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바라기들이 길가에 가득 피어 있는 귀네미마을. | ||
워낙 고원지대인 탓에 태백에는 고랭지배추를 재배하는 대단위 경작지들이 두 곳 있다. 하나는 귀네미마을이고, 또 다른 하나는 매봉산배추밭이다. 이 두 곳은 특별한 풍경을 목도할 수 있는 곳들이다.
먼저 귀네미마을은 해오름이 아름다운 숨은 명소다. 이곳에서는 정동진보다 1분 먼저 해오름을 감상할 수 있다. 해발 950m에 자리하다보니 해오름도 평지보다 더 빨리 볼 수 있는 것이다.
귀네미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태백시에서 35번 국도로 갈아타고 삼수령 피재를 넘어가야 한다. 삼수령은 한강과 낙동강 그리고 오십천의 세 물줄기가 발원한 곳이다. 해오름을 보기 위해 달리는 새벽길. 하늘에서는 별이 쏟아질 듯 부서진다.
그러나 잠시 후 갑자기 앞이 분간할 수 없는 안개에 휩싸인다. 골지천 탓이다. 광동댐에서부터 흘러내리는 골지천이 새벽만 되면 지독한 안개를 피워낸다. 속도를 줄이고 10분쯤 올라가다보니 오른쪽으로 귀네미마을 표지석이 나오고 길이 산을 향해 나 있다. 이깔나무가 많은 상쾌한 길이다.
이 길로 갈아타자마자 안개가 갑자기 사라진다. 그러나 대신 안개 같은 의구심이 솟아오른다. 길은 점점 산 속을 파고드는데 과연 해오름을 볼 수 있기는 한 것인가.
5분쯤 길을 따라 가자 마을이 나타난다. 1989년 9월, 광동댐이 생기면서 수몰민들이 이주해 마을을 이룬 곳이다. 20여 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이다.
이곳 사람들은 고랭지배추농사를 짓는다. 경작지는 약 72만㎡에 이른다. 배추는 8월 말부터 9월 중순경 출하된다. 귀네미마을의 배추밭 풍경을 보기에는 요즘이 가장 좋다. 마치 갓 피기 시작한 장미꽃 같은 배추들이 산을 경작해 만든 밭에 빼곡히 심어져 있다.
귀네미마을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 특히 요즘은 해바라기와 접시꽃이 곱게 피어 마을길을 치장하고 있다. 해오름을 보기 위해서는 배추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능선 위로 올라가야 한다. 물탱크가 있는 곳이 조망지점이다.
자동차를 길 한쪽에 세우고 걸어가는데 한기가 온몸으로 밀려온다. 다른 지방과 달리 태백의 새벽은 여름에도 15℃ 안팎으로 쌀쌀하다. 소름이 돋은 팔을 연신 쓸어대며 물탱크 쪽으로 올라가자 멀리 삼척항이 내려다보이고, 그 앞으로 산들의 능선이 너울거리는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리고 마침내 시작되는 해오름. 바다 위에서 갑자기 불기둥이 쑥 하고 솟아오르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다.
▲ 매봉산 고랭지채소밭 풍경(맨 위). 산마루에 8개의 풍차가 설치돼 있다. 귀네미마을에서 조금 내려오면 왼쪽으로 예수원 가는 길이 있다. 성공회 소속 수도원으로 이국풍의 건물이 이채롭다. 20여 가구가 마을을 이룬 귀네미(맨 아래). | ||
이곳 역시 산을 깎아 만든 농토지만, 귀네미마을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바로 풍력발전기다. 태백의 바람을 이용한 풍력발전기가 매봉산 마루에 여덟 기 설치돼 있다.
매봉산배추밭은 1962년부터 조성된 곳으로 귀네미마을보다 3배 정도 더 넓다. 해발 1250m로, 고랭지배추밭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이곳에 풍력발전기가 설치되기 시작한 것은 4년 전의 일이다. 정부의 신재생에너지보급정책의 일환으로 2004년 1·2호기가 설치됐고, 2005년에 3·4·5호기, 2006년에 6·7·8호기 순으로 건설이 완료됐다. 풍력발전기는 연간 1기당 1000가구가 1개월 동안 사용하는 전기를 생산해낸다.
보기에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풍력발전기 아래로 가면 생각이 달라진다. ‘쉭, 쉭’ 하는 소리를 내며 날개가 회전하는데 그 소리가 어마어마하게 크고 또 위압적이다. 마치 그 날개가 축에서 떨어져 나와 달려들 것 같은 기분마저 들 정도다.
이곳 매봉산배추밭도 귀네미마을 못잖은 조망을 자랑한다. 비록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를 볼 수는 없지만 왼쪽으로 금대봉·은대봉·함백산, 오른쪽으로 덕항산, 가덕산 등이 막힘없이 보인다.
또 다른 풍경의 태백을 소개하자면 예수원이 있다. 매봉산배추밭과 귀네미마을 사이에 자리한 예수원은 성공회 소속 고(故) 대천덕 신부가 1965년에 세운 일종의 수도원이다. 설립자인 대천덕 신부는 미국인으로 본명은 루벤 아처 토리 3세다. 2002년 세상을 뜨기까지 37년 동안 예수원을 이끌며 노동과 수도를 병행해왔다.
예수원의 모습은 중세유럽을 연상시킨다. 돌을 쌓아 벽을 올리고, 지붕에는 짚이나 굴피를 얹었다. 벽면마다 작은 유리창문들이 나 있다.
예수원 입구에는 대천덕 신부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이 비를 지나쳐 200m쯤 올라가면 오른쪽 계곡변에 ‘예수원’이라는 간판이 서 있고 왼쪽으로 건물들이 비탈면에 계단처럼 층층이 서 있다.
만약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살짝 둘러볼 요량에 예수원을 방문했더라도 손님부에 이야기를 해야 한다. 수도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함부로 돌아다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미리 예약된 손님들과 함께 이동하며 예수원 곳곳을 볼 수 있다.
여행 안내
★길잡이: 영동고속국도 남원주 분기점→중앙고속국도 제천IC→38번 국도→영월→태백→35번 국도→귀네미마을
★잠자리: 귀네미마을에서 삼수령 방면으로 내려오다보면 ‘한강의 아침’(033-554-1371)이라는 숙박시설이 있다. 창죽분교를 리모델링한 곳으로 단체부터 개인까지 묵을 수 있는 방이 준비돼 있다.
★먹거리: 태백은 한우가 유명하다. 태백 어딜 가나 한우고깃집을 볼 수가 있는데 특히 시청과 태백 중앙로 주변으로 고깃집들이 몰려 있다. 고원에서 자란 태백의 한우는 육질이 부드럽고 담백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게다가 석탄의 고장인 만큼 연탄불에 구워먹는 기분도 고기맛을 더 좋게 만든다. 황지교 사거리 근방에 있는 ‘한우마을’(033-552-5349), 황지주공1차아파트 앞쪽에 자리한 ‘태성실비식육’(033-552-5287)을 추천할 만하다.
★문의: ●태백시청 문화관광포털(http://tour.taebaek.go.kr), 관광문화과 033-550-2081. ●예수원 033-552-0662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