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을 뒤덮은듯 울창한 대나무가 시원한 비봉내마을 산림욕장. | ||
‘대숲’ 하면 흔히 전남 담양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물론 담양만큼 대숲의 면적이 넓은 곳은 없다. 그러나 찾아보면 아담하면서도 그 못지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곳들이 여럿 있다. 경남 사천의 비봉내마을 대숲도 그중 하나다.
어쩌면 이곳이야말로 호젓한 대숲 산책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곳인지도 모른다. 담양의 경우 너무 널리 알려진 탓에 사색을 즐기며 숲을 거니는 행복감을 맛보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마음으로 말하고 자연을 호흡해야 할 숲에서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말들을 쏟아낸다. 하지만 비봉내마을 대숲은 온전히 숲이 내 것이란 느낌이 들 만큼 조용하다.
비봉내마을은 경남 사천 곤양면에 있다. 곤양IC에서 나와 읍내를 바로 지나면 비봉내마을 대숲이다. 대숲은 곤양성 밖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이야 성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지금도 성의 안팎을 나누는 경계는 뚜렷하다. 그 경계에 냇물이 흐르기 때문이다. 그 냇물이 바로 비봉내다. 비봉냇물이 흐르는 마을. 그래서 대숲이 있는 이곳을 비봉내마을이라 부른다.
비봉내마을 대숲은 1965년경부터 인공적으로 조성되었다. 쓸모없는 야산에 하나둘씩 심기 시작한 대나무가 번식해 1만 평이 넘는 산을 모두 덮었다. 이곳의 대나무는 죽순대라고 불리는 ‘맹종죽’이다. 이 대나무는 한창 땐 하루에 1m씩 자란다. 두 달이면 대나무는 완전히 다 자라는데 그 키가 무려 20m에 달한다. 지난 4월 초부터 나기 시작한 죽순들은 벌써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구쳐 있다.
비봉내마을 대숲에서 산책을 하려면 마을 홈페이지(여행안내 참조)를 통해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한다. 그래야 숲해설가로부터 재미있는 대나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숲해설가는 비봉내마을 대표인 강우택 씨의 부친으로 숲을 일군 주인공이기도 하다. 백발이 성성한 그는 숲을 찾은 사람들에게 구수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낙으로 삼는다.
이곳 대숲에는 간간이 소나무들이 섞여 있다. 원래 이 산은 소나무와 잡목이 우거진 산이었다. 그러나 대나무가 번식하기 시작하면서 다른 잡목들은 더 이상 살지 못하고 모두 말라 죽었다. 대나무가 엄청난 높이로 자라면서 햇빛을 모두 차단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살아남은 소나무들은 다른 어느 곳의 소나무보다 키가 크다. 햇빛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대나무 머리 위로 고개를 내밀려 안간힘을 쓴 결과다. 사뭇 애처로워 보이는 소나무들. 안방을 내주고 세 들어 사는 처량한 세입자 신세다.
비봉내마을에서는 다양한 대나무체험도 할 수 있다. 일일체험을 신청하면 대숲산책이 끝난 후 대나무피리 만들기, 대나무뗏목 타기 등을 경험할 수 있다. 아이들이 피리 만들기에 열중하는 동안 어른들은 댓잎차를 만든다. 대나무는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식물이다. 죽순은 식용으로 사용하고 대나무줄기는 대통밥을 만들거나 각종 죽세공품의 재료로 쓰인다. 댓잎은 차를 끓여 마신다. 깨끗한 물에 씻은 댓잎을 뜨거운 가마솥에 덖어 끓여 마시는 댓잎차는 식독과 주독을 푸는 데 특효다. 게다가 카페인도 전혀 없다.
대나무숲만큼이나 청량한 숲이 비봉내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담양을 둘러본 후 보성으로 가는 패턴처럼 이곳 사천을 여행할 때도 비봉내마을 대숲 산책을 한 후 다솔사에 들러보자.
다솔사는 비봉내마을에서 차량으로 5분 거리에 있다. 다솔사 가는 길에는 소나무와 삼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다솔사 바로 아래도 주차장이 있지만 숲길 앞 휴게소에 차를 두고 걷기를 권한다. 500m 정도의 숲길이 너무나 상쾌하다. 차를 타고 달리면 채 1분도 걸리지 않는 길이지만 두발로 뚜벅뚜벅 걸을 때는 자꾸만 주위를 둘러보게 되고 걸음이 더뎌진다. 이 길에서는 오래 머물수록 더 행복해진다.
다솔사는 그리 큰 절이 아니다. 하지만 이 절은 만해 한용운이 기거하고 소설가 김동리가 <등신불>을 완성한 곳으로 더 유명해진 곳이다.
다솔사는 하동 쌍계사의 말사로 511년 신라 지증왕 때 창건됐다. 이곳에는 대웅전과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대양루, 극락전, 요사채 등 10여 동의 건물이 남아 있다. 대웅전은 1979년 부처의 진신사리 108개가 발견되면서 적멸보궁으로 명패를 바꿔 달았다. 예전에 있던 대웅전은 양산 통도사의 적멸보궁을 본떠 개조되었다. 연꽃 모양의 투명창이 누워 있는 부처상 뒤로 나 있고 적멸보궁 밖 진신사리탑을 온전히 담아낸다.
▲ 대숲 사이 너른 공터에는 오디와 산딸기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숲을 산책하던 아이들이 산딸기를 따먹고 있다(위). 다솔사 차밭. | ||
다솔사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이 하나 있다. 바로 보안암 석굴이다. 다솔사에서 약 2㎞ 떨어진 곳에 자리한 보안암은 산책 삼아 다녀오기 좋은 곳이다.
보안암에서 50m쯤 떨어진 곳에는 봉명산 최고의 전망대가 있다. 사람의 뇌를 닮은 바위 곁에 있는 커다란 너럭바위에 올라가면 곤양면과 사천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한편 사천에는 ‘별주부전’의 무대가 됐던 비토섬이라는 자그마한 섬이 하나 있다. 섬이지만 다리가 놓여 있어 차로도 갈 수 있다. 해안도로를 따라 끝까지 달리면 전설의 자락을 붙잡을 수 있다. 비토섬 끝에는 월등도가 있고 하루 두 차례 물이 빠지면 건너갈 수 있는 토끼섬과 거북섬이 그 너머에 자리하고 있다.
여행 안내
★길잡이: 대전-통영 간 고속국도→진주분기점→남해고속국도→곤양IC→58번 지방도→비봉내마을→다솔사
★먹거리: 비봉내마을 앞에 대밭고을(055-852-7055)이라는 식당 겸 민박집이 있다. 비봉내마을에서 운영하는 집이다. 대나무통밥과 죽순된장국이 일품이다. 또한 대나무를 먹고 자란 흑염소 불고기와 전골 등도 별미다. 대통한정식 1만 원, 죽순된장 5000원, 흑염소불고기·전골 각 1만 2000원.
★잠자리: 곤양면에는 숙박업소가 많지 않다. 비봉내마을 인근에 곤양파크모텔(055-854-5368)과 용문장여관(055-853-3383)이 있다. 삼천포항 근처로 나가면 잠자리 문제를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다. 삼천포해상관광호텔(055-832-3004)이 삼천포항에서 5분 거리에 있고 사천-창선대교 건너에 깨끗한 모텔들이 많다.
★문의: 사천시청 문화관광과(http://www.toursacheon.net) 055-830-4114, 비봉내마을(http://www.beebong.co.kr) 011-9321-4000.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