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흘림골에서 약 1시간 동안 설악산을 오르면 등선대에 도착한다. 등선대에서 바라본 단풍 든 설악산의 모습이 가히 장관이다. | ||
설악으로 길을 잡는다. 이미 지난 9월 29일 첫 단풍이 든 설악이 이번 주 최고의 색깔을 뽐낼 것이기 때문이다. 다 가고 또 다 아는 설악. ‘단풍 찾아 떠나는 길, 뭐 특별할 게 있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곳에 우리를 취하게 할 ‘흘림골’이 있다.
흘림골은 44번 국도를 타고 강원도 홍천에서 인제를 넘어 양양으로 가는 남설악지구 내에 있다. 한계령 너머 약 2.5㎞ 지점이 흘림골 입구다.
흘림골은 1985년 이후 20년 동안 자연휴식년지대로 지정되면서 등산이 불가능했던 곳이다. 사람들의 무단 벌목 등으로 인해 훼손됐던 흘림골은 세월이라는 처방약을 조제 받고나서 서서히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이젠 됐다 싶어 흘림골은 2006년 개방되었다. 하지만 일렀나보다. 자연이 화를 냈다. 2006년과 2007년 연속된 물난리로 흘림골은 초토화됐다. 나무들이 부러지고 바위덩어리들이 계곡 한가운데로 굴러다녔다. 그리고 그 아픈 시간으로부터 다시 1년이 지났다. 계곡을 정비하고 등산로를 다시 열었다. 따지고 보면 1985년 이후 최초의 흘림골 단풍산행이 시작된 것이다.
흘림골에서부터 시작하는 등산로는 등선대와 주전골을 거쳐 오색으로 이어진다. 총 연장 6.2㎞의 거리다. 바삐 걸으면 3시간, 단풍에 취해 비틀거리다 보면 네댓 시간은 훌쩍 넘기는 거리다.
솔직히 말하자면 미안해진다. 시쳇말로 ‘날로 먹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흘림골 등산을 하게 되면 기암으로 점철된 설악의 능선과 그 틈에서 피어나는 단풍을 거저 본다는 미안함이 들게 마련이다. 그만큼 흘림골 코스는 등산이라기보다 트레킹에 가깝다. 등선대까지 넉넉잡고 1시간 오르막이 이어지고, 그 다음부터는 계속 내리막이다.
뱀처럼 구불구불 이어진 44번 국도를 타고 한계령을 넘는데 이 고개의 단풍은 끝물로 가고 있다. 정상 부근은 단풍이 마지막 빛을 다하고 중력을 이기지 못해 지상으로의 낙하를 서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한계령 너머 흘림골은 이번 주가 절정이다.
계단길을 따라 흘림골로 들어선다. 노랗게 타들어가기 전의 연둣빛 잎에서부터 샛노란 것, 누렇게 퇴색된 것, 산뜻한 선홍으로 물든 것, 핏빛처럼 진한 다홍으로 접어든 것…. 시작부터 눈을 떼지 못 하게 만드는 단풍의 연속이다.
▲ 설악산 단풍산행을 즐기는 사람들. 오래 걸어도 힘든 줄 모르는 게 단풍산행이다. 아래는 등선대에서 1시간가량 내려오면 만나는 용소폭포. | ||
등선대는 남설악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이다. 높이 1002m인 등선대의 정상에는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전망대에 서면 오른쪽으로 한계령과 서북주능선이 좌르르 펼쳐져 있고, 정면에는 무수히 많은 기암들이 성난 듯 하늘을 향해 뾰족 솟아 있다. ‘만물상’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다. 특히 이 계절, 만물상 주변은 단풍으로 인해 더욱 기막힌 풍경을 선사한다. 마치 기암 사이사이 붉은 꽃이 핀 것처럼, 혹은 두터우면서도 붉은 양탄자 위로 바위가 뚫고나온 것처럼 보인다.
등선대와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다시 하산 길을 잡는다. 오색까지는 약 5㎞. 그러나 거리는 풍경의 감동에 묻히고, 그저 감탄사를 연발하며 걷다보면 목적지에 이른다.
등선대와 오색 사이에는 폭포가 여럿 있다. 등선대에서 15분 정도 내려가면 등선폭포가 나오고 다시 30분쯤 가면 십이폭포에 닿는다. 또 거기서부터 다시 15분이면 용소폭포다. 그중 물줄기가 열두 굽이나 굽이치며 쏟아진다는 십이폭포나 높이는 약 5m에 불과하지만 폭포머리의 반석이 매력적인 용소폭포는 수량이 그럭저럭 풍부한 편이다. 그러나 등선폭포의 경우는 말라비틀어진 채 물줄기의 흔적만 남아 있다.
용소폭포 입구에서부터 주전골이 시작되는데 오색까지는 3㎞가량 된다. 주전골은 용소폭포 입구의 바위가 엽전을 쌓아 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도적들이 엽전을 주조하던 곳이어서 그런 이름이 생겼다고도 한다.
내려오는 길에는 통일신라시대의 3층석탑이 남아 있는 성국사라는 자그마한 사찰을 지나게 된다. 절 마당에 오색약수라고 해서 물이 나는데 등산코스의 마지막에 있는 그 오색약수와는 물맛이 다르다. 아래쪽 약수가 다량 함유된 철분 때문에 비릿하면서도 쏘는 맛이 있는 반면 성국사의 약수는 보통의 물맛이다. 하지만 어느 약수건 단풍산행의 피로회복제로는 전혀 손색이 없다.
★길잡이: 구리시→6번 국도→양평→44번 국도→홍천→인제→한계령→흘림골
★먹거리: 오색약수 관광단지 쪽에 음식점이 많다. 산채백반이 주 메뉴다. 설악산과 점봉산 등지에서 채취한 산나물과 돌솥밥, 구수한 된장국을 곁들인 한상차림이 푸짐하다. 그중에서도 오색식당(033-672-3180), 남설악식당(033-672-3159)을 추천한다. 특히 남설악식당은 1987년 농촌진흥청에서 실시한 향토요리 품평회에서 산채정식으로 1등을 차지한 집이다.
★잠자리: 오색약수 쪽에 오색그린야드호텔(033-672-8020), 약수온천장(033-672-3156) 등의 숙박시설이 있다.
★문의: 설악산국립공원(http://seorak.knps.or.kr) 033-636-7700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