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금도 유일의 사찰 ‘서산사’. | ||
얼마 전 전남 신안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태안의 악몽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신안군에서 해상기름유출사고가 발생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양이 많지 않았고, 재빠른 방제로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어서 1004개의 섬이 몰려 있는 신안군은 한시름을 놓았다. 물론 비금도 여행을 꿈꾸던 사람들도 마찬가지.
목포항으로부터 약 54㎞, 뱃길로 두 시간 거리의 비금도는 염전으로 유명한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천일염전을 최초로 시작한 곳이 바로 이 섬이다. 일제강점기 때 평남 용강군 주을염전으로 징용 갔던 박삼만 씨가 해방이 되자 돌아와 일군 구림염전이 그것이다. 1946년의 일이다. 이후 섬사람들은 대동염전조합을 만들고 100만㎡에 이르는 염전을 조성했다.
소금은 비금도민의 삶을 바꿔놓았다. 소금값이 오르면서 주민들이 돈방석에 앉은 것. 날아가는 새의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비금’(飛禽)인 이 섬이 오죽하면 ‘돈이 날아다니는 섬’이라는 뜻의 ‘비금’(飛金)으로까지 불렸을까.
그러나 요즘은 형편이 조금 다르다. 염전의 호황은 옛말. 가선선착장이든 수대선착장이든 비금도에 발을 들이면 맨 먼저 보이는 것도 염전이고, 또한 가장 인상적인 풍경을 선사하는 것도 염전이지만 그 수가 점점 줄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인력난 때문이다. 비금도 역시 고령화로 인해 젊은 일꾼들이 턱없이 부족하다. 바닷물이 들어차고, 하얀 소금이 몽글몽글 익어가던 염전이 자꾸 함초(염분을 먹고 사는 바닷가식물)로 뒤덮이고 있어 아쉽다.
염전이야 닻을 내려야 볼 수 있는 것이라지만 비금도의 산은 바다 위에서도 멋진 모습으로 유혹한다. 비금도는 산도 바다에 못지않다. 아니, 그 이상이라고 점수를 줘도 전혀 과하거나 아깝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 중에서 산의 매력을 탐구하는 이가 극히 적다. 조언하건대 비금도에 갈 때는 반드시 등산화를 챙겨가도록 하자.
▲ 서산사에서 바라본 비금도 주위 섬의 풍경. 아래는 하누넘해수욕장. | ||
산행은 2시간 정도 걸린다. 수대선착장에서 비금면소재지 쪽으로 가다보면 상암마을이 나오고 산행기점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등산로는 잘 정비된 편이다. 위로 우뚝 솟은 암봉들이 보이는데 바로 그림산이다. 좌로 도초도와 우이도, 우로 임자도와 암태도 등이 잡힐 듯 보이는 등산로를 따라 50분쯤 오르면 그림산 정상이다.
잠시 숨을 가다듬으며 시원한 조망을 한껏 즐긴 후 다시 선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위에 오른다. 험할 게 없는 길이다. 능선 좌우로 죽치마을과 한산마을이 다소곳이 앉아 있다. 산행을 이 두 곳에서 시작하기도 한다. 선왕산 정상까지는 40분, 그림산 정상까지는 20분 걸린다. 선왕산 정상에서는 멀리 전방에 홍도와 흑산도까지도 보인다.
선왕산 정상에 서면 바로 앞에 특이한 해변이 내려다보인다. 일명 하트해변이다. 백사장 길이가 200m도 채 되지 않을 것 같은 초미니 해변으로 생긴 모양이 꼭 하트를 닮았다. 본 이름은 하누넘해변이다. 수온이 차지 않고 파도가 세지 않은 데다가 물 또한 깊지 않아서 해수욕을 즐기기에는 최적이다. 해변의 좌우는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해변 언덕 위에는 캠핑을 즐길 수 있는 자리가 있다.
하누넘에서 원평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바다를 바로 곁에 두고 달리는 최고의 드라이브코스다. 해안도로가 끝나는 곳에서 저수지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서산사가 나오는데 한번 들러볼 만하다. 비금도 유일의 사찰로 고려 우왕 시절 창건했고, 현재의 건물은 1988년 새로 지은 것이다. 물맛 좋은 약수가 있고 무엇보다 파도소리가 독경처럼 울려 퍼지는 전망 좋은 절이다.
원평해변과 명사십리해변은 그 크기 면에서 하누넘을 압도한다. 두 해변은 엄밀히 말하면 붙어 있다. 쌀가루처럼 고운 모래가 해변에 가득 깔린 이 해변에서는 자동차로 질주할 수도 있다. 바닥이 단단해 바퀴가 빠지지 않는다. 해수욕하기에도 좋지만 그보다는 고기잡이가 제격이다. 워낙 수심이 얕아 100여m를 걸어가도 허리춤밖에 물이 차지 않는데 수면 아래를 들여다보면 광어와 숭어 따위가 넘친다. 그물 몇 번 던지는 것으로 그날의 횟감과 매운탕거리가 해결이 될 정도다.
▲ 해변의 모양이 하트를 닮았다고 해서 하트해수욕장이라고 불리는 하누넘해수욕장. 아래는 운무에 휩싸인 선왕산. 기기묘묘한 암봉들의 자태가 여느 명산에 뒤지지 않는다. | ||
섬 안 어느 마을을 둘러보건 우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내원마을 우실은 등록문화재 제283호로 지정돼 있다. 얼기설기 쌓은 제주도의 돌담과 달리 비금도의 우실은 보다 촘촘하고 더 높다.
한편 비금도에는 또 하나의 ‘보너스’가 있다. 바로 도초도다. 비금도와 도초도는 연륙교로 연결되어 있다. 도초도에는 아름다운 시목리해변이 있다.
여행 안내
★길잡이: 서해안고속국도 목포IC로 나온 후 목포항이나 목포북항으로 간다. 두 항구에서 비금도와 도초도행 카페리호와 쾌속선이 출발한다. 페리호로는 2시간, 쾌속선으론 50분이 걸린다. 배시간은 대흥상사(061-244-0005), 비금농협(061-275-5251)으로 문의.
★잠자리: 호반민박(061-275-8810), 삼거리민박(061-275-1250), 바닷가민박(061-261-0001) 등 원평해수욕장 주변에 민박집들이 몰려 있다.
★먹거리: 민어회와 병어찜이 맛있다. 민어회는 부레와 뱃구레가 일미. 참치회처럼 참기름소금장에 찍어 먹는데 무척 고소하고 쫄깃하다. 병어는 육질이 무척 부드럽다. 원평해수욕장과 면사무소 근처에 음식점들이 많다. 한편 비금도에서는 취사 가능한 민박집들이 많다. 비금면사무소 인근 하나로마트에서 재료를 구입해 먹거리를 직접 해결하면 식비 지출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문의: 신안군청 문화관광포털(www.sinan.go.kr), 비금면사무소 061-275-5231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