보다 더 큰 벗굴 구이. | ||
벗굴은 일반 굴과는 차원이 다르다. 우선 바다가 아닌 강에서 자란다는 점이 다르고, 무엇보다 엄청나게 크다는 점이 특이하다. 벗굴은 과장을 조금 보태 사람 아기 얼굴만 하다.
머구리(남자 잠수부)들이 섬진강에서 따오는데 강에서 난다고 해서 ‘강굴’이라고도 한다. 벗굴은 오직 섬진강 망덕포구 일대에서만 난다. 벗굴은 날로 먹기도 하지만 보통은 구워 먹는다. 화로는 벗굴을 대여섯 개 올려놓으면 꽉 차 버린다. 화로 위에서 익어가는 굴. 절로 군침이 돈다.
벗굴을 먹는 방법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일반적인 방법, 초장에 찍어 먹는다. 두 번째는 고추냉이를 푼 간장에 찍어 먹는다. 이 역시도 흔한 방법이다. 세 번째는 조금 다르다. 김치에 싸서 먹는 것이다.
집은 순천에 있으면서도 망덕포구가 좋아 배를 사놓고 하루가 멀다 하고 들른다는 김선택 씨(46)가 가르쳐준 방법이다. 묵은 김치의 시큼한 맛과 벗굴의 고소한 맛이 어우러진 게 천하일미다.
망덕포구는 인심이 넘치는 곳이다. 설렁설렁 말을 섞어가며 소주잔을 기울이다보면 그 큰 굴들이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쉬운 순간, 횟집주인이 “이번엔 이 굴 맛 좀 보시라”면서 한바구니 가득 다른 굴을 내어온다.
벗굴과 비교하자면 갓난아기 수준인 종굴. 섬진강의 수면이 평균 수위보다 훨씬 낮아질 때가 간혹 있는데 이 때 개흙에 들어가 주워온 것이란다. 종굴 맛은 벗굴보다 진하다. 굴구이 후에는 입가심으로 벗굴죽 맛도 보길 권한다. 굴 특유의 시원하고 고소한 맛이 죽 전체에 녹아 있다. 바로 겨우내 그리웠던 봄의 맛이다.
[여행 안내]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전주IC→남원 방향→춘향터널 지나 구례방면 우회도로→구례 화엄사 방향→하동 쌍계사 지나 다리 건너 좌회전→매화마을
남해고속도로 하동IC나 광양·옥곡IC 등을 이용하면 더 빨리 닿기도 하지만 섬진강변 물줄기 따라 여유로운 여행을 하려면 전주 방향에서 구례를 거쳐 내려오는 것이 가장 낫다.
★숙박: 매화마을에서 망덕포구 방향으로 1km 정도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느랭이골 자연휴양림’ 표지판이 보인다. 최근 개장한 이곳은 펜션 25동 74호실의 숙소를 갖추고 있다. 상록수림 안에 있어 매우 쾌적하다. 7평짜리 작은 방이 8만 원(4인), 34평짜리 큰 방은 20만 원.
★먹거리: 섬진강 재첩회와 재첩국을 맛보지 않을 수 없다. 진월면 신아리 청룡식당(061-772-2400)은 강변에서 재첩요리만 30년째. 재첩국 5000원, 재첩회 2만~4만 원. 망덕포구로 가면 횟집들이 즐비하다. 벗굴이 제철이다. 하나로횟집(061-772-3637)의 인심이 넉넉하다. 벗굴구이 3만 원. 벗굴죽 5000원.
★문의: 광양매화축제(http://maehwa.org) 061-797-3363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