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성 마늘밭과 산수유나무. 연두빛과 샛노란 봄풍경이 보기만 해도 마음이 맑아지는 것 같다. | ||
경북 의성 사곡면 화전리는 숨은 산수유 명소다. 전남 구례 상위마을이나 경기 양평과 이천이 익히 알려진 반면 의성 산수유마을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이곳은 전국 최대의 산수유 군락지다. 전국에서 나는 산수유의 약 40%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화전리 산수유군락은 무려 2㎞ 넘게 이어진다. 화전2리에서 교회를 끼고 들어가면 3리 숲실마을이다. 조붓한 길이 계곡을 따라 구불구불거리며 자꾸만 산속으로 기어들어간다. 도무지 마을이 있을 것 같지 않은데 길은 끝나지 않는다. 길가와 산비탈에는 온통 산수유나무다. 마치 노란 수채물감을 잔뜩 바른 붓으로 꾹꾹 눌러놓은 것 같다.
산수유는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나무로 20~30개의 작은 꽃이 한 곳에 모여 탁구공만 한 또 하나의 꽃을 이루는 형태다. 따로 떼어 놓으면 별 볼일 없는 산수유꽃은 모여 있음으로 해서 매우 화려해진다. 특히 햇빛을 받으면 꽃은 더욱 아름다워진다.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에 좁쌀만 한 전구들을 가득 달아 놓은 듯, 이파리 하나 없는 나무에 피어난 노란 꽃들이 반짝거리며 빛난다.
길을 따라 20분쯤 걸어 들어가자 드디어 마을이 나온다. 30~40호 정도 되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자그마한 마을이다. 주변에도 산수유나무가 빼곡하다. 산수유군락은 이곳에서 끝나지 않고 다시 1㎞ 정도 전방에 있는 저수지까지 계속 이어진다. 길 중간에는 산책로가 나 있다.
산수유나무는 숲실마을을 지탱하는 힘이다. 워낙 험한 산골이라 이곳에는 논이나 밭농사를 지을 땅이 거의 없다. 그러나 산수유는 그 이상의 소득을 주민들에게 안겨줬다. 감귤나무가 제주도민들의 희망이었듯 숲실마을 주민들은 대대로 산수유 열매를 따서 자식들을 키우고 대학에도 보냈다.
언제부터 이곳에서 산수유 농사를 지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가장 오래된 나무들이 300년 넘은 것으로 미뤄 그 역사가 상당함을 알 수 있다. 산수유는 봄에 노란 꽃을 피우고 늦가을에 빨간 열매를 맺는다. 열매는 간과 신장에 특히 좋다.
숲실마을에서는 이번 주말까지 산수유축제가 계속된다. 그러나 특별한 프로그램이 마련된 것도 아니고 딱히 축제랄 것이 없다. 다만 ‘멋진 숲실마을의 풍경을 즐기러 오십사’ 초대하는 것이다.
아무리 잘 알려지지 않았다지만 주말에는 숲실마을도 다소 혼잡스럽다. 마을까지 차량을 이용해서 찾아오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길이 워낙 좁아 부대낌이 많다. 웬만해서는 걷기를 권한다. 다소 멀더라도 산수유꽃길을 느릿느릿 걸으며 봄을 만끽하는 기분이 그만이다.
의성에는 둘러볼 만한 곳들이 꽤 많다. 특히 민속촌에서나 볼 법한 전통마을 두 곳이 있다. 금성면 산운마을과 점곡면 사촌마을이다.
금성산 아래에 자리한 산운마을은 의성에서 ‘대감마을’로 불리는 곳으로 영천이씨 집성촌이다. 조선시대 양반마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 마을에서는 참의와 판서 등 수많은 인물이 배출됐다. 산운마을에는 조선 영조 시절 건축된 학록정사와 운곡당, 점우당, 소우당 등의 고택을 포함해 40여 동의 전통 가옥이 잘 보존돼 있다. 토담길을 걸으며 마을을 산책하다보면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산운마을을 둘러보고 나가는 길에 한옥 양식의 커다란 건물이 눈에 띈다. 폐교가 된 산운초등학교 건물을 활용한 생태공원이다. 리모델링된 건물이 바로 생태관. 이곳에서 의성에서 발견된 공룡화석 등의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건물 뒤편에는 정자와 장승 등이 곳곳에 배치된 아기자기한 정원이 있다.
산운마을 인근에는 고운사의 말사인 수정사와 탑리5층석탑이 있다. 수정사는 사명대사 유정이 머물며 왜군을 격퇴한 곳으로 절 뒤편에 사명대사가 왜군과 싸우던 금성산성이 버티고 있다. 탑리5층석탑은 우리나라 석탑 양식의 발달을 고찰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는 탑이다. 경주에 있는 분황사 모전석탑 다음으로 오래된 모전석탑(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린 탑)이다.
또 하나의 전통마을인 점곡면 사촌마을은 산운마을보다 더 역사가 깊은 곳이다. 조선이 건국한 해인 1392년 안동김씨에 의해 세워진 마을로 풍산유씨가 이주해오면서 두 집안이 마을을 지탱했다. 마을에는 퇴계 이황의 제자 김사원이 지은 만취당이 있다. 이 건물은 선조 때인 1582년 지어진 건물로 그후 여러 차례 보수와 증축을 거쳤으나 그 원형만은 잃지 않았다. 현판의 글씨는 한석봉이 쓴 것이다. 만취당 옆에는 형극의 시간을 건너온 듯 이리저리 뒤틀린 향나무 한 그루가 오롯이 서 있다.
의성 여행을 하면서 고운사를 빼놓을 수 없다. 사촌마을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고운사가 있다. 신라 신문왕(681년)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로 최치원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는 곳이다. 고운사(高雲寺)라는 이름은 고운(孤雲) 최치원의 호에서 차용한 것이다. 최치원은 고운사의 중창(낡은 건물을 고쳐서 다시 지음)에 참여하기도 했다.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한 최치원은 상당 기간 동안 이 절에 머물기도 했는데 그때 지은 것들이 가운루와 우화루다. 그중 우화루는 벽화가 아름답다. 우화루 벽면에는 청룡과 호랑이가 그려져 있다. 호랑이는 마치 금방이라도 그림 밖으로 뛰쳐나올 듯 생동적이다. 특히 눈이 강렬한데 어느 위치에서 보더라도 응시자의 눈을 쳐다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행 안내
★길잡이: 중앙고속국도 의성IC→5번 국도 의성읍→912번 지방도→신감삼거리에서 우회전→오상삼거리에서 좌회전→79번 지방도→숲실마을
★먹거리: 바삭하게 튀긴 닭에 숭숭 썬 매운 고추와 의성마늘을 빻아서 듬뿍 넣고 간장에 다시 한 번 조린 마늘닭(1마리 1만 3000원)을 추천한다. 깐풍기와 일견 비슷하지만 더 담백하고 맛있다. 마늘닭을 파는 곳은 단촌면사무소 맞은편 삼미식당(054-833-0107). 의성장터에 있는 남선옥(054-834-2455)도 추천할 만하다. 옛날 선술집 분위기가 나는 곳으로 한우숯불구이가 1인분 9000원으로 저렴하다. 장날인 2일과 7일에는 국밥을 파는데 그 또한 유명해서 장날마다 찾아오는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잠자리: 의성 탑산약수온천(054-833-5001), 빙계온천(054-833-6660)
★문의: 의성군(http://www.uiseong.go.kr) 054-830-6356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