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흥산성에서 바라본 해거름은 하늘의 붉은 기운이 오래도록 머문다. 풍경 안은 성흥산성 유금필 장군 사당 주변의 단풍. | ||
흔히 ‘부여’ 하면 부소산성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부소산성이 백제를 대표하는 산성이긴 하다. 하지만 부여에는 그 말고도 청마산성을 비롯해 석성산성, 증산성, 성흥산성 등 산성들이 많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들 산성 중에서도 성흥산성은 부소산성에 견주어도 결코 모자람이 없다.
성흥산성은 백마강 하류 임천면 지역에 쌓은 토석혼축성(돌과 흙으로 쌓은 성)이다. 산 정상부를 감싼 형태의 성(테뫼식 성)으로 자연스레 산의 이름을 따서 성흥산성이 되었다. <삼국사기>에 백제 동성왕 23년(501년)에 위사좌평 백가가 성을 쌓았다고 전한다. 성흥산성을 가림성이라고도 하는데 당시 이곳이 가림군이었기 때문이다.
따지자면 이 성은 백제가 성왕 시절 사비(부여)로 천도한 538년보다 30년 이상 먼저 지어진 것이다. 천도 전에 완성됐다는 사실에 비추어 이 성은 웅진(공주)으로 침투하는 적을 막기 위한 배후 방어선의 기능을 담당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후 백제가 거의 패망에 이르렀을 때, 이 성은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세월의 파편에 상처 입은 성흥산성 내에는 현재 우물 3개소와 군창지로 추정되는 건물지 등이 남아 있다. 성은 그리 큰 규모는 아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성의 둘레가 1500m이고, 성벽의 높이는 3~4m 정도다. 둘레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30분 남짓이다. 그러나 정확한 시간을 담보할 수는 없다. 사실 성흥산성으로 발길을 잡은 이유는 따로 있기 때문이다.
산성이 자리한 성흥산은 해발 고도가 겨우 268m에 불과하다. 하지만 주변에 높은 산이 없는 탓에 시야에 막힘이 없어 부여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멀리 강경까지 눈길이 닿기도 한다. 조망에 있어서라면 부여 일대에서 이곳보다 좋은 곳이 드물다.
산성의 입구는 남문지다. 돌계단을 따라 50m쯤 올라가면 남문지를 거쳐 성벽 위에 서게 된다. 남문지는 성루나 성문이 남아 있지 않지만 4m 넓이의 초석은 그대로 있다. 남문지에는 특별한 풍경을 완성하는 느티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수령 400년으로 추정되는 이 나무의 별칭은 ‘사랑나무’다. 드라마 <서동요> 방영 이후 장이와 선화공주의 사랑을 상징하는 나무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 성흥산성 남문지 입구의 산세가 뛰어나다.(왼쪽) 석조미륵보살입상으로 유명한 대조사. | ||
남문지에서 성곽을 따라 돌기 전에 중앙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보자. 이곳에는 유금필 장군 사당과 성흥루, 봉화제단 등이 있다. 사당에는 고려의 개국공신인 유금필 장군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유금필 장군은 황해도 평주 사람으로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큰 공을 세웠고, 이 지역민들을 위해 선정을 베푼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당은 그를 위해 임천 백성들이 세운 것으로 해마다 제사를 올려왔다.
성흥루는 유금필 사당 바로 위에 있는 2층 높이의 팔각정자인데 주변이 숲에 가로막혀 있어 조망은 별로 좋지 않다. 다만 사당에서 성흥루, 봉화제단에 이르는 길은 막바지 가을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는 코스다. 백제의 패잔병처럼 단풍이 군데군데 남아 있고, 단풍이 진 자리에는 낙엽이 소복이 쌓여 있다. 특히 낙엽은 이불을 깔아놓은 것처럼 폭신해서 자꾸만 그 길을 걷고 싶게 만든다. 성곽 트레킹은 그다지 경사 진 곳이 없어서 약간은 밋밋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서문 쪽으로는 낭떠러지 같은 성곽을 따라 구불구불 도는 길이 인상적이다.
성흥산성 트레킹을 마친 후 내려가는 길에는 대조사에 들를 것을 권한다. 성흥산성 바로 아래에 있는 대조사는 성왕 10년(532년)에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성왕이 사비로 천도할 것을 미리 알고 이곳에 사찰을 세웠다고 전한다. 대조사라는 명칭은 원래 같은 자리에 있던 암자의 노승이 꿈에 ‘커다란 새’를 보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원통보전 등의 건물이 있지만 이 절의 주인공은 보물 제217호로 지정된 석조미륵보살입상이다. 원통보전 뒤편에 동쪽을 바라보며 서 있는 거대한 석불이다. 높이 10m의 이 석불은 해가 떠오르면 햇빛을 받아 기묘한 표정을 짓는다.
석불은 머리에 네모난 관을 쓰고 있으며 얼굴이 4각형으로 넓적하다. 귀, 눈, 코 등을 모두 작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조각기법은 그리 세련되지 않은 모습이다. 파주 용미리석불, 논산 관촉사석불 등과 거의 비슷한 형태다. 이들 거대 석불입상들은 고려 초기 건국의 기운을 북돋기 위해 조성된 것들이다.
한편 성흥산성 여행길에는 장하리3층석탑과 능산리고분군 등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보물 제184호로 지정된 장하리3층석탑은 기단 위에 탑신을 올린 정림사지5층석탑의 양식을 따랐다. 성흥산성에서 611번 지방도를 따라 백마강 방면으로 10분 거리에 있다. 능산리 고분군은 서논산IC 방향 4번 국도변에 있다. 백제금동대향로가 출토된 능산리사지가 고분군 곁에 있다.
★길잡이: 천안-논산 간 고속국도 남공주IC→40번 국도→부여읍→29번 국도(좌회전)→611번 지방도(좌회전)→성흥산성(대조사)
★먹거리: 구드래 나루터에 자리한 나루터식당(041-835-3155)을 추천한다. 백마강에서 잡은 민물고기매운탕과 모래무지조림, 장어구이를 잘 하기로 소문난 집이다. 만수산 무량사 앞에 있는 삼호식당(041-836-5038)은 산채비빔밥이 유명하다.
★잠자리: 아무래도 부여읍내로 이동하는 것이 좋다. 군청 주변에 VIP모텔(041-832-3700), 미라보모텔(041-835-9988) 등 깨끗한 모텔들이 많다.
★문의: 부여군청 문화관광포털(http://www.buyeotour.net) 문화관광과 041-830-2252~5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