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림을 방불케하는 곶자왈. | ||
지난해 6월 말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정확히 한라산국립공원과 성산일출봉, 거문오름 용암동굴계가 거기에 포함된다. 그중에서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는 제주의 대표적인 동굴들이 대거 포함된 중요한 지역이다. 이곳에는 벵뒤굴과 만장굴, 김녕굴, 용천굴, 당처물굴 등 5개의 동굴이 있다. 이들 동굴을 형성시킨 용암을 분출한 것이 바로 거문오름이다.
오름은 흔히들 기생화산을 이르는 제주도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라산 고지의 윗세오름, 방애오름, 장구목오름 등을 제외한다면 나머지는 독립적인 화산활동을 통해 형성된 단성화산(한 번의 분화활동으로 생성된 화산)으로 보는 견해가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오름이라는 단어도 ‘오르다’의 명사형으로 단정 짓곤 하는데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산을 의미하는 몽골어 오로(oro) 또는 오론(oron)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대천동에서 제주시 봉개동 방면으로 이어진 번영로 우측에 자리한 거문오름은 동굴들 말고도 곶자왈로 주목을 받는다. 곶자왈은 ‘점성이 높은 용암이 흐르면서 만들어낸 지대에 형성된 숲’을 이르는 제주도말이다. 제주에는 이런 곶자왈이 한경, 애월, 조천, 구좌 등 크게 네 군데 분포하고 있는데 제주도 면적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넓다. 곶자왈은 한겨울에도 푸른 숲을 유지하면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제주의 공기를 항상 맑게 해주는 고마운 곳이다.
거문오름 곶자왈은 거문오름에서 분출된 용암류가 선흘마을의 동백동산까지 1~2㎞의 폭을 유지하면서 7㎞ 길이로 흘러내려 형성됐다. 이곳 곶자왈 지대는 워낙 토양의 영양이 풍부하고 물이 마르지 않아 식물이 자라기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 그런 탓에 거문오름 곶자왈은 일반 숲이라기보다 밀림에 가깝다.
▲ ① 억새에 기생해 사는 식물 ‘야고’. 지금 이 시기에만 꽃을 피운다. ② 열매가 맺힌 천남성. 옥수수 같은 열매는 시간이 지날수록 빨갛게 익어간다. 줄기는 약으로 쓰지만 열매는 사약의 재료로 이용됐다. ③ 도깨비방망이처럼 생긴 엄나무. 이렇게 큰 엄나무가 자생하는 | ||
또한 예전에는 누구나 언제든지 거문오름 트레킹을 즐길 수 있었지만 요즘엔 사전예약탐방제가 실시되고 있다. 무분별한 곶자왈 입장으로 식생이 파괴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탐방예정일 이틀 전에는 거문오름트레킹조직위원회(064-750-2514)에 신청해야 한다. 선흘2리 주민 5명과 제주참여환경연대 자원봉사자 5명이 트레커들을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거문오름과 곶자왈을 둘러보는 데는 총 3시간이 걸린다. 쉬지 않고 걷는다면 1시간 30분이면 족한 거리다. 하지만 곳곳에 자리한 거문오름 곶자왈의 특징적 장소들을 둘러보다 보면 시간이 훌쩍이다.
거문오름 정상까지 오르는 데엔 힘들 게 없다. 표고 112m로 출발지에서 약 40분이면 정상에 도착한다. 오름은 우거진 숲지대지만 기슭은 초원지대다. 억새들이 들판에 가득하다. 억새 사이로 남보라색 초롱 모양의 꽃들이 보이는데 ‘야고’라고 불리는 식물이다. 억새에 자생하는 식물로 요즘이 한창 꽃을 피울 시기다.
초원지대를 지나면 삼나무숲길이 이어지고 곧 깔딱고개가 나온다. 해설사는 “1분 사우나 코스”라고 말한다. 겨우 1분 남짓이면 오를 수 있는 급경사다. 이 고개를 넘으면 일본군 갱도진지에 이른다. 태평양전쟁 당시 조성한 것이다. 갱도는 약 1.5m 넓이에 10~15m 깊이로 되어 있다. 거문오름에는 10여 개의 갱도진지가 있다. 일본군이 제주도를 전쟁의 최후방기지로 삼았던 현장이다. 6000여 명의 일본군이 이곳 갱도에서 생활을 했다고 하는데 그 규모로 볼 때 다소 부풀려진 것으로 보인다. 그보다 군수품을 보관했던 곳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갱도진지 부근에서는 거문오름의 분화구 형태가 또렷이 보인다. 오름은 대부분 분화구를 가지고 있는데 원형과 말발굽형이 많다. 거문오름은 한쪽이 말밥굽처럼 트인 형태다.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1분 거리다. 북서쪽으로 조천 앞 바다가 보이고, 북동쪽으로는 안돌오름, 밭돌오름, 새미오름, 높은오름, 다랑쉬오름, 비치미오름, 개오름 등이 올망졸망 모여 있다. 그 이색적인 풍경에서 좀처럼 눈을 뗄 수 없다.
곶자왈을 걷기 위해서는 정상에서 내려가 분화구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진정한 트레킹의 시작이다. 오름을 내려와야 비로소 거문오름트레킹이 시작된다는 점이 참 재미있다.
곶자왈만 도는데 약 2시간이 걸린다. 곶자왈은 토양보다 용암이 흐르면서 생긴 자갈과 암석덩어리들이 더 많다. 나무와 풀들은 땅이 아닌 돌 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다른 곳이라면 말라죽을 테지만 이곳에서는 나무들이 쑥쑥 잘도 자란다.
곶자왈 초입의 용암협곡을 지나면 식나무와 붓순나무군락을 만나게 되는데 관상수로 사랑받는 희귀식물들이다. 이 군락을 지나면 숯가마터다. 현무암을 둥그렇게 쌓아올려 만든 가마로 오른쪽에는 숯 만드는 사람이 살았던 움막터가 있다. 제주도에서는 숯 만드는 것을 금지해왔지만 거문오름은 특별히 관이 허락한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구지뽕나무 등의 가시나무 종류의 나무를 태워 숯을 만들었는데 대부분 서울로 공출되었다.
거문오름 곶자왈은 양치식물의 보고이기도 하다. 곶자왈을 걷다보면 다양한 양치식물들을 볼 수 있다. 이곳에는 무려 10과 28속 49분류군의 양치식물이 있다. 주름고사리, 지느러미고사리, 쇠고사리, 일색고사리, 천남성 등이 흔하다.
쉬엄쉬엄 곶자왈을 돌아나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들러봐야 할 곳이 있다. 바로 수직동굴이다. 탐방로에서 잠시 왼쪽으로 벗어나 20m쯤 내려가면 수직동굴이 있다. 깊이 약 40m의 동굴로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현재는 입구를 철문으로 막아놓았는데 4·3사건 당시 많은 제주민들이 폭도로 몰려 이곳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그들의 원혼이 떠도는 듯 동굴 안은 항상 희부옇다.
★길잡이: 제주공항→시청 방면 1132번 도로→국립제주박물관 앞 사거리에서 우회전→97번 도로(번영로)→봉개→도깨비공원→선흘 방면 좌회전→700m 직진→거문오름
★잠자리: 거문오름에서 제주시 방면 97번 도로를 타고 5분쯤 올라가다보면 황토마을이라는 펜션이 있다. 황토로 지은 스머프집 같은 펜션단지다. 숯과 10여 종의 약초 등을 이용한 찜질방시설이 있다. 064-782-9000
★먹거리: 거문오름 주변에는 식당이 없다. 30분쯤 차를 타고 제주시나 서귀포시로 이동해 식사를 해결하는 것이 아무래도 좋다. 제주도는 고기국수가 별미다. 제주시 삼성혈 인근에 ‘삼대국수회관’(064-759-6644)이 있다. 멸치를 우려 육수를 만들고 삶은 토종 제주흑돼지 오겹살을 크게 썰어 국수 위에 올려 먹는 음식이다. 생각보다 담백하고 구수하다. 회를 맛보고 싶다면 서귀포 천지연폭포 근처에 있는 ‘쌍둥이횟집’(064-762-0478)을 추천한다. 전복, 소라, 문어, 성게 등의 해물이 다양하고 싱싱하다.
★문의: 거문오름 트레킹 조직위원회 064-750-2514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