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국적인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에 가을이 곱게 내려앉았다. | ||
담양은 대나무마을이자 사림의 고장이며 가사문학의 본향. 봄과 여름철 손꼽히는 여행지다. 그러나 지금은 가을. 왜 이 쓸쓸한 계절에 하필 담양으로 발길을 돌렸을까. 바로 이곳에 가을이 꼭꼭 숨어 있기 때문이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에서부터 식영정, 취가정 그리고 수줍은 호수에 이르기까지.
신록의 이파리는 싱그럽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에너지가 샘솟을 정도로 상쾌하다. 메타세쿼이아가 여름 내내 지녔던 색깔이었다. 이제 그 잎은 정열적으로 타들어간다.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늦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길이다.
88고속국도 담양IC로 나와 순창 방면 24번 국도로 달리다보면 펼쳐지는 놀라운 풍경. 아름드리의 커다란 나무들이 도열하듯 도로 양 옆으로 8.5㎞나 늘어서 있다. 침엽수이면서 낙엽수인 메타세쿼이아는 가을이면 이파리가 붉게 물들어간다. 처음에는 노랗다가 점점 주홍빛을 넘어 핏빛으로 변한다.
이 가로수길은 1970년대 초 이 곳이 내무부 시범가로로 지정되면서 다시 3~4년짜리 묘목을 심은 것. 그때 과연 이런 멋진 모습을 예상이나 하고 그 어린 나무들을 심었을까. 메타세쿼이아길은 2002년 산림청과 ‘생명의 숲 가꾸기 국민운동본부’가 ‘가장 아름다운 거리 숲’으로 선정한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곳을 ‘꿈의 드라이브코스’라고 부른다. 어느 터널도 이처럼 밝고 맑을 순 없다.
▲ 남도 단풍의 진수를 보여주는 백양사. | ||
이 길은 사실 하마터면 사라질 뻔한 위기에 놓이기도 했었다. 한때 담양군에서 왕복 2차선인 이 도로를 확장하기 위해 가로수들을 모조리 베어버리기로 결정했던 것. 하지만 이 길과 함께 살아온 많은 지역 주민들의 반대운동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추억을 잃어버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 결과 우리는 이처럼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지켜나가야 하는 것들이 우리 주위에는 이처럼 많다. 다만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 하는 것뿐이다.
아쉽게도 인근 관방제림은 거의 헐벗은 상태. 한풍에 그 두툼한 옷을 다 빼앗긴 모양새다. 하지만 식영정이라면 아직도 가을의 ‘유효기간’이 많이 남아 있다.
담양읍에서 남서쪽으로 15㎞가량 떨어져 있는 식영정은 명종 15년 서하당 김성원이 창간한 후 장인인 석천 임억령에게 증여한 정자. 이곳에서 송강 정철과 제봉 고경명 등이 창작활동을 했다. 주변에는 광주호와 취가정, 가사문학관, 소쇄원이 있다.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꼽히는 소쇄원도 보기 좋지만 식영정의 가을은 가히 환상적이다.
식영정은 ‘달빛도 쉬어 간다’고 할 정도로 풍광이 수려하다. 앞쪽으로는 홍조를 띤 광주호가 새색시처럼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고 주변에선 단풍나무와 은행나무가 한 잎 두 잎 이파리를 떨구며 겨울 채비를 하고 있다. 그다지 크지도 않은 정자지만 길가에 바로 접하고 있어 사람들이 많이 들르는 곳이다. 물론 찬연한 가을색 때문이다.
식영정 앞 광주호는 얼마 전 호수생태원으로 거듭났다. 이곳은 자연관찰장소로뿐만 아니라 데이트를 즐기기에도 모자람이 없다. 자연관찰원, 목재탐방로, 전망대, 수생식물원 등을 만들어 놓았고 호수 물가를 따라 나무 데크가 설치돼 있다. 데크 주변에는 갈대가 무성하다. 호수에는 청둥오리를 비롯한 철새들이 유유히 떠 있다. 가끔 사람들의 인기척에 놀라 수면을 박차고 날아오르는데 햇살을 받은 날개가 은빛으로 반짝인다.
▲ 백양사 연못 속에 백암산이 가을과 함께 ‘퐁당’ 빠졌다. | ||
담양에 왔으면 백양사는 결코 놓칠 수 없는 ‘덤’이다. 담양에서 15㎞쯤 떨어진 장성 백양사. 이곳의 단풍을 보지 않고 남도의 단풍을 담았다고 한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백양사는 남도 단풍의 자존심이다.
백양사는 1400년 전 지어진 백제시대의 고찰. 백암산 자락에 있어서 백암사라 불리기도 했고 한때 정토사라는 이름을 갖고 있기도 했다. 지금의 백양이라는 이름은 하얀 양이 산에서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듣고 극락으로 가게 되었다고 해서 붙었다.
백양사는 절로 들어가는 길부터가 예술이다. 단풍나무가 1㎞도 넘게 길 양옆에 서서 마치 신랑신부의 결혼을 축하하듯 단풍잎을 하나둘씩 떨군다. 입구를 지나 백양사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만나는 작은 연못이 있다. 연못 맞은편에는 누각 하나가 있다. 쌍계루다. 쌍계루 뒤로는 백암산이 굽어보고 있다. 쌍계루와 백암산이 연못 위에 고스란히 담긴 모습은 한 폭의 수려한 그림 같다. 가을을 품은 연못이라 더욱 아름답다.
명찰에다 단풍으로 이름난 곳이니 만큼 내방객도 많다. 백양사는 그래서 새벽녘이나 초저녁 무렵 가는 게 더 좋다. ‘사람공해’ 없이 호젓하게 단풍을 즐기고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사찰 분위기에 젖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 안내
★길잡이: 호남고속국도 고서분기점→88고속국도(담양, 순창 방면)→담양IC→29번 국도(담양읍 방면)→24번 국도(순창 방면) 2㎞ 직진
★잠자리: 담양읍내로 나가면 모텔 등 숙박시설이 꽤 있다. 금성산성 부근인 원율리에는 ‘금성통나무펜션’(061-381-2376), ‘산아래펜션’(061-381-1600) 등의 펜션과 민박집이 있다.
★먹거리: 담양은 역시 대나무의 고장. 대나무를 이용한 음식은 담양나들이 길에 꼭 먹어봐야 할 음식. 대잎돼지갈비와 대통밥을 잘하는 ‘귀빈관’(061-383-5800)이 유명하다. 담양IC를 1㎞쯤 지나 읍내 입구 우측에 자리한 대나무건강랜드 1층에 있다. ‘쌍교순두부’(061-381-2201)도 담양에서는 알아주는 맛집. 주인이 고향인 무안에서 재배한 국산콩만을 재료로 쓰고 맷돌로 갈아 두부를 만든다. 송강정 인근에 있다.
★문의: 담양군청 문화관광포털(http://www.damyang.go.kr/tourism) 061-380-3114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