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화산 정상에서 한 등산객이 너럭바위에 앉아 발 아래 경치를 바라보는 모습. 이곳에선 태안군의 아름다운 해안이 훤히 보인다. | ||
겨우 284m. 산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한 높이다. 그러나 함부로 말하지 말 것. 멀리서 보면 하얀 꽃이 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백화산’(白花山)인 이 산은 밝은 빛의 커다란 기암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동네 뒷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풍모가 예사롭지 않다. 안흥성, 만리포, 신두리사구, 꽃지 등을 제치고 ‘태안8경’ 가운데 1경으로 꼽힐 정도라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까.
그러나 높이가 낮은 만큼 등산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왕복 3시간이면 충분하다. 산행기점은 태안초교나 샘골가든 등이 일반적이다. 어느 쪽을 택하든 오르는 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산책을 겸한 등산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두 등산로는 백화산 남동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지난해에는 북쪽 산후2리 마을회관 뒤편에서부터 정상까지 이어지는 등산로가 새로 개설됐다. 남동쪽 등산로들이 몽산포와 안면도 방면의 바다를 등지고 올라가는 코스라면, 산후2리 등산로는 당진과 태안이 감싸고 있는 가로림만이 뒤에 버티고 있다.
남동쪽 등산로 쪽에서 오른다면 낙조봉, 태을암을 거쳐 정상에 이르게 된다. 어느 기점이든 출발 후 40분 안팎이면 금북정맥 능선을 만나게 된다. 금북정맥은 안성 칠장산에서 시작해 서운산, 태조산, 국사봉, 가야산 등을 거치면서 백화산으로 뻗어 내린 후 태안반도 끝에서 소멸하는 266㎞의 기나긴 산맥이다. 이 능선길에 태안반도의 해거름 감상대인 낙조봉이 있다. 커다란 바위 앞에 ‘낙조봉’(落照峰), 그 옆면에 ‘동경대’(同庚臺)라는 글씨가 붉게 음각되어 있다. 시원스레 펼쳐진 바다가 눈을 즐겁게 하는 곳이다.
▲ 위쪽부터 태을암 오른쪽에 자리한 태안마애삼존불. 몽산포영상단지에서는 마니아들을 양산한 퓨전사극 <별순검> 시즌2가 촬영되고 있다(가운데). 마애삼존불 옆에 일소계와 태을동천이라는 글씨가 음각되어 있다. 태을암의 이름은 태을동천에서 따온 것이다. | ||
이 사찰이 주목받는 이유는 마애삼존불 때문이다. 흔히 마애삼존불은 서산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태안에도 마애삼존불이 있는데 바로 태을암 옆에 있다. 커다란 바위 면에 삼존불이 조각되어 있다. 훼손을 막기 위해 그 위로 보호각이 모자처럼 씌워져 있는데 세월의 무게 탓인지 떨어져 나간 부분이 많다.
이곳의 마애삼존불은 국보 제307호로 지정된 것으로 가운데 관음보살이 있고, 좌측에 석가여래와 우측에 약사여래가 서 있다. 석가가 약사보다 조금 더 크고, 관음보살은 그 사이에서 작게 표현되어 있다. 석가여래가 아닌 관음보살이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형태는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모습이다.
이 삼존불은 서산의 것과 마찬가지로 7세기 무렵에 조성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어느 쪽이 먼저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서산의 삼존불에서 웃음기 머금은 표정을 읽을 수 있다면 이곳의 삼존불에선 온화한 미소가 읽혀지기는 하나 마모로 인해 그 표정이 뚜렷하지는 않다.
마애삼존불 옆에는 한 줄기 계곡물이 흐르는데 이곳의 큰 바위 벽면에는 ‘태을동천’(太乙同天)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고 그 앞에는 ‘일소계’(一笑溪)라고 씌어진 바위가 있다. 19세기 후반 김규황이라는 이와 그 후손들이 쓴 글씨다. 그 앞쪽에는 감막대(感幕臺)라는 석재 탁자와 의자가 있다. 관찰사를 배알하던 곳이라고도 하고, 사신을 접대하던 곳이라고도 하는데 이 모든 풍경들이 도무지 사찰과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태을암에서 정상까지는 금방이다. 약 10분만 삼존불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된다. 백화산 정상에 올라서면 회화나무 두 그루가 있는 자리에 ‘쌍괴대’(雙槐臺)라는 글씨가 바위에 새겨져 있고, 그 뒤로 커다란 너럭바위가 펼쳐져 있다. 앉아 쉬기에 좋은 바위다. 이 바위에서는 태안군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야트막한 산이지만 태안의 아름다운 정경을 조망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한편 이곳에는 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고려 충렬왕 13년(1286년)에 쌓은 석성이다. 둘레는 619m, 높이 3.3m라고 전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부분은 거의 없다. 정상의 봉수대와 서쪽 성곽의 일부분이 풍파에도 꿋꿋이 버티고 있을 뿐이다.
백화산만큼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가 태안에는 또 있다. 몽산포영상단지가 그곳이다. 대하사극 <장길산>과 <서동요>가 촬영된 곳이다. 보통의 드라마 촬영소가 지자체의 적극적인 홍보마케팅으로 여행상품화된 반면 이곳은 아직 그런 점이 부족하다. 가는 길조차 안내가 잘 되어 있지 않아서 소문만 듣고 찾아간 여행객들을 당혹케 하기 일쑤다.
영상단지는 세계 최대의 난 재배지 오키드타운 뒤편에 있다. 시멘트포장길이 끝나고 울퉁불퉁 비포장도로를 1㎞ 정도 달려야 한다. 성문, 대감집, 초가집, 동헌 등 97동에 이르는 다양한 옛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제법 꼼꼼하게 지은 데다가 면적도 넓어서 그 시대 속으로 걸어들어간 듯한 기분이 들 정도다.
현재 이곳에서는 많은 마니아들을 낳았던 퓨전사극 <별순검> 시즌 2를 한창 촬영 중이다. 태안 여행길에 잠시 영상단지에 들른다면 촬영현장의 재미있는 모습들을 구경할 수 있다.
여행 안내
★길잡이: 서해안고속국도 서산IC→32번 국도→태안여고로터리→12시 방면 603번 지방도→태안마애삼존불 방면 우회전→태을암→백화산
★잠자리: 태안읍에서 남면 몽산포 방면으로 내려가면 몽산포파인펜션(041-672-9599), 블루베리펜션(041-672-3112) 등 깔끔하고 예쁜 펜션들이 많다.
★먹거리: 낙지의 계절 가을에는 박속밀국낙지탕을 꼭 먹어봐야 한다. 낙지탕에 박의 속살을 잘라넣고 수제비나 칼국수를 곁들여 먹는 음식이다. 이 낙지탕을 먹으려면 원북면으로 가는 게 좋다. 태안여고 로터리에서 원북 쪽으로 10분쯤 가다보면 하나로마트 건너편에 원이식관(041-672-5052)이 있다. 이곳 주인이 박속밀국낙지탕을 처음 시작한 사람이라고 한다. 박속을 넣은 국물이 시원하다. 낙지를 다 먹고 난 후에는 다시 칼국수와 수제비를 넣어 끓여 먹는다.
★문의: 태안군청(http://www. taean.go.kr) 041-670-2114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