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으로 완연히 접어든 제주. 노란 유채꽃밭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꽃의 품에 안겨 추억을 찍고 간다. | ||
개나리꽃 가득한 제주의 북동쪽 바닷가 마을 행원. 이곳에는 거대한 풍차가 바람을 받아 쉼 없이 돌아가고 있다. 행원은 북제주군 구좌읍 동복리에서부터 시작되는 해안도로를 타고 20분쯤 달리면 닿는 아주 조그만 마을. 제주도에서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행원 마을이 각광 받는 여행지가 된 것은 풍력발전단지가 마을에 들어선 뒤부터다.
마을에는 높이 45m, 최대 날개 길이 48m에 이르는 풍차 15기가 설치돼 있다. 바람의 길목에 띄엄띄엄 떨어져 세워진 풍차들이 일제히 돌아가기 시작하면 그 모습이 장관이다. 왼쪽으로는 봄 햇살을 받아 코발트블루로 빛나는 바다가 펼쳐져 있고 오른쪽으로는 하얀 풍차들이 서 있다. 그 사이에 아담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던 사람들도 처음 보는 이국적인 아름다운 풍경에 자기도 모르게 빠져든다. 그래서 이곳에선 보행도로가 따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갓길에 차를 세우고 도로를 따라 걷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사람들은 돈키호테가 풍차로 돌진하듯 어떤 마력에 이끌려 풍차 아래로 몰려든다. 웅웅거리며 돌아가는 날개가 무섭지도 않은 듯하다.
이 풍차들은 보기 좋으라고 설치한 전시품이 아니다. 실제로 전기를 생산하는 ‘일하는 풍차’다. 제주도에는 이곳 구좌읍 행원과 한경면 두 곳에 풍력발전소가 있다. 행원단지가 15기인 반면 한경단지는 아직 4기만이 바람을 타고 있다. 바람을 팔아봐야 얼마나 돈이 되겠냐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두 곳에서 1년 동안 모인 바람은 모두 37억 원어치. 행원단지는 이미 흑자로 돌아섰다.
제주도는 섬이라는 지리적 특수성 때문에 전기 공급에 애로를 느낄 수밖에 없다. 자체 화력발전으로는 전기를 모두 댈 수가 없어 전남 쪽에서 해저케이블로 필요량의 40%가량을 끌어다 쓰는 실정이다. 그런 점에서 풍력발전은 하나의 대안이다. 현재는 겨우 1%의 전력량만을 바람으로 만들어내고 있지만 앞으로 8%대까지 충당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바람과 파도가 만들어 놓은 걸작품 지삿개 해안. 화산 폭발로 생긴 육각 기둥 모양의 ‘주상절리’는 수만 년 동안 다듬어져 현재의 모양이 됐다. | ||
행원에서 빠져 나와 일주도로를 달리다가 다시 세화-종달 간 해안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성산에 닿는다. 남쪽에서부터 봄바람이 실어온 따스한 기운이 성산 일대에 노란 유채꽃을 가득 피웠다.
마치 물감을 풀어놓은 듯 샛노란 유채꽃이 해안도로변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사람들은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유채꽃밭으로 뛰어든다. 하지만 유채꽃밭을 즐기려면 1000원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마을사람들이 농사를 포기하는 대신 받는 돈이다. 웬 풍경을 돈 받고 파느냐고 생각하면 언짢기도 하지만 추억을 사는 대가치고 비싼 돈은 아니다.
유채꽃밭에 들어가면 진짜 봄이 느껴진다. 향긋한 유채꽃 내음이 코를 간질이는 것이다. 그 봄의 향기는 벌의 잠도 깨운 듯 유채꽃밭으로 날아드는 벌들이 무수히 많다.
성산 정상에도 봄기운이 와 닿았다. 겨우내 노랗던 잔디가 푸르스름하게 올라왔다. 성산은 바닷가에 우뚝 솟아 마치 성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 실제론 용암이 바다 속에서 분출돼 형성된 화산이다. 분화구의 직경이 600m, 분화구 바닥은 해발 90m에 이른다. 성산은 그 아스라한 아름다움 때문에 흔히 ‘영주십경’ 중 제1경으로 꼽힌다.
성산의 정상은 1년 내내 바람 잘 날 없는 곳이다. 산 아래가 고요하더라도 정상에 올라서면 세찬 바람이 불어댄다. 그러나 겨우내 매서웠던 찬바람이 아니라 이젠 따스해진 봄바람이 기분을 들뜨게 만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산항 방면에서 정상인 일출봉을 오르는데 이 때문에 일출봉 뒤편의 절경을 놓치게 마련이다. 물이 빠지면 푸른 수초를 드러내는 커다란 넓적바위와 깨끗한 백사장이 어우러진 이곳은 산책하기에 그만이다. 백사장 옆으로는 조랑말들이 뛰어노는 모습도 볼 수 있다.
▲ 성산포 뒤편 해안의 아름다운 풍경(맨 위),‘바람의 섬’ 제주의 또 하나의 상징인 행원 앞바다 풍차가 이국적이다. | ||
지삿개의 그 육각 모양 기둥의 바위는 ‘주상절리’라고 한다. 절리란 용암이 식을 때 수축하면서 만들어지는 틈새. 쉽게 풀이하면 주상절리란 암석에 기둥 모양의 틈새가 형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지삿개 주상절리는 자연이 아니고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걸작품이다. 화산 폭발로 생긴 절리는 수만 년의 세월 동안 바람과 파도에 깎이면서 현재의 모양이 됐다. 바람과 파도가 드셀 때 지삿개는 최고의 풍경을 선사한다. 파도가 절리에 부딪힐 때면 물기둥이 공중으로 솟구치는데 그 모습이 가히 장관이다.
우리나라 곳곳에 주상절리 지형이 발달돼 있으나 지삿개처럼 규칙적이고 분포가 넓은 지역은 보기가 드물다. 제주도에서는 지삿개 주상절리의 지질학적 특성과 빼어난 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이 일대 해안을 제주도 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다.
지삿개 일대에서는 높은 파도에도 불구하고 제트보트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다 ‘360도 턴’을 하며 물보라를 일으키는 제트스키 체험은 볼 것이 너무 많아 지칠 법도 한 제주여행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여행 안내]
★가는 길: 지삿개는 서귀포 중문관광단지 내에 있다. 찾는 데 어려움이 없다. 성산일출봉은 제주시를 기준으로 동회선 일주도로→동남리 입구→성산리→성산일출봉. 행원 풍차마을은 성산포를 기준으로 종달-세화 간 해안도로→ 평대, 한동, 월정→행원 풍차마을.
★숙박: 우리나라 제1의 관광지인 만큼 숙박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행원 풍차마을 쪽은 그리 잘 알려진 관광지가 아니라서 숙박시설이 많지 않다. ‘윈드밀팬션’(064-723-7350)이 그나마 걱정을 덜어준다. 제주도는 관광지 간에 이동 거리가 다 고만고만하고 시간도 그리 많이 걸리지 않는다. 중간 지역에 그림 같은 펜션을 숙소로 잡아놓고 오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먹거리: 성산일출봉 뒤편 동남으로 이어지는 작은 길가에 있는 ‘제주뚝배기’(064-782-1089)가 유명하다. 해물뚝배기의 국물맛이 일품이다. 서귀포에는 ‘괸당네갈치요리전문점’(064-732-3757)이라는 요릿집이 있다. 시원한 바다 풍경에 음식맛이 두 배다. ‘괸당’은 친족을 의미하는 제주 방언.
★문의: 제주도청 문화관광과(http://cyber.jeju.go.kr) 064-710-2114)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