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매물도에서 바라본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아름다운 풍경(위). 등대섬의 등대 근처에는 돌탑들이 무수히 쌓여 있다(아래). 희한하게도 돌탑들은 거센 바닷바람에도 무너지는 일이 거의 없다. | ||
경남 통영항에서 동남방으로 26㎞, 1시간 30분 뱃길을 달리면 닿는 소매물도는 살기에 척박한 곳이다. 평지가 거의 없고 섬 주변으로 모래사장도 드물다. 온통 바위와 산으로 이뤄진 곳이 바로 소매물도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쌀 한 톨 거둘 농지가 없다. 물질을 하고 고기를 잡아 쌀을 산다. 하나 더 ‘수입잡이’가 있다면 민박이다. 이 섬의 아름다움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뭍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 겨울을 넘기자마자 짧은 봄을 지내고 벌써 여름으로 치닫고 있는 소매물도가 황사에 넌더리 난 사람들의 휴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소매물도는 매물도, 등대섬과 함께 3형제 섬이다. 따지자면 등대섬과 소매물도는 썰물 때면 바닷길이 열려 걸어서도 갈 수 있으니 분리된 섬은 아니랄 수도 있다.
통영여객선터미널을 떠난 배가 선착장에 닿을 즈음 섬사람들이 몰려나온다. 행여 묵고 갈 객이라도 있을까 배에서 내리는 이들에게 말을 건네는 주민들에게서 제법 노련함이 느껴진다.
마치 성채도시 마추픽추처럼 섬 산등성이에서부터 꼭대기까지 미로 같은 길이 나 있고 그 사이사이에 집들이 자리하고 있다. 돌담을 쌓아 바람을 피하고 지붕은 되도록 낮게 해 머리가 천장에 닿을 지경이다. 이 땅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주거지 풍경이다.
전기는 자가발전을 할 수밖에 없다. 한여름 여행객들이 한꺼번에 몰려올 때면 전력량이 모자라 끊기기 일쑤. 물도 부족하다. 이렇듯 불편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소매물도. 사람들은 뭐가 그리 좋아서 이 섬을 최고의 휴양지로 여기며 마음의 때를 벗기는 걸까.
소매물도는 해안선의 전체 길이가 약 3㎞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섬이다. 섬을 둘러보는 데도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아침 일찍 길을 나선 사람들은 점심도 잊고 저녁이 다 되어서야 돌아온다. 그만큼 가는 곳곳마다 발길을 붙잡는 풍경으로 가득하다.
▲ 등대섬을 지키는 등대. 이곳을 찾는 나그네들이 많아 등대는 전혀 외롭지 않을 것 같다(위), 낚싯배를 타고 소매물도를 한 바퀴 도는 모습. 곳곳에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에 그저 탄성만 나올 뿐이다. | ||
이 벼랑에는 남매바위가 있다. 매물도에서 태어난 쌍둥이들이 소매물도에서 해서는 안 될 사랑을 하는 바람에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바위다.
그 길로 계속 내려가면 해수욕장. 이름이야 그렇게 붙었지만 어디 내놓을 정도는 아니다. 바위 사이로 약간의 모래사장이 있을 뿐. 하지만 앞바다는 열 길 물속까지도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다. 물고기와 해삼, 멍게, 소라, 성게, 전복 등이 다 보인다. 들어가 그저 손으로 건져내고 싶지만 요즘 부쩍 늘어난 해파리가 무섭다.
섬의 둘레를 그냥 다 돌기에는 길이 마땅치 않다. 섬의 산책코스는 따로 있다. 선착장에서부터 마을을 지나 망태봉으로 오르는 길, 그리고 여기서 다시 등대섬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망태봉까지 가는 길은 멀지 않다. 선착장에서부터 약 30분만 걸으면 닿을 정도로 봉우리는 낮다. 망태봉 정상에 서면 섬 주변이 훤히 내려다보이는데 사람들이 왜 이곳을 찾는지 비로소 그 이유를 알게 된다.
등대섬을 비롯해 수많은 통영과 거제의 섬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모호할 정도로 푸른빛이 산란하며 잔치를 벌인다. 천태만상의 기암괴석들이 섬을 감싸고 파도는 그 바위에 부딪혀 하얀 포말로 사라진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한려해상은 가히 남해 제일의 절경이다.
이른 새벽이나 저녁 해거름 무렵 망태봉 정상에 오른다면 또 다른 풍경의 선물을 받게 된다. 아무런 시야의 방해도 받지 않는 이곳의 일출과 일몰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등대섬 가는 길도 망태봉에서부터 30분이면 충분하다. 물때만 잘 맞춘다면 소매물도와 등대섬은 걸어서도 오갈 수 있다. 그러나 밀물이 들기 시작하면 물살이 거세 철저히 통제된다. 그래서 등대섬은 선착장에서 소형 선박을 타고 유람을 하며 가는 것이 보통이다.
대부분의 선주들은 섬 일주 가이드를 겸하기 때문에 곳곳의 지명과 그 유래를 들을 수 있어서 등대섬 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다. 선착장에서 등대섬까지는 1인당 편도 5000원에서 8000원 선. 등대섬에서 나갈 시간을 미리 전해주면 그 시간에 맞춰 다시 마중 나온다. 이 배를 이용해서 갯바위 낚시도 할 수 있다. 낚시에 취미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소매물도에 갈 때 장비 챙기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등대섬은 소매물도와 또 다른 맛이 난다. 소매물도가 험한 바위와 봉우리로 이루어진 섬이라면 등대섬은 보다 유순한 능선을 가졌다. 선착장에서부터 등대가 있는 정상까지는 대략 10분 거리. 능선을 따라 걷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등대섬은 그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CF와 영화 촬영 장소로 이름난 곳이다. 이곳의 등대는 1917년 8월에 처음 점등됐다. 등대섬 주변에는 돌탑들이 무수히 쌓여 있다. 모진 바람에도 전혀 쓰러지지 않는 돌탑들이 신기하기만 하다. 작은 돌멩이 하나를 주워 다른 사람의 소망 위에 자신의 소원을 덧붙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섬의 아름다움에 취했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좀체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어느 새 소매물도를 지키는 또 하나의 등대가 되고 만다.
[여행 안내]
★가는 길: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동통영IC→14번 국도→통영여객선터미널. 섬까지의 배편은 1일 2~3회 운항한다. 소매물도까지 90분이 걸린다. 운임료는 편도 1만 3200원.
★숙박: 소매물도의 숙박 사정은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가구가 민박을 놓는데 허름한 집에 비좁은 방들로 인해 편안함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수준. 다만 소박한 주민들과 말벗하며 바닷소리를 안주로 술 한잔 기울이기에는 좋다. 깨끗한 곳을 원한다면 산장을 미리 알아보는 것이 좋다. 다솔산장(055-641-6734), 하얀산장(055-642-8515), 힐하우스(055-641-7960) 등은 서둘러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다.
★먹거리: 소매물도에는 음식점이 없다. 먹거리는 직접 챙겨 가야 한다. 섬에서는 주민들이 잡아온 성게와 고동, 해삼 등 각종 싱싱한 해물을 값싸게 맛볼 수 있다.
★문의: 통영시(http://www.gnty.net): 055-646-2111, 통영항여객터미널: 055-642-0116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