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 1현장’ 방문을 목표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이재오 위원장. 임영무 기자 | ||
정부종합청사가 위치한 과천에서 게 요리로 유명한 한 음식점 사장은 요즘 울상이다. 평소보다 매출이 절반으로 감소했기 때문. 반면 대부분 메뉴가 5000~6000원인 주변 식당들은 공무원들로 북새통을 이룬다고 한다. 소위 ‘이재오 효과’다. 이 위원장이 몇몇 언론과의 인터뷰와 강연회에서 “5000원짜리 점심을 먹자”고 말한 이후 생겨난 현상인 것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 ‘비현실적’이라며 불만이 터져 나오자 이 위원장은 “지방에 가보니 전부 밥값이 3000원 내외더라”며 일축했다. 정부부처의 한 차관은 “요즘 회식은 가장 저렴한 삼겹살로 메뉴를 바꿨는데 그것마저도 눈치가 보인다. 골프 치는 사람은 우스갯소리로 ‘범죄자’라고 부른다”며 얼어붙은 공무원사회 분위기를 전했다.
이 위원장은 취임하면서부터 공직자들의 청렴과 비리 엄단을 최우선 실천과제로 내세웠다. 취임사에서 “이명박 정부 시대에 공직자들이 가장 깨끗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특히 10월 13일에는 권익위 출범 이후 최초로 전국 597개 공공기관 감사들을 소집해 공직자들의 청렴도 향상을 위해 강도 높은 감사 활동을 주문했다. 당시 이 위원장은 강연 도중 호응이 크지 않자 “박수를 시원치 않게 치는 것을 보니 계속 삐딱하게 하겠다는 것이냐”라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한 참석자는 “처음엔 ‘언제부터 권익위에서 우리를 오라 가라 했느냐’와 같은 불만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회의가 끝난 후 다들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부패를 뿌리 뽑겠다는 이 위원장 의지가 워낙에 강해보였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이 위원장은 지난 10월 30일에도 중앙행정부처 및 자치단체 감사들을 불러 ‘청렴국가 건설을 위한 공직자의 자세 및 청렴정책 방향’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 위원장의 공직사회 군기잡기는 야당과 몇몇 시민단체로부터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민주당의 한 중진급 의원은 “양건 전 위원장이 권익위 수장이었다는 것을 아는 국민이 얼마나 있겠느냐. 묵묵히 국민의 고충을 처리하는 것이 권익위의 할 일인데 이 위원장 모습은 마치 대선주자가 선거 유세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꼬집었다. 얼마 전 권익위 국정감사에서도 이 위원장은 야당의 공세에 시달려야만 했다. 최근엔 한나라당 내에서조차 “이 위원장이 너무 앞서나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불거지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한 정치컨설턴트는 “본인은 부인하고 있지만 이 위원장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 실세’다. 따라서 뭘하든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여권 내에서도 이 위원장 활동반경이 넓어질수록 견제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위원장의 ‘강공 드라이브’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 위원장에게 권익위를 맡긴 것은 나름대로의 의도가 있어서였다. 이 위원장 행보는 이 대통령의 암묵적 동의하에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 위원장의 ‘령’이 공직사회 전체에 서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 또한 이 위원장으로서도 자신의 정치인생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공직자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 의지가 남다르다고 한다. 한 측근은 “이 위원장은 ‘정치인’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또 다시 공직에서 일하기는 힘들지 않겠느냐. 그래서 임기 동안 뚜렷한 성과물을 내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특히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가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함에 따라 내년에 이 위원장 지역구인 서울 은평을에서 재·보궐 선거가 열리게 된다는 점도 이 위원장의 발걸음을 더욱 재촉하게 하고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이 위원장의 눈부신 활약(?) 덕분에 권익위는 정부 내에서도 일약 ‘힘 있는 부처’로 떠올랐다. 예전엔 공무원들에게 가장 무서운 부서를 들라고 하면 감사원이나 총리실을 꼽았지만 지금은 십중팔구 권익위라고 한다. 현재 이 위원장이 힘쓰고 있는 권익위의 위상강화 방안이 통과될 경우 그 ‘파워’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이 위원장은 권익위를 총리실이 아닌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이전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고 검찰·국세청 등이 참여하는 ‘사정기관 연석회의’도 사실상 실현단계에 와 있다는 게 몇몇 여권 인사들의 전언이다. 이 위원장은 공직자들의 청렴도 평가 역시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위원장이 비선라인을 통해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정보보고까지 접하고 있다는 주장도 들리고 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 때 폐지됐던 대통령 일보(매일 아침에 정례적으로 하는 정보보고)가 현 정권에서 부활했다. 그런데 최근엔 그런 보고서가 이 위원장에게도 들어가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고 전했다. 물론 이 위원장 측은 부인을 하지만, 사실여부를 떠나 권익위원장 이재오의 ‘파워’를 새삼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이재오 '출판계 굴욕'
'네임파워' 서점에선 안 통해
이재오 위원장은 지금까지 총 여섯 권의 저서(공저 제외)를 발간했다. 이 가운데 두 권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설 무렵이나 최근에 낸 것이다. 현 정권에서 ‘실세 중 실세’로 꼽히는 이 위원장의 책 판매 ‘성적표’는 어땠을까.
대선 승리 직후인 2008년 1월 출간한 <백의에 흙을 묻히고 종군하라>는 이 위원장이 전국을 돌며 선거운동을 했던 기록들을 정리한 책이다. 대규모 출판기념회로도 화제를 모았던 이 책은 정작 많이 팔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출판사 관계자는 “정확한 부수는 알려주지 못한다”면서도 “초판 이후 다시 찍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낸 자서전이 그렇듯 판매는 부진했다”고 밝혔다.
1년여의 미국생활 끝에 올해 8월 자신의 인생과 정치역정을 담아 펴낸 자서전 <함박웃음>도 판매는 신통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한 관계자는 “<함박웃음>의 경우 초판 3000부가 나온 게 마지막이다. 그 정도면 서점에서 거의 팔리지 않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자타 공인 ‘2인자’의 명성이 적어도 출판계에서는 통하지 않았던 셈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