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산폭발의 흔적인 기묘한 돌들을 조경에 이용한 석부작테마공원(왼쪽). 오른쪽 사진은 서건도에서 바라보이는 서귀포 주변 섬들의 모습이 일품이다. 오른쪽부터 범섬과 문섬, 새섬이 보인다. | ||
“서건도? 그런 섬도 이수과(있나요)?”
내비게이션도 못 찾아내기에 차에서 내려 섬의 위치를 묻는데 서귀포시 사람들이 오히려 되묻는다. 난감하던 차에 법환마을 앞 포구에 있다는 ‘단서’를 좇아 무작정 그 마을로 갔다. 그제야 그 존재를 확인해 주는 마을사람들. 초등학교 지나 월드컵경기장 방면으로 올라가다보면 이정표가 보일 거란다.
이정표는 바닷가 쪽 작은 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닷바람을 막는 현무암 돌담이 허리춤까지 쌓인 길을 따라 500m쯤 내려가자 볼품없어 보이는 섬 하나가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다. 크기가 불과 1만3000㎡ 정도로 다 둘러보는데 10여 분이면 족한 작은 섬이다.
서건도는 법환마을 해안 200m 앞에 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섬이 정말 ‘떠 있다’고 말한다. 섬의 원래 이름은 ‘썩은 섬’. 서건도는 ‘썩은 섬’을 음차한 한자식 이름이다. 섬이 그런 이름을 갖게 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섬의 토질이 푸석푸석한 흙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수중화산이 폭발하면서 생긴 서건도는 섬의 대부분이 이런 토질이다. 주민들은 이 흙을 ‘썩은 흙’이라고 했고 당연히 서건도는 ‘썩은 섬’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서건도 주변은 청정 그 자체. 소라와 전복, 성게와 해삼이 지천이다. 폭 50m 정도의 바닷길이 하루 두 번, 어떤 때는 온종일 열리는데 이 때면 서건도까지 걸어서 갈 수 있다. 마을사람 중 일부는 ‘썩은 섬’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를 달리 설명하기도 한다.
풍랑이 한 차례 지나고 난 후 물길이 열리면 해산물들이 발에 밟힐 정도로 바닷길과 섬 주변을 가득 메워 썩은 냄새가 날 정도였다는 것이다. 서건도의 바닷길 열리는 시간은 국립해양조사원 홈페이지(http://www.nori.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현무암 덩어리들이 가득한 바닷길을 건너 서건도로 가면 물허벅(제주에서 음료수 등을 운반할 때 쓰는 용구)을 진 해녀상 두 개가 반갑게 맞이한다. 사람이 살지 않는 서건도를 지키는 해녀상들이다. 이 해녀상 뒤로 나무데크로 된 산책로가 마련돼 있다. 그 길을 따라 50m쯤 가니 서건도 전망대다.
높이가 해발 30m나 될까. 전망대라는 이름을 붙이기가 민망하다. 그러나 눈을 피로하게 만드는 마천루가 없는 제주에서는 이 정도 높이면 충분히 주변을 조망할 수 있다. 이 전망대에 서면 멀리 한라산이 보이고 서건도 왼쪽으로 강정마을 해안이 손에 잡힐 듯하다. 겨우 내내 내린 눈으로 한라산은 주름 잡힌 하얀 치마를 입은 형상을 하고 있다. 눈앞의 강정마을 해안은 주상절리로 이루어져 있다. 주상절리는 용암이 식을 때 수축하면서 형성된다. 현무암질이나 조면암질 마그마가 식을 때 절리가 규칙적으로 잘 발달한다. 이 주상절리는 육각 형태의 기둥모양을 하고 있다. 강정해안의 주상절리는 중문관광단지 내에 있는 대포주상절리와는 비할 바 아니다. 그 규모나 또렷함이 대포해안의 것에 훨씬 못 미친다. 그러나 걸어서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 위에 서서 자연의 신비를 몸소 느껴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 아프리카 국보급 유물 다수가 전시돼 있는 제주아프리카박물관(왼쪽). 서건도는 법환마을 해안에서 약 200m 앞 바다에 있다. 썰물 때면 길이 드러나 걸어서 갈 수 있다. | ||
오른쪽으로 가장 가까이 보이는 범섬은 호랑이가 잔뜩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다. 섬에는 해식쌍굴이 뚫려 있다. 제주도를 ‘창조’했다는 ‘설문대 할망’이 한라산을 베고 누울 때 두 발이 뚫은 동굴이라는 전설이 깃든 동굴이다.
범섬에는 총 142종의 식물들이 자란다. 거문도와 제주도에서만 자생하는 물푸레나무과의 박달나무도 그중 하나다. 해안에는 녹조류·갈조류·홍조류 등 총 111종의 해조류가 자란다. 이외에도 다수의 신종, 미기록종 식물들이 있다. 문섬은 모기가 많이 문다 하여 문섬이라는데 연원이 정확치는 않다. 세계적인 연산호 군락지로 스쿠버다이빙의 천국이다. 맨 왼쪽에 보이는 새섬은 수많은 새들이 살고 있다고 해서 그 같은 이름이 붙었다.
틀어 놓은 솜처럼 부푼 토질 때문에 홀대를 받고 방치됐던 서건도는 그러나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섬이다. 이곳에서는 기원전 1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주거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고 토기 파편과 동물뼈도 다수 출토됐다.
서건도가 자리한 서귀포에는 다양한 테마공원과 박물관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한 곳들을 찾아다니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랄 정도. 그중 석부작테마공원과 아프리카박물관은 꼭 한번 가보길 추천한다.
석부작테마공원은 3만 점이 넘는 현무암과 1000여 종의 제주 자생식물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공간이다. 화산폭발의 결과물인 현무암은 기묘한 자태를 뽐내며 공원 곳곳에 비치돼 있다. 단순히 돌 자체로도 탄성을 자아내게 하지만 이 돌을 화분처럼 이용해 다양한 야생초들을 키워내는 데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처럼 돌과 야생화를 조화시킨 작품을 ‘석부작’이라고 한다. 한편 테마공원에는 벌써 봄이 한창 물이 올랐다. 분홍빛 매화가 서서히 피어오르고 있고 샛노란 복수초는 공원 감귤나무 밑에 가득 들어서 있다.
아프리카박물관은 국내 최초의 아프리카 미술 전문박물관으로 아프리카의 국보급 미술품들이 다수 전시돼 있다.
여행 안내
★길잡이: 제주공항→제주대 방면 1131번 도로→서귀동 삼거리에서 우회전(일주도로)→월드컵경기장 끼고 바다 방향 좌회전→조금 내려가다 큰 삼거리에서 우회전→150m 전방에서 이정표 보고 좌회전 후 500m 직진→서건도
★먹거리: 제주를 대표하는 생선 중 하나인 갈치. 서귀포 정방폭포에서 칠십리해안을 따라서 서귀포항 쪽으로 가다보면 여객터미널 근처에 ‘칠십리갈치요리전문점’(064-762-2366)이 있다. 석쇠에 굵은 소금을 뿌려 구운 갈치구이나 감자와 무 등을 넣고 자작하게 졸인 갈치조림, 늙은 호박을 넣어 비린내를 없앤 갈치국, 쫄깃한 갈치회 등 갈치의 모든 것을 맛볼 수 있는 집이다.
★잠자리: ‘석부작테마공원’(064-739-3331) 내에 펜션과 콘도가 있다. 감귤밭 가운데 자리한 숙소가 운치 있다.
★문의: 제주특별자치도 문화관광포털(http://cyber.jeju.go.kr) 관광마케팅과 064-710-3854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