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천사의 아름다운 꽃무릇(위), 불갑사 경내를 거니는 모자의 모습. | ||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남으로 무작정 달려보자. 정읍을 지나 고창. 본격적인 ‘가을 꽃여행’은 이곳에서부터 시작된다.
고창은 지금 메밀꽃이 한창이다. 메밀꽃 하면 봉평이 먼저 떠오르지만 오히려 고창이 재배면적이 더 넓고 메밀밭도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고창 메밀밭은 학원농장 일대에 30만 평가량 조성돼 있다. 학원농장은 1960년대 초 세워진 대형 농원. 봄에는 보리밭으로 푸르고 가을에는 메밀꽃이 새하얀 농장이다. 메밀밭은 언제든지 무료로 개방된다.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을 위해 밭 한가운데로 산책로를 내는 등 곳곳에 배려한 흔적이 보인다.
이곳 메밀꽃은 10월 초까지 감상이 가능하다. 학원농장은 평야지대가 아니라 구릉지대다. 구릉의 능선을 따라 밭과 밭이 물결치듯 너울거린다.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메밀꽃들이 한들거리는데 마치 새하얀 포말로 달려드는 파도 같다.
이효석은 달빛 아래서 본 봉평의 메밀꽃이 ‘소금을 흩뿌려놓은 듯하다’며 그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또 하나의 풍경이 있다. 바로 햇살 아래 부서지는 메밀꽃이다. 새하얀 메밀꽃이 햇살을 받아 마치 부서지듯 빛을 흩어낼 때면 정말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
농장에는 메밀꽃 외에 시선을 끄는 꽃이 하나 더 있다. 이 가을에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쳐든 해바라기가 메밀밭 한 편을 차지하고 있는 것. 해바라기는 여름꽃이지만 9월 하순까지는 해바라기의 해맑은 미소를 볼 수 있다.
메밀밭과 아쉬운 이별을 하고 나면 또 다른 ‘꽃여행’이 시작된다. ‘애기단풍’이라 불리는 꽃무릇과의 만남이 시작되는 것이다.
꽃무릇은 특이하게도 남쪽, 그것도 유명 사찰 주위로 군락 지어 핀다. 고창의 선운사, 영광의 불갑사, 함평의 용천사가 대표적인 꽃무릇 여행지다. 꽃무릇은 스님을 연모하던 속세의 여인이 맺어질 수 없는 사랑에 시름시름 앓다 죽은 자리에서 피어났다는 꽃.
사연처럼 이 꽃은 실제로도 애처롭다. 절대 만나서는 안 될 두 사람처럼 꽃무릇은 꽃과 잎이 결코 한 공간에 공존하지 않는다. 꽃무릇은 9월 초께 뿌리에서 꽃대가 솟아난다. 꽃대는 40~50㎝가량. 애달프게도 꽃이 져야만 잎이 핀다. 그래서 꽃무릇을 보면 항상 벌거숭이다. 꽃이 떨어진 다음 짙은 녹색의 잎이 나오는데 이 잎의 길이는 30~40㎝. 인동초처럼 겨울을 나고 이듬해 따스한 봄 햇살을 맞으며 시든다.
▲ 불갑사 일주문 앞에서 펼쳐지는 농악공연. 10월까지 둘째 주와 마지막 주 일요일에 무형문화재 영광우도농악 무료공연이 펼쳐진다. 아래는 고창 학원농장에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 ||
선운사는 학원농장에서 10여 ㎞가량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동백꽃으로 유명한 선운사는 요즘 붉은 꽃무릇 융단을 깔아놓은 듯 아름답다.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577년) 때 창건한 절로 당시 89개의 암자와 189채의 건물이 있었을 정도로 대가람이었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본당을 제외하고 모두 불에 타 사세가 축소됐다. 그러나 대웅전, 금동보살좌상 등 보물과 유형문화재를 다수 보유한 명찰이다.
선운사 꽃무릇은 절 입구에서부터 선운산 도솔암까지 3㎞ 등산길 양옆에 뒤덮여 있다. 선운산은 높이가 336m밖에 되지 않지만 ‘호남의 내금강’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 풍광이 뛰어나다. 산행은 선운사→진흥굴→도솔암→마애불상→용문굴→낙조대→천마봉 코스가 일반적인데 대략 3시간 정도 걸린다.
다시 남쪽으로 조금만 더 길을 달려 영광으로 향하자. 선운사에 버금가는 꽃무릇 세상이 펼쳐지는 불갑사가 이곳에 있다.
불갑사는 백양사의 말사로 백제 침류왕(384년) 때 마라난타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사실 절은 그다지 크지 않다. 하지만 불갑사와 함평 용천사로 이어지는 불갑산(516m)의 환상적인 산행코스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꽃무릇이 한창인 요즘은 평소보다 서너 갑절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과거 불갑사 꽃무릇은 부도밭과 대웅전 뒤편, 불갑저수지 등이 손꼽힐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불갑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중간중간 마치 바다를 이룰 만큼 넓은 꽃무릇 군락을 볼 수 있다. 아쉽게도 꽃무릇축제를 거듭하면서 인공적으로 조성한 것이다.
함평 용천사는 불갑사에서 차로 10분쯤 남쪽으로 달리면 닿는다. 용천사는 백제 무왕(600년) 때 창건된 절로 대웅전 층계 아래에 있는 용천(龍泉)이라는 샘에서 절 이름이 유래했다. 이 샘은 황해로 통하며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무려 3000명의 승려가 머물 정도로 큰 절이었지만 한국전쟁 때 모두 불에 타 없어지고 지금은 초라한 모습이다.
여행 안내
★길잡이: 서해안고속국도를 타면 고창→영광→함평에 순서대로 닿는다. 메밀꽃이 흐드러진 학원농장에 가려면 고창IC로 빠져나가 15번 국도를 타고 무장읍성 쪽으로 향한다. 무장면에서 796번 지방도로 갈아타면 곧 학원농장이다. 선운사는 15번 국도를 타고 무장읍성 쪽으로 가다가 오른쪽으로 난 734번 지방도를 타면 된다. 불갑사는 영광IC로 나가 23번 국도를 타고 영광읍을 지나 내쳐 달리다가 불갑사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된다. 용천사는 불갑사에서 다시 나와 23번 국도를 타고 함평 방향으로 달리다가 삼덕삼거리에서 838번 지방도로 갈아타면 된다.
★잠자리: 선운사 관광단지에 숙박시설이 많다. 선운산관광호텔(063-561-3377), 유스호스텔(063-561-3333), 동백호텔(063-562-1560) 등. 영광에서는 읍내로 나가 신라호텔(061-353-3333)과 아리아호텔(061-352-7676) 등을 이용하면 된다. 함평에서는 온천장을 이용하자. 손불면 궁산리 일대 유서 깊은 해수찜전문온천장들이 있다. 함평주포해수찜(061-322-9489), 함평신흥해수찜(061-322-9487), 신흥해수찜(061-322-9900).
★먹거리: 고창의 자랑은 풍천장어. 선운사 앞 인천강에서 잡은 풍천장어는 전국적인 유명하다. 산장회관(063-563-3434), 연기식당(063-562-1537), 가마골가든(063-561-3155) 등 내로라하는 장어전문요리집들이 있다. 불갑사와 용천사에서는 따로 맛집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절 앞에 식당들이 있는데 제각각 맛이 있다. 불갑사 입구에서는 보리밥과 닭백숙 등을 파는데 보리밥이 5000원으로 싸면서도 반찬이 15가지가량 돼 상이 푸짐하다. 용천사 주변에서는 축제장 근처 천지회관(061-324-1009)의 육회가 맛있다.
★문의: ●고창군청(http://www.gochang.go.kr) 063-560-2230, 학원농장(063-564-9897)
●불갑사(http://www.bulgapsa.org) 061-352-8097
●용천사: 함평군청(http://www.hampyeong.jeonnam.kr) 문화관광과 061-320-3349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