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리커처=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특히 이번 의혹은 최근 세종시와 4대강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청와대와 당 안팎에서 이 의원의 ‘역할론’이 급부상하고 있던 차에 불거진 것이어서 그 배경을 놓고도 관심을 끌고 있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의원 반대세력이 ‘형님 정치’ 부활을 막기 위해 예전부터 쥐고 있었던 ‘한상률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음모론’이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4대강과 세종시 ‘소방수’로 구원등판 했다가 공도 제대로 던져보지 못하고 강판당할 처지에 놓여 있는 이 의원의 행보를 따라가 봤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나라당의 세종시와 4대강 문제 대응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지난 11월 23일 기자와 만난 청와대 한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목소리만 컸지 누구 하나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다. 이 대통령이 당이 아닌 총리실에 전권을 맡긴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결국엔 당에서 실마리를 풀어줘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고, 고민하던 끝에 형님인 이 의원에게 SOS를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때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이 의원과 그의 측근들에 대한 비위 내사를 했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형제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최근 두 사람은 매일 통화하면서 여러 현안들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고 한다. 지난 11월 27일에 있었던 이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 역시 이 의원이 “직접 국민들에게 나서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라”며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이 대통령 지지도가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이 의원의 복귀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세종시와 4대강은 이명박 정부의 핵심 정책이다. 그렇지만 야당은 물론 한나라당에서조차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여론도 악화되자 이 대통령 역시 조바심을 내고 있을 것이다. 더욱 속도를 내기 위해선 한나라당의 전폭적인 협조가 필요한데 결국 그 임무를 이 의원에게 맡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에게 ‘러브콜’을 보낸 곳은 비단 청와대뿐만이 아닌 듯하다. 한나라당의 여러 관계자들에 의하면 지난 10월 재·보궐 선거 전후부터 이 의원의 원내 활동에 다소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한나라당의 한 보좌관은 “2선으로 물러난 이후 자원외교에 주력했던 이 의원이 선거가 끝난 이후부터 세종시와 4대강 문제에 대해 부쩍 목소리를 낸 것으로 안다. 아직 ‘형님 정치’에 대한 거부감이 커 비공개로 이뤄졌지만 당 지도부 인사들을 잇달아 만나면서 의견을 듣고 이 대통령 의중도 전했다”고 털어놨다. 이 배경엔 당 지도부의 적극적인 ‘구애’가 있었을 것이란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이상득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청와대에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이 의원 말고 누가 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이 의원은 그간 2선으로 후퇴해 있었지만 측근 인사들이 청와대 국무총리실 국가정보원 등의 요직에 자리하고 있어 영향력만큼은 여전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한나라당 측은 ‘컴백’하는 이 의원을 통해 세종시 문제 등에서 ‘소외’돼 있던 당의 위상을 되찾기를 기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나라당의 또 다른 보좌관은 “최근 세종시 문제 등을 놓고 (당내에서)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더 이상 정부의 뒤치다꺼리만 하는 게 아니라 당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보좌관은 최근 정운찬 총리의 입지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그 사례로 들었다. 총리실 관계자들 역시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을 이끌며 ‘양파 총리’에서 ‘실세 총리’로 두각을 나타냈던 정 총리 위세가 예전만 못하다고 귀띔했다. 당초 정 총리는 대구·경북(TK)의 몇몇 주요 사업을 세종시로 유치하려 했지만 이 의원이 “TK가 바보도 아니고 빼앗는다고 순순히 빼앗기겠는가” “TK가 결코 피해 입지 않도록 하겠다” 등과 같은 강경한 어조로 반대하자 뜻을 접었다고 한다. 그 이후 사실상 세종시 문제를 둘러싼 주도권은 이 의원을 앞세운 한나라당 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를 두고 총리실 내부에서는 정 총리가 이 의원 핵심 측근인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과의 ‘파워게임’에서 밀렸다는 소문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 ‘아우님 화이팅!’ 지난 27일 이명박 대통령이 ‘특별생방송 대통령과의 대화’ 프로그램에 출연, 세종시 수정에 대한 입장을 직접 밝히고 있다. 이 방안은 이상득 의원이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친박계의 한 의원 보좌관은 “친이계 중에서 이 의원은 그나마 우리 쪽과 가까운 인사로 꼽힌다. 말도 잘 통하고…. 박근혜 전 대표 역시 이 의원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소장파로 분류되는 한 초선 의원도 “이 의원과 접촉이 있었던 것은 맞다.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 논의한 것은 아니지만 다시 예전의 ‘형님’이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귀띔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 역시 “민주당의 고위 인사가 얼마 전 이 의원과 식사를 했다는 말을 들었다. 4대강 예산안 등에 대해서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의원의 이러한 움직임을 이재오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의 광폭행보와도 연관 지어 바라보기도 했다. 이 의원 측에서 한때 당권을 놓고 겨뤘던 이 위원장도 ‘복귀’한 마당에 굳이 뒤로 물러나 있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 앞서의 이상득계 의원은 “이 위원장이 돌아온 후 우리가 설 자리가 별로 없다. 가깝게는 내년 지방선거, 멀게는 총선을 위해서라도 이 위원장을 견제할 필요가 있는데 그럴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이 의원 역시 측근들의 이러한 보고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처럼 당내 안팎 상황이 이 의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면서 ‘형님 정치’는 다시 가동되는 듯했다. 그러나 뜻밖의 변수가 나타났다. 바로 여의도를 뒤흔들고 있는 ‘한상률 게이트’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민주당은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자신의 부하 직원이던 안원구 국장을 내세워 이 의원에게 유임 로비를 벌였다고 폭로했다. 또한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을 비롯해 몇몇 측근들 이름도 함께 거론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의원 측은 “안원구 국장과 만난 사실이 없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지만 이번 사건의 불똥이 어디까지 튈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와 관련, 검찰의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혐의가 나온 것이 없어 수사 항목엔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국민들의 관심이 높고 의혹이 공개적으로 제기된 만큼 조만간 확인 작업엔 나서야 한다는 쪽으로 내부 결론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친형 이름과 정부부처 고위 인사들 이름이 거론되고 있어 최대한 신중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 역시 “안 국장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향후 (이 의원에 대한) 서면 혹은 방문 조사에 나설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은 이번 사건을 ‘기획 수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검찰 내에서도 ‘한상률 파일’은 깊숙이 묻어둔 상태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 와서 ‘느닷없이’ 수사에 고삐를 죄는 배경에 대해 의아해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안원구 국장이 이 의원 쪽과 친하다는 것은 사실 여부를 떠나 익히 알려져 있었다. 수사관 4명을 동원해 국세청의 현직 국장을 긴급체포했던 것부터가 이상했는데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고 추측했다. 경남권의 또 다른 의원 역시 “현 시점에서 이 의원이 당에 필요한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그렇지만 ‘형님정치’에 대한 비토도 여전하다. 지금 당내에서는 이 의원 반대세력이 교묘하게 한상률 관련 정보를 흘리고 있다는 말이 파다하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여권 내 권력게임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