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산성의 정문 격인 금서루. 공산성 전망대에서 바라본 금서루와 산성의 모습이 아름답다. | ||
그러나 계절을 무시하고 몸을 혹사시킬 수는 없는 노릇. 요즘 같은 때에는 가벼운 걷기, 추천하자면 산성트레킹이 제격이다. 평지처럼 밋밋하지도 않고 산처럼 힘들지도 않은, 그러면서도 과거 속을 거니는 재미도 있는 곳. 백제의 도시 공주 ‘공산성’은 그중에서도 걷는 맛이 특별한 곳이다. 게다가 공주는 백제뿐 아니라 선사시대와 근대의 역사도 함께 들여다볼 수 있는 박물관들이 있어 ‘한반도 역사 체험’도 가능하다.
유유히 흐르는 금강변 아래 1500년 세월을 견딘 공산성이 앉아 있다. 금강교와 나란히 드리워진 백제큰다리를 건너 공주 시내로 들어가면 좌측 야트막한 산을 두른 성곽이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공산성이다. 공주는 백제가 고구려 장수왕의 군사적 압박을 피해 남하하여 도읍으로 삼은 곳. 백제는 다시 부여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 공주에서 64년간 나라를 이끌었다. 공주의 옛 이름은 웅진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공산성이 그 웅진성이다.
공산성은 이 같은 이름 외에도 쌍수산성, 공산산성, 공주산성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지금의 공산성은 돌을 쌓아 만든 석성이다. 그러나 원래는 토성이었다. 그 개축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세종실록지리지> 등에 석축산성이라고 기록돼 있는 것으로 미루어 조선 초기쯤으로 추정하고 있다.
산성은 금강변의 해발 110m 정도의 낮은 산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성곽의 전체 길이는 2.6㎞가량 된다. 엄밀히 말하자면 공산성은 흙과 돌을 혼재해 만든 토석혼축성이다. 전체 성곽 중에서 1930m가 석축으로 돼 있고 730m는 토축이다. 성벽은 대략 5~6m 높이에 3m 정도 너비로 이뤄져 있다.
사대문인 동문루, 금서루, 진남루, 공북루가 있고 산성 내부에는 만하루, 임류각, 쌍수정, 광복루 등의 누각과 연못 그리고 왕궁 터와 영은사라는 사찰이 있다. 지금의 것들은 대부분 1980년 발굴조사 후 새로 복원한 것들이다. 이곳에는 백제시대의 건물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의 건물들도 곳곳에 산재해 있어 시대를 건너는 건축여행도 가능하다. 꼼꼼히 살펴보면 건축양식의 차이도 느낄 수 있다.
공산성트레킹은 금서루에서 시작된다. 금서루는 원래 성곽의 서문 누각으로 현재 공산성의 정문 노릇을 하고 있다. 백제시대 당시의 규모는 알 수 없지만 조선 철종 10년(1895년)에 편찬된 <공산지>를 보면 정면 3칸, 측면 1칸의 중층건물이라고 나와 있다. 금서루는 이 기록을 바탕으로 1993년 복원되었다.
▲ 공산성 연지. 무너지지 않도록 돌로 층단을 쌓았다(위), 공산성 동문. 무너져 없어진 것을 1980년 다시 복원했다. | ||
성곽의 전체적인 모양은 마치 길쭉한 고구마를 눕혀 놓은 듯한 모양이다. 길이는 길고 폭은 좁다. 금서루에서 30도 정도의 경사를 지닌 성곽을 따라 100여m쯤 올라가다보면 왼쪽으로 쌍수정이라는 정자가 보이고 그 앞은 운동장처럼 공터로 비어 있다. 쌍수정은 조선시대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파천했던 역사가 스민 건물. 그 앞 공터가 바로 왕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1985년 8월부터 1986년 12월까지 3회에 걸쳐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곳에서 왕궁 건물터와 나무로 만든 저장시설, 저장구덩이, 백제기와 등이 출토됐다. 왕궁 터 옆에는 공산성 연못이 있다. 연못은 사발 모양으로 표면에 비해 바닥의 지름이 좁다. 공산성에는 이곳 외에도 연못이 하나 더 있다. 북쪽에 있는 만하루 연못이 그것. 연못이라 해봐야 지름이 10m도 되지 않는 작은 규모지만 가장자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벽돌을 쌓아 놓은 점이 다른 연못과 달리 특이하다.
다시 성곽을 따라 가다보면 곧 진남루를 만난다. 공산성의 남문으로 조선 초기 석성으로 개축하면서 건립한 건물이다. 진남루 옆에는 쌍수교라는 다리가 있다. 금서루만큼이나 진남루도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통로다. 이 문 아래로 내려가면 시내와 통한다.
구불구불 성곽을 따라가면 진남루에서 동문루로 내리막이 이어진다. 동문루에서 광복루 쪽으로는 조금 급한 경사를 만난다. 그렇다고 힘든 정도는 아니다. 광복루는 원래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 옆에 있던 누각을 옮긴 것으로 8·15 광복을 기념하는 뜻에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광복루 옆에는 임류각이 있다. 임류각은 백제 동성왕 22년(500년)에 건축한 것으로 신하들의 연회장소로 쓰던 건물이다. 2층짜리 누각에 기둥이 촘촘히 박혀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이곳에서 만하루로 이어지는 길은 내리막이 아주 심하다. 특히 눈이 내리면 조심해야 한다. 돌로 된 성곽길이 아주 미끄럽다. 바로 이 부분이 금강과 접하는 곳으로 성곽을 따라 금강이 자는 듯 조용히 흐르고 있다. 성곽길도 길이지만 금강변을 보며 걷는 기분이 무척 상쾌하다. 만하루 앞에는 영은사라는 사찰이 자리하고 있고 조금만 성곽을 따라 올라가면 북문인 공북루로 이어진다.
공산성 성곽을 따라 걷다보면 딱따구리를 자주 만나는데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성곽 산책에 재미를 준다. 모든 것이 다 잠들어 있을 것만 같은 이 겨울에도 공산성 딱따구리는 열심히 생명활동을 이어간다.
공산성 인근에는 무령왕릉이나 공주박물관 등 백제시대의 또 다른 유물과 유적들을 볼 수 있는 곳들이 있다. 하지만 공주는 ‘백제의 도시’만이 아니다. 익히 알려진 이런 곳들 말고도 공주에는 석장리박물관과 충남역사박물관처럼 선사시대와 조선 근대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곳들도 있다.
공주 석장리 유적은 1964년 남한에서는 처음으로 발굴된 선사유적이다. 이곳의 유적이 발굴됨으로써 우리나라에서 구석기의 존재가 분명히 드러났다. 석장리 유적은 금강과 산록 완사면이 만나는 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우연찮게도 1964년 5월 홍수가 나면서 금강둑이 무너졌고 이때 확인됐다.
시대를 크게 건너뛰어 충남역사박물관으로 가면 조선 근대의 유물들을 볼 수 있다. 공산성에서 시내 방향으로 약 5분 거리에 자리한 이 박물관에는 근대 충남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알 수 있는 각종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이곳에서는 두 개의 주사위를 가지고 노는 쌍육놀이를 비롯해 목판 인쇄 체험도 해볼 수 있다.
여행 안내
★길잡이: 경부고속국도→천안-논산 간 고속국도→정안IC→공주 방면 23번 국도→백제큰다리 건너 좌회전→공산성
★먹거리: 공산성 앞쪽에 식당들이 많이 몰려 있다. 추운 겨울 공산성을 한 바퀴 휘돌고 나면 따끈한 국물이 그리워질 터. 그럴 때는 공산성 앞쪽에 자리한 ‘새이학가든’(041-854-2030)의 따로국밥이 제격이다. 사골을 넣고 이틀 동안 푹 곤 국물에 양지, 사태를 넣어 끓인 국밥이 끝내준다. 공주 중동우체국 근처 ‘고가네칼국수’(041-856-6476)도 추천할 만한 맛집. 순 우리밀을 사용한 칼국수가 고소하다.
★잠자리: 백제큰다리를 건너기 전 시외버스터미널 근처가 숙박밀집지역이다. 이곳에는 금강관광호텔(041-852-1071) 등 묵을 만한 곳이 많다. 지당세계만물박물관이 있는 탄천에는 공주유스호스텔(041-852-1212), 계룡산 근처에는 갑사유스호스텔(041-856-4666)이 있다.
★문의: 공주시청(http://www.gongju.go.kr) 문화관광과 041-853-0101, 공주관광안내소(공산성) 041-856-7700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