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연합뉴스
[일요신문] 자신들이 각각 중국 고위공무원과 제조업체 회장이라며 가짜 골동품을 팔아넘긴 100억 원대 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이들로부터 5781점의 가짜 골동품을 138억 2000만 원의 거액에 사들이기로 했다. 실제 지급한 금액은 93억 4400만 원이다. 피해자의 지인까지 매수해가며 접근한 이들은 판매한 골동품이 가짜임이 드러나자 또 다른 가짜 골동품을 들이밀며 상황을 모면하려했다. 결국 사건은 법원으로 향했다. 1심에서 징역 6년형이 선고됐지만 검찰 측과 피고인들은 각각 ‘양형 부당’ 등을 이유로 항고한 상황이다. 이들은 어떻게 골동품으로 100억 원을 갈취했을까.
한 사찰의 주지스님인 피해자 A 씨는 지인의 소개로 이 아무개 씨와 유 아무개 씨를 만나게 됐다. 이들은 A 씨가 사찰 내에서 박물관을 운영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접근했다. 나중에 A 씨가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지인 또한 두 사람으로부터 매수당했다. 이들은 A 씨의 지인에게 골동품 판매 금액의 10% 지급키로 했다.
지인을 통해 유 씨를 먼저 만난 A 씨는 곧 유 씨의 소개로 이 씨도 만나게 됐다. 이들은 A 씨에게 “의형제를 맺자”고 제안하며 유대감을 쌓아갔다.
지난 2015년 1월 만난 중국 국적 조선족인 이 씨는 자신을 중국 문물국 고위공무원이라고 소개했다. 이는 한국에서 문체부 국장급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또한 연변미술관 관장, 문물학회 대외 연락부 주임이라는 직함도 자신의 프로필에 더했다. 자신이 문물국에 등록된 골동품 감정인 14명 중 1명이라고도 주장했다. 2~3 개월 뒤에는 퇴직을 하고 본인이 직접 박물관을 운영할 계획도 밝혔다.
이 아무개 씨와 유 아무개 씨에 대한 1심 재판 판결문.
이 씨는 그러면서 A 씨가 소장하고 있던 골동품을 직접 감정해주기도 했다. 100여 점의 골동품 중 약 34점이 진품이라고 감정하며 골동품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덧붙였다. A 씨는 이를 계기로 이 씨와 유 씨를 신뢰하게 됐다.
스스로가 ‘골동품 전문가’라는 이 씨의 과시는 계속됐다. 그는 A 씨와 만남에서 “중국정부의 돈으로 해외 중국 골동품을 정부를 대신해 사왔다. 대기업 회장의 박물관도 내가 차려줬다”며 자기 포장을 이어갔다.
이 씨는 의료기기 제조기업 회장 유 씨와 공동 투자로 인도네시아, 중국, 일본 등에 있는 골동품들을 수집해 판매하는 사업을 한다고 말했다.
‘유명한 감정 전문가’라며 한 중국인을 데리고 나와 골동품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 전문가가 중국 공영방송에 출연해 이 씨의 물건을 감정하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피해자 A 씨에게 골동품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
인간적 유대를 쌓고 골동품 이야기를 이어가던 이들은 A 씨에게 본격적으로 골동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판매가 이뤄진 곳은 주로 서울에 있는 유 씨의 사무실이나 이 씨의 오피스텔이었다. 이곳에도 상당수의 골동품이 보관돼 있었다.
A 씨의 첫 골동품 구매는 2015년 1월이었다. 향로, 꽃병, 다기 등 300여 점을 30억 원에 사들였다. 대금 지급은 3개월간 5회 분할로 이뤄졌다. 이 씨와 유 씨의 골동품 판매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9월까지 이어진 이들의 거래는 14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총 5781점, 138억 2000만 원에 달하는 규모였다. 이들은 각각 48억 5000만 원, 49억 7000만 원을 A 씨 1명으로부터 벌어들였다. A 씨는 138억 2000만 원 중 40억 원은 아직 지급하지 않은 상태였다.
A 씨의 합계 피해금액만 93억 4400만 원이다.
그러던 차에 또 다른 지인들이 A 씨를 찾아왔다가 그가 구매한 물건들을 보고 사기가 아닌지 의구심을 드러냈다. A 씨도 이를 확인하고 싶어 일부를 이 씨에게 팔아달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 씨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A 씨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이후로도 판매 요구가 수차례 있었지만 판매가 이뤄지지는 않았다.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 A 씨는 중국 유명 감정사들을 직접 초대해 자신의 물건들을 보여줬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이들은 5781점의 골동품 전부가 현대작이라는 소견을 내놨다. 결과를 믿기 어려웠던 A 씨는 또 다른 도자기 전문가를 불렀지만 진품 판정은 단 한 건도 없었다. 더불어 자신이 이전부터 보유했던 골동품 100점도 이 씨가 진품이라고 감정한 34점을 포함해 모두 가짜라는 판정을 받았다. 국내 유명 감정사를 백방으로 수소문해 재차 감정을 받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사기에 당했음을 알게 된 A 씨는 골동품을 판매한 두 사람을 찾아가 따져 물었다. 자신이 지급한 약 90억 원을 돌려달라고 했다. 이에 이 씨는 각각 70억 원, 52억 원이라며 화첩 두 권을 내밀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A 씨가 이들에게 건넨 90억 원보다도 가치가 있는 물건들이었다. 하지만 그림 감정 전문가들의 두 화첩 감정 결과는 역시나 가짜였다. 한국고미술협회의 견해 또한 마찬가지였다.
A 씨는 다시 이 씨를 찾아갔다. 화첩이 가짜 판정을 받았음을 설명하고 이 씨 오피스텔에 걸린 판다그림을 달라고 했다. 이 씨는 “집안 가보로 남기려 했는데 형님이 달라고 하니 주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판다그림 또한 이 씨가 700만 원을 주고 구입한 그림임이 밝혀졌다.
결국 A 씨는 이들을 고소했고 이씨는 2017년 3월, 유 씨는 4월에 각각 구속됐다. 같은 해 10월 내려진 1심 선고에서 수원지방법원 재판부는 이들에게 각각 징역 6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둘은 양형이 너무 높다고 항소했다. 검찰 또한 낮은 양형을 이유로 항소를 신청해 현재는 서울 고등법원에서 2심이 진행 중이다. 선고는 4월 중순으로 예상된다. 5781점의 가짜 골동품을 약 100억 원에 팔아넘긴 사건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항소심 선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