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양에서 마천으로 이어지는 지안재 고갯길 야경. 자동차 불빛이 그려내는 궤적이 아름답다. 이 도로는 아찔할 정도의 급커브길이 이어진다. | ||
함양에서 마천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고개. 이곳에 지안재와 오도재가 있다. 함양읍에서 24번 국도를 타고 가다 마천면 방면 1023번 지방도로로 갈아타면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지리산 장터목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했던 고갯길이다.
지안재 길은 지난 2003년 11월 30일 새로 개통됐다. 그 옛날 사람들이 괴나리봇짐을 지고 울고 넘었던 험한 길이 자동차로도 쉽게 다닐 수 있는 길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이 길은 속도와의 경쟁을 불허한다. 이유는 바로 길의 모습 때문. 생긴 모양이 마치 뱀이 기어가는 듯하다. 화천에서 평화의 댐으로, 영월에서 담양으로 이어지는 길이 ‘굽이굽이’라지만 지안재는 정도가 다르다. 단 1km 정도의 코스지만 ‘S’자 급커브길은 다른 길과 비교 자체가 불가하다. 자동차경주장에 가보면 ‘헤어핀코스’가 있다. 머리핀처럼 생긴 급커브길이다. 지안재는 이런 헤어핀이 연속으로 이어진 환상의 드라이브코스다.
지안재의 매력은 밤에 더욱 발한다. 자동차 불빛이 그려내는 궤적이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보면 황홀할 지경이다. 지안재의 교통량은 그다지 많지 않다. 보통 10분에 한두 대가 지날까 말까 할 정도. 그래서 야경을 담는 일은 인내를 필요로 한다.
지안재 정상에서 함양 방향으로 내려가는 차의 불빛은 노랗고 마천 방향으로 올라오는 차의 불빛은 빨갛다. 그 두 가지 색깔의 불빛이 서로 교차하면서 지안재의 야경은 완성된다.
지안재를 넘어 마천 방향으로 달리면 곧 오도재다. 변강쇠와 옹녀가 지리산으로 들어갈 때 올랐다는 전설의 고갯길이다. 오도재 역시 지안재와 거의 비슷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 ‘몸체’를 다 볼 수 있는 조망지점이 없어 아쉽다.
대신 오도재 부근에는 지리산전망공원이 있다. 이곳에서는 지리산이 한눈에 잡힌다. 둘러보면 하봉, 중봉, 천왕봉, 백소령, 형제봉, 반야봉 등이 저마다 위용을 자랑하는 듯하다. 이 모두를 직접 산을 타고 오를 순 없지만 그 모습만은 가슴에 담아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지리산전망공원이다.
지안재와 오도재를 지나더라도 서암→벽송사→칠선계곡→백무동→지리산 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지는 길은 상쾌한 공기가 더없이 좋은 드라이브 코스다. 어느 곳이든 차를 멈추고 잠시 쉬어가도 좋은 길이다. 그중 특히 ‘벽송사’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꼭 한 번쯤 들러보길 권하고 싶은 사찰이다.
▲ 함양의 명물 물레방아. 백전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에는 다슬기가 많아 탐방객들이 물에 첨벙 들어가기도 한다. 아래는 상림의 산책로. 인공조림답게 길이 잘 닦여 있어서 운동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둘러보기에도 좋다. | ||
석탑은 신라 말이나 고려 초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벽송사 목장승은 전체 높이 4m 정도로 대단히 큰 편에 속한다. 왼쪽 장승의 몸통 부분에는 ‘금호장군’이라는 글자가, 오른쪽 장승에는 ‘호법대장군’이라는 글자가 음각돼 있다.
이 사찰은 비극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루트로 사용되며 혼전이 벌어졌고 수많은 영혼의 절규를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던 것이다.
서암은 벽송사에 따른 암자다. 벽송사 주차장위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100m 정도 가면 서암이 나타난다. 서암은 오밀조밀한 기암괴석과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하다. 서암 주변에는 바위굴이 많이 있는데 유명한 선승들은 거의 모두 이곳을 거쳐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벽송사는 한국 선문화와 연관이 많다.
지안재를 넘어 함양으로 달리면 역사적인 숲 상림이 있다. 이 숲은 통일신라 진성여왕 때 최치원이 조림한 인공숲으로 함양읍 서쪽을 흐르는 위천의 냇가에 자리 잡고 있다. 길이는 1.6㎞, 폭은 80~200m. 총면적은 21㏊에 이른다.
상림은 위천의 홍수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통일신라 당시에는 위천이 함양읍 중앙을 관통해 흘러 홍수의 피해가 막심했다. 함양의 태수로 부임한 최치원이 둑을 쌓아 강물을 지금의 위치로 돌리고 그 주변에는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한 것이 오늘날의 상림이다. 지금은 숲의 허리가 끊겨 상림과 하림으로 나뉘는데 하림 지역은 취락이 형성되면서 훼손되어 숲의 형태를 잃었다.
상림 숲길은 함양사람들에게 최고의 휴식공간이다. 전국의 아름다운 숲길 명단에도 항상 빠지지 않을 정도로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소나무와 노간주나무, 개서어나무, 느릅나무 등 116종류의 나무와 초본이 숲을 가득 메우고 있다. 숲의 정중앙으로 폭 5m 정도의 큰 길이 열려 있고 오른쪽으로는 폭 2m 정도의 오솔길이 나 있다.
▲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서원인 남계서원. 청계서원 바로 옆에 있다. 성종 때 실천유학의 선구자 일두 정여창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청계서원보다 규모가 더 크다(위), 상림 앞에 놓여있는 섶다리. 나무를 얽고 그 위에 황토를 덮어 만들었다. | ||
숲 안에 있는 석불도 눈길을 끄는데 원래부터 상림에 있던 것은 아니다. 함양읍 이은리 냇가에서 1950년경에 출토된 이 석불은 주변에 ‘망가사’라는 절이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보아 이 절의 유물로 추정되고 있다. 석불의 모양은 매우 소박하다. 표정이 풍화되어 흐릿하기는 하지만 눈가와 입가에 미소가 가득하다.
오솔길로 숲을 걷다보면 냇가를 가로지르는 작은 돌다리가 보인다. ‘금호미 다리’라 불리는 이 교각은 걸터앉아 쉬기에 딱 좋은데 최치원이 상림을 조림할 때 쓰던 금 호미를 걸어두었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상림이 끝나는 지점에는 함양의 명물 중 하나인 물레방아간이 있다. ‘함양산천 물레방아는 물을 안고 돌고, 우리집 서방님은 나를 안고 돈다….’ 함양에서 구전되는 곶감깎기 노래의 일부분이다. 이처럼 함양은 물레방아와 연관이 아주 깊은 곳이다. 연암 박지원이 함안의 현감으로 재직할 때 연자, 디딜, 수차, 물레방아를 이용하도록 장려하면서 함양은 물레방아의 고장이 됐다. 방앗간 옆으로는 백전에서 내려오는 차고 맑은 물이 사철 마르지 않고 흐른다.
함양에는 선비의 고장답게 향교와 서원이 곳곳에 있다. 그중 청계서원과 남계서원은 이웃하고 있는데 한 번쯤 들러볼 만하다. 정자마루에 걸터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 어디선가 시조 한 가락이 들려올 것만 같은 곳이다.
[여행 안내]
★가는 길: 대진고속도로 함양분기점에서 88올림픽고속도로로 갈아탄다. 함양IC를 빠져나와 300m 전방에서 우회전, 함양읍내 지나 큰 다리에서 다시 우회전하면 상림. 지안재는 다시 함양읍으로 간 후 마천 방향 24번 국도를 이용해 달리다가 1023번 지방도로 갈아타면 만날 수 있다. 지안재를 넘으면 오도재와 지리산조망대가 있다.
★숙박: 함양읍내에 있는 모텔이나 여관을 이용하는 방법과 칠선계곡 추성동 칠선산장(055-962-5630), 예그리나 펜션(055-962-2258), 백무동 지구 영진산장(055-964-1877), 지리산자연휴양림(055-963-8133)을 이용하는 방법 등이 있다.
★먹거리: 함양은 위천과 엄천강의 맑은 물에서 민물고기가 많이 잡힌다. 이곳에서 잡은 꺽지, 메자 등을 야채와 함께 푹 고아 죽을 쑨 후 밥이나 국수에 말아먹는 어탕밥과 어탕국수가 별미다. 함양읍내에 있는 ‘조센집’(055-963-9860)이 유명하다. 오해를 살 법한 이 상호명은 ‘조생원’의 사투리라고 한다.
★문의: 함양군청(http://www. hamyang.go.kr) 055-960-6114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