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희 전 대통령 30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표.(위 사진)지난 28일 재보선 선거 결과를 보며 활짝 웃음 짓는 정세균 대표.(아래 사진) 유장훈 기자 임준선 기자 | ||
정책적으로 접근해야 할 세종시법은 이미 정치적 정쟁사안으로 번져버린 상황. 여야뿐 아니라 당과 청와대, 그리고 여권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면서 세종시 논란의 해법 찾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과연 여야의 잠룡들은 세종시법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사태 해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기에 이들의 입장이 더욱 주목된다.
“정치는 신뢰인데, 이런 약속이 무너진다면 앞으로 한나라당이 국민들에게 무슨 약속을 할 수 있겠느냐? 이는 결국 당의 존립문제다. 정부가 필요하다면 세종시 원안에다 ‘플러스 알파’를 해야지, 백지화는 말이 안 된다.”
지난 10월 23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논란이 되고 있는 세종시법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그동안 ‘입을 닫고’ 있던 박 전 대표가 내놓은 입장은 ‘원안+α’였다. 이는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의견과 여권 내에서 불고 있던 ‘수정론’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재보선을 며칠 앞둔 시점에서 이 대통령과 반대되는 의견을 내보인 배경으로 향후 자신의 대권가도를 염두에 둔 행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세종시법은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 대표이던 지난 2005년 당시 여야 합의를 통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법안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선거용으로 추진한 법안이라는 일부 비판이 있었으나 야당 대표로서 박 전 대표가 이에 ‘합의’했던 과거를 뒤집을 수는 없었으리라는 평가다.
여권의 또 다른 대권주자인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와 정운찬 총리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도 관건이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세종시법 해결 과정에서 발휘하는 정치력이 당내 대권주자 입지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되는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취임 초부터 “세종시 건설은 효율적이지 않다, 원안대로 하는 게 어렵다”는 등 ‘세종시법 수정안’을 여러 차례 이야기했던 정운찬 총리는 박 전 대표와 반대 입장에서 절충안 마련에 나서야 하는 책임을 안게 됐다. 한 발 물러선 이 대통령이 사태의 해결을 정 총리에게 맡겼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정 총리는 지난 10월 29일 취임 한 달을 맞아 가진 기자회견에서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세종시 문제를 해결하겠다. 조만간 결론을 낼 것”이라며 “박 전 대표를 만나 정말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제 생각을 말씀 드리면 박 전 대표도 동의하지 않을까 희망을 갖고 있다”고 언급해 친박계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친박계 일각에서는 “세종시법 해결을 통해 박근혜 전 대표와의 대권 라이벌 구도를 만드는 것도 정 총리가 노리는 이득”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반면 정몽준 대표는 수정론과 원안론 사이에서 명확한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다. 정 대표는 지난 10월 15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원안대로 추진하는 것이 당론”이며 “법 자체를 손볼 계획이 현재로서는 전혀 없다”고 강조하면서도 “10~20년이 걸리는 사업이니만큼 시간을 두고 충분히 협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재보선을 앞둔 상황에서 충청표를 의식해 ‘원안 추진이 당론’이라는 쪽에 보다 무게감을 둔 발언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당 대표 입장에서 정부의 수정론을 저버리기도 쉽진 않다. 당대표직을 통해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다지겠다는 정 대표가 앞으로 박 전 대표의 ‘원안+α’안과 청와대의 ‘수정론’ 사이에서 어떤 스탠스를 보일지도 주목해볼 부분이다.
여권 내에서 세종시법에 관해 가장 적극적 의견을 내놓고 있는 잠룡은 김문수 경기지사다. 김 지사는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세종시 건설 무용론’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10월 국감에서도 김 지사는 “세종시 건설만큼은 행정의 비효율과 경제적 낭비는 물론이고 지역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해 충청지역 의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김 지사는 “정부종합청사가 분산돼 있는 것이 효율성 면에서 대단히 잘못된 것이며 과천 종합청사도 광화문 종합청사로 옮겨가야 한다”는 ‘행정기관 통합론’을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김 지사의 이와 같은 발언은 ‘경기도 지사’로서 수도권 발전에 보다 주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차기 대권 주자의 입장에서는 득보다 실이 될 수도 있다는 평가다.
한편 민주당 등 야권에서는 세종시법 수정안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재보선에서의 선전으로 당내 입지가 강화된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세종시법 수정안 추진에 맞서 계속해서 여권을 압박하겠다는 계획이다.
민주당은 특히 세종시법 수정안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 것이 충청민심을 움직였다는 자체 판단을 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세종시법 처리 과정이 내년 지방선거 때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정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충청홀대론’을 거론해왔던 것은 이 때문이기도 하다.
무소속 정동영 의원의 경우 세종시법에 대해 오래 전부터 강력한 ‘원안 추진’ 의사를 밝혀왔다. 지난 대선 당시엔 ‘차별 없는 성장’을 구호로 한 전국 지역별 정책공약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공약에는 ‘서울의 항구도시화’ ‘제주도 전역 면세화’ 등과 함께 ‘청와대·국회·대법원의 행정중심 복합도시(세종시)로의 이전’이 포함돼 있었다. 정 의원은 “세종시에 청와대, 국회, 대법원을 이전해 실질적인 행정수도 기능을 하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재·보궐 선거 기간 중 세종시법 등 현안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정 의원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반면 수원 장안 재보선의 승리로 입지가 한결 강화된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세종시법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 의견을 내놓고 있지 않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세종시법은 여야를 장기적 대치국면으로 가져가게 할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세종시법을 둘러싼 여당과의 대결에서 손 전 지사와 정 의원이 보여줄 정치력이 당내 대권입지 경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특히 세종시법을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인물은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다. 이미 ‘심대평 총리 카드’로 이명박 정부와 일전을 치른 바 있는 이 총재로서는 충청 민심을 흔들 수 있는 세종시법 수정안 저지에 당의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하지만 자유선진당이 이번 재보선 때 충청지역에서 완패(4위 기록)를 당한 데다 탈당한 심대평 전 대표가 신당 창당을 준비하는 것이 이 총재로서는 커다란 부담이다.
이 총재는 “법에 규정된 대로만 충실하게 조성한다면 자족 기능을 충분히 갖춘 도시가 될 것”이라며 이 대통령의 ‘자족기능강화’안에 대해서도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 총재 측은 “이명박 정권이 세종시 건설을 백지화시키려는 음모를 진행하고 있다”며 세종시 원안 추진을 계속해서 주장해갈 계획이다.
세종시 논란의 가장 현명한 해법은 과연 무엇일까. 향후 여야의 잠룡들이 ‘세종시법’을 둘러싸고 어떤 정치력을 발휘해갈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정부부처 이전 MB 약속 했다? 안했다?
기대 부풀리고 확답은 아직
이 대통령이 세종시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내용은 이날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장·차관 워크숍에서 “정권에는 도움이 안 될지라도 국가에 도움이 된다면 한때 오해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택해야 한다”고 밝힌 것이 전부. 하지만 비공식 석상에서 이 대통령이 ‘세종시로의 정부부처 이전’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것으로 전해지면서 ‘세종시 수정론’이 공식화되었다. 실제로 정가에서는 한나라당과 청와대가 9부2처2청을 충남 공주·연기로 이전하는 행정중심복합도시 계획을 전면 수정해 부처 이전을 백지화하거나 일부 부처만 이전하는 ‘명품첨단 세종시안’을 준비 중이라는 얘기가 전해지기도 했었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세종시 건설에 대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2007년 대선 기간에 이명박 후보는 “지금의 계획을 답습하지 않고 세종시의 자족능력 강화를 위해 국제과학기업도시 기능 등을 더한 명품 첨단도시인 이명박표 세종시를 만들겠다”고 언급했었다. 이 대통령의 당시 공약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원안대로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쪽으로 수정하겠다’는 의미가 아니었느냐는 해석도 나온다. 즉 이 대통령이 ‘원안추진을 약속한 적이 없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이 대통령은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 그러나 지금 계획을 답습하지는 않겠다”고도 언급했었다. 즉 ‘약속한 것’을 ‘행정수도 이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충청민심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전 대표가 말한 ‘원안+α’가 해법이 될 수 있을까. 문제는 ‘α’와 ‘원안’의 내용과 성격이다. 한 정치분석가는 “서로의 시각이 다른 만큼 결국 원안과 수정안의 절충점을 찾는 것이 관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가운데 한나라당 친이계 일부 의원들은 지난 10월 29일 ‘정부부처 이전 백지화’를 골자로 하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세종시법)’ 개정안을 국회에 전격 제출했다. 개정안은 세종시의 성격을 ‘행정중심복합도시’에서 ‘녹색첨단복합도시’로 변경했고, 정부 부처 이전 관련 조항(16조)은 아예 삭제해 9부2처2청 이전 계획을 완전 백지화했다. 이는 원안을 완전히 거스르는 수정안으로 볼 수 있다. 이렇듯 당내에서도 이견이 엇갈리고 있는 만큼, 세종시법 ‘수정안’에 대한 의견 절충에도 상당한 마찰이 예고되고 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