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리커처=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세종시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 여론과 지역민심도 편치 않은 모양새다. 다른 정쟁 사안과는 달리 세종시는 각 지역민들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이슈이기 때문이다. 세종시 논란을 지켜보는 민심 속에는 과연 어떤 정서와 흐름이 녹아 있는지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통해 들여다보았다.
지난 9월 18일 당시 정운찬 국무총리후보자가 국회인사청문특위에 제출한 서면답변에서 ‘행정복합도시 재검토 필요 방침’을 시사하면서 세종시 논란은 정국을 달구기 시작했다. 당시 정 총리후보자의 발언에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이 담긴 것으로 전해지면서 세종시 이슈는 정치권을 뜨거운 격랑 속으로 몰아갔다. 이 문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처음 내놓은 이후 충청 지역 민심은 물론 전국적인 정치 현안으로 종종 환기돼온 사안이었다. 하지만 잠잠하던 세종시 문제가 정 총리 발언과 이 대통령의 언급으로 다시 민심을 들썩이게 한 것.
당시부터 이어져온 세종시 문제에 대한 여러 여론조사 결과의 흐름을 살펴보면 민심 또한 세종시 이슈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정 총리의 발언으로 세종시 이슈가 본격 불거진 시기인 지난 9월 16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조사결과 ‘원안 그대로 추진, 실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39%로 가장 높았고, ‘원안보다 축소해야 한다’가 22.1%, ‘전면 백지화해야 한다’가 16.7%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대구·경북 지역에서만 유일하게 ‘원안보다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38.8%로 ‘원안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28.7%)보다 높았고, 그 외의 지역에서는 모두 ‘원안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또 세종시 이슈가 지역의 핵심사안인 충청권(대전·충청)에서는 원안 고수 의견이 62%로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이 무렵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 역시 세종시 이슈에 의해 ‘지역적’인 영향을 받았다. 이 시기에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40%대의 안정적 상승세를 이어갔으나, 9월 16일 리얼미터 조사에서 대전·충청 지역 지지율은 이전 조사 시점(9월 1일)에 비해 7.5%p나 떨어졌다. 세종시 문제가 충청권 여론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이후 세종시 문제를 둘러싼 여야 간 정쟁이 심해지면서, 10월 1일 조사(리얼미터)에선 자유선진당이 반사이익을 얻는 결과를 보이기도 했다. 반대여론에 부딪친 세종시 문제로 인해 여당 지지층의 결집현상으로 한나라당 지지율이 이전 조사에 비해 1.2%p 상승한 39.1%를 기록하고 민주당은 3.1%p 하락한 27.1%에 그친 데 반해 자유선진당은 충청표 집결 효과로 2.2%p 상승한 5%의 지지율로 정당 지지도 3위를 기록했다. 그간 2~3%대의 미미한 지지율로 정당지지도 4~5위를 기록해온 자유선진당으로선 깜짝 반등효과를 거둔 셈이다.
그러나 이 같은 흐름은 계속되지 않았다. 10월 15일 조사(리얼미터)에서는 충청권의 민심이 자유선진당을 ‘떠나’ 민주당 지지로 돌아선 양상을 보였다. 한나라당은 이전 조사 대비 2.0%p 하락해 37.1%였던 반면 민주당은 2.8%p 올라간 29.9%를 기록했다. 민주당이 세종시에 관해 원안추진을 주장하며 반발했던 점이 충청권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불러왔던 것이다. 대전·충청 지역의 경우 이전 조사에 비해 9.6%p 올라간 30.7%를 기록해 민주당 지지율 상승에 큰 힘이 되었다.
▲ 지난 9월 22일 충청지역 주민들이 세종시 원안사수 1000만 명 서명운동 출범식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
또 세종시 문제는 충청권뿐 아니라 타 지역에서도 이전보다 더 민감한 변화상을 보였다. 우선 충청지역에서는 ‘원안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65.6%였고 11월 15일 조사에서는 69.3%로 3.7%p 더 올라갔다. 반면 같은 기간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응답은 24.2%→20.6%로 3.6%p 내려갔다. 이는 타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경기권(48.8%→44.6%)만을 제외하고는 서울권(39.8%→44.0%), 경남권(48.6%→50.9%), 경북권(45.1%→45.8%), 전라권(46.9%→60.0%) 등 대부분의 지역에서 ‘수정론’보다 ‘원안론’ 의견이 월등하게 높아졌다.
이에 대해 리서치앤리서치 배종찬 팀장은 “박 전 대표와 정운찬 총리, 이명박 대통령 측이 대립하는 양상이 이어지면서 여론이 박 전 대표의 편으로 더 많이 결집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민주당 지지기반이 월등한 호남권에서 ‘원안론’ 의견이 급격히 높아진 점도 눈에 띄는 대목. 이 흐름에 대해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윤희웅 연구원은 “중도·무당파 층이 박 전 대표 지지로 움직인 것과 함께 세종시에 관해서는 민주당 지지층 일부마저 박 전 대표 지지층으로 옮겨간 결과”라고 설명했다. 배종찬 팀장 역시 “여론은 ‘국민과의 약속’이라는 박 전 대표의 원칙을 중시한 발언을 더 설득력 있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의 과제는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측이 어떤 절충점을 찾을 수 있을지다. 현재 여론은 이 대통령보다 박 전 대표의 의견을 설득력 있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 정부의 고민을 깊게 하는 상황이다. 지난 11월 14일 MBC가 코리아리서치센터(KRC)에 의뢰한 여론조사에서 이 대통령이 수정안을 밀어붙이는 이유로 “수도권 유권자를 의식한 것”이라는 의견이 47.1%로 가장 많았고, “행정 비효율 때문”이라는 의견은 43.2%였다. 반면, 박 전 대표가 세종시 원안 처리를 강조하는 이유로는 “국토 균형발전에 대한 국민과의 약속”이라는 의견이 55.8%로, “충청권 표를 의식한 것”이라는 의견(37.6%)보다 높았다.
정치권에서는 세종시 문제가 내년 지방선거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될 이슈로 보고 있다. 정부가 세종시를 기업도시로 ‘궤도 수정’하는 과정에서 대기업 등의 유치를 위해 각종 혜택을 제시하자 상대적 박탈감에 빠진 영호남의 지역민심 또한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박근혜 전 대표 양자 모두 세종시를 두고 치열한 수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가 미디어법 처리 당시 막판에 이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었던 것처럼 세종시 문제도 결국 그렇게 타협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오지만, 상당수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그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KSOI 윤희웅 연구원은 “미디어법 발언으로 떨어져 나간 박 전 대표의 지지층이 이번에 다시 합류했다. 과거 결국 타협하는 모양새로 표를 잃었던 박 전 대표가 이번에는 최대한 자신이 주장한 바를 관철시키려 할 것이다. 게다가 충청권은 차기 대권을 노리는 박 전 대표가 꼭 확보해야 하는 지지기반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이 수정안 관철에만 매달리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리서치앤리서치 배종찬 팀장은 “만약 박 전 대표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채 세종시 수정안이 강행되고 이것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충청권에서 대거 낙선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그 여파는 박 전 대표보다 이 대통령에게 더 큰 타격을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