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권에서 논의가 지지부진해진 개헌론 불씨를 살리기 위해 특단의 카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하지만 그 뒤에도 여전히 여야 잠룡들과 각 계파들의 시각차가 극명하게 노정되면서 이번에도 개헌 논의가 물 건너가는 것이 아니냐는 부정적인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이에 청와대는 이 대통령이 특별기자회견의 형식을 통해 국민투표를 전격 제안하는 등 특단의 카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청와대의 개헌론 ‘밑불 살리기’ 이면을 따라가 봤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통 ‘여의도’가 아닌 기업가 출신이다. 이런 그의 ‘태생적 한계’는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 단점이자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촛불정국의 한복판에서 헤매고 있을 때 여권 내부에서조차 “대통령이 정치를 몰라 상황을 이렇게까지 몰고 갔다”라는 비판론이 봇물을 이뤘다. 이 대통령의 정무적 판단능력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는 얘기도 그때 나온 것들이다.
하지만 올해 5월을 넘어서면서 이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서서히 달라졌다. 중도실용·친서민 정책을 표방, 국민들과의 ‘소통’에 주력한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하면서다. 정운찬 총리 기용은 그 기대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런데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이 대통령의 정무적 판단 능력이 일취월장한 것은 아니다. 대신 그가 평소 누누이 강조해온 ‘실패는 할 수 있지만 그것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평소의 소신이 그의 정무적 판단 능력에 대한 약점을 커버해준 것이다. 실패를 통해 효율적인 성공 노하우를 30여 년 동안 체득한 대기업 CEO 출신인 이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빠른 학습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참모들은 말한다. 그래서 촛불정국이라는 재앙에 가까운 실패를 거치면서 그의 정무적 판단이 참모들보다 더 선제적이고 진보적인 쪽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 대통령을 읽는 두 가지 코드를 개헌론이라는 복잡한 방정식에 도입해보면 향후 그가 선택할 카드도 예견해볼 수 있다. 먼저 이 대통령이 정통 여의도파가 아니기 때문에 정치에도 문외한이라는 단점은 앞으로 그가 ‘기성 정치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이 대통령을 직·간접적으로 접촉한 여권 관계자들은 개헌론에 대한 그의 ‘결심’이 생각보다 훨씬 깊고 강고하다고 말한다. 여권의 한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이 말로만 개헌을 외치다 결국 차기 대권주자들의 눈치를 보게 되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그 꼬리를 슬그머니 내리는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강조한 것으로 안다. 사실 여야 정치권은 개헌론에 대해 그리 적극적이지 않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개헌론도 세종시의 경우처럼 지금 정치적으로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국가 백년대계 차원에서 자신이 꼭 해결해내야만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기성정치권에서 비교적 떨어져 활동해온 이 대통령이 개헌론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도 기존 틀을 벗어나 상당히 구체적이고 파격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밝혔다.
오랫동안 기업가 생활을 하며 체득한 빠른 학습능력도 그가 결국 ‘개헌이라는 고양이목에 방울달기’ 같은 어려운 게임을 성공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사실 이 대통령은 기존 정치권에서 추진돼온 개헌론의 실패 사례를 충분히 알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7년 초 4년 연임제를 골자로 하는 원포인트 개헌을 주장했지만 야당(한나라당)의 반대에 부딪혀 실패했던 사례를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당의 한 친이 의원은 이에 대해 “당시 상황을 보면 노 전 대통령의 뜬금없는 개헌 주장에 한나라당은 ‘뭔가 노림수가 있을 것이니 절대 걸려들지 말자’라며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때와 상황은 비슷하다. 정치적 이해가 걸린 여야의 잠룡들은 개헌에 대해 소극적이다. 이런 점에서 이 대통령은 그때와 전혀 다른 정치적 상황을 자신이 마련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자신이 먼저 희생하고 양보할 수 있다는 논리로 접근하지 않는 이상 개헌 논의는 2007년 노무현 정권의 실패에 대한 재판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게 이 대통령의 기본적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런 점에서 최근 청와대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개헌론에 대한 이 대통령의 파격적 선택은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여권의 복수 소식통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고착구도에 빠져 있는 개헌론에 다시 밑불을 지피기 위해 ‘적당한 시점에서’ 대국민 특별기자회견 등의 형식을 통해 국민투표를 전격 제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때 가장 핵심은 자신의 임기를 8개월이나 단축하여 2012년 4월 총선 및 대선 동시 선거를 전격 제안한다는 것이다. 이는 청와대 참모들의 압도적인 반대를 받는 것이긴 하지만 이 대통령은 기존 정치의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만큼 민주당이나 친박그룹의 양보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권력구조는 국민들과 정치권에서 비교적 널리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대통령 연임제로 하고, 지방행정체계 개편 등의 내용도 함께 담길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같은 국민투표제안을 위해 친박그룹과 민주당 등이 모두 참여하는 여야합동추진반을 출범시켜 개헌작업에 속도를 높인다는 구상도 세운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청와대 정무라인은 이에 대해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오히려 대통령은 개헌론에 한발 물러서 있어야 한다. 정치권의 논쟁 정도로만 붙여놓아야지, 대통령이 주도하게 되면 야당은 무조건 정략적이라며 따라오지 않을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이 문제를 이 대통령이 주도하는 것 자체가 굉장한 부담인 동시에 시기도 적절성이 없다. 현재와 같이 국민들의 정책 선호도가 높은 상황에서는 이런 무리수를 둘 필요가 전혀 없다. 개헌론을 띄우게 되면 여야가 갈라지고 보수 진보가 갈라지는 등 사회통합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여권 주변에서는 “이 대통령이 개헌에 대한 논의를 내년 2~4월 사이에 마무리 지은 뒤 6월 지방선거 전에 어떤 식으로든 결판을 낼 것”으로 관측한다. 이 시기를 놓치게 되면 집권 후반기에 들어선 이 대통령이 개헌을 이끌어갈 만한 추동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 개헌론은 물 건너가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개헌에 대한 국민들의 뜨뜻미지근한 태도와 여야 잠룡들 간에 얽혀있는 복잡한 실타래를 어떻게든 풀지 않는 한 이 대통령의 ‘백년대계’ 구상도 일장춘몽에 그칠지 모른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