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천곡항의 해오름 풍경. 오징어잡이 배가 돌아올 때면 갈매기들이 한바탕 소란을 피운다. 작은 사진은 바다와 나란히 달리는 바다열차. (아래)수북하게 쌓인 눈이 겨울 풍취를 더해주는 한섬해수욕장. | ||
천곡항은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해돋이 숨은 명소다. 사실, 천곡항은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동해항에서 묵호항 방면으로 올라가다 보면 그 중간쯤에 ‘천곡항’이라고 조그맣게 적힌 이정표가 나오는데 자칫 지나치기가 쉽다. ‘○○m 전방 천곡항’이 아니라 난데없이 바로 ‘천곡항’이라고만 적혀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대개 두 가지다. 너무 유명하거나 아니면 아주 무명이거나. 천곡항은 후자다.
어쨌든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우회전하자 굴다리가 나온다. 위로 덜컹거리며 기차가 달린다. 굴다리를 지나니 바다를 바라보는 카페가 있다. 천곡항인가. 그렇지 않다. 이곳은 한섬해수욕장이다.
상시 개방하지는 않는 간이해수욕장의 특성상, 해수욕장 출입로가 따로 있고 그곳에 철문이 달려 있다. 하지만 문은 거의 열려 있다. 해수욕장은 백사장의 길이가 300m쯤 된다. 폭은 50m 정도. 동해의 거친 파도가 쉴 새 없이 백사장의 모래를 쓸어 가고, 또 실어다 놓는다. 비록 작은 해수욕장이지만 풍취만큼은 대단하다. 살짝 굽은 칼처럼 백사장이 안쪽으로 휘어져 있고 양 끝에는 바위 절벽이 자리하고 있다.
어떻게 자리를 잡았는지 그 벼랑에는 강태공들이 새벽부터 줄기차게 낚싯대를 바다에 던지고 있다. 특히 왼쪽에 있는 한섬 근처에 강태공들이 몰려 있는데 ‘꾼’들 사이에는 조황이 좋기로 소문이 난 곳이라고 한다. 벼랑이 바다 아래로 뿌리를 박은 탓에 수중 지형이 발달해 수생 동식물이 살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 바다와 나란히 달리는 바다열차. | ||
천천히 숲길을 따라 가면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오는데 이 길을 지나면 바로 천곡항이다. 그러나 항구라는데 정박한 배 한 척 없고, 눈을 씻고 봐야 항구의 이미지를 찾을 수가 없다. 다만 바위 벼랑을 돌아가는 방파제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평화로운 어촌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었던 마음이 산산이 부서진다. 그러나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비록 머리에 그렸던 모습은 아니지만 다시 둘러보니 천곡항이 품고 있는 풍경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왼쪽에 서 있는 기암으로 쉴 새 없이 파도가 부딪히며 하얀 포말을 일으키고 새벽부터 갈매기들이 끼룩대며 하늘을 떠돈다. 그 기암 너머로는 멀리 등대 하나가 반짝이며 점멸한다.
해오름을 보다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방파제로 걸음을 옮기면 바다 위에서 오징어잡이배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불을 밝힌 채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하늘과 바다 사이에는 붉은색 띠가 점점 더 강렬해지며 태양이 곧 떠오를 것임을 예고한다. 그리고 하늘이 밝아지며 이윽고 떠오르는 태양, 옅게 깔린 해무 위로 빠끔히 머리를 내미는가 싶더니 그 뜨거운 불덩이가 순식간에 하늘 위로 솟아오른다.
사위가 밝아지자 간밤 바다에서 작업을 고된 작업을 하던 배들도 하나둘씩 저마다 집을 찾아 귀항을 한다. 갈매기들은 때를 기다렸다는 듯 그 배들 주변으로 달려든다. 천곡항의 그림 같은 해오름은 그렇게 완성된다.
▲ 천곡항 기암(위). 아래는 정동진 선셋크루즈가 연출하는 야경. | ||
해안선과 함께 달리는 7번 국도 드라이브가 일반적이지만 날이 날이니만큼 밀리지 않을 리가 없다. 어쩐다? 물론 방법이 있다. 자동차를 두고, 열차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것도 보통 열차가 아니다. 동해 바다 감상을 위해 맞춤형으로 제작된 바다열차다.
2007년 7월부터 운행되기 시작한 바다열차는 삼척역에서 동해를 거쳐 강릉역까지 총 58㎞ 구간을 운행한다. 삼척역-삼척해변역-추암역-동해역-정동진역-강릉역을 통일호 보다 더 느린 속도로 달린다. 총 1시간 20분이 걸리는데 평소라면 불평 깨나 쏟아냈을 속도지만 바다열차를 타고 달리다보면 그 속도마저도 너무 빠르게 느껴진다. 천곡항에서 바다열차를 타기 위해 삼척역까지 자동차를 이용해 가는 데는 20분쯤 걸린다.
바다열차는 좌석이 특이하다. 정면을 바라보는 것이 없고 모두 창 측을 향하고 있다. 총 3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2호차는 특실, 3호차는 일반실이다. 각각 30석, 36석, 42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특실에는 프러포즈룸과 휴게석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프러포즈룸은 가격이 다소 비싸지만 낭만적인 사랑고백을 위한 연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프러포즈룸을 이용하는 승객에게는 와인과 초콜릿, 포토서비스가 무료로 제공된다.
오전 8시 40분부터 삼척역을 출발하는 것으로 바다열차의 운행이 시작되는데 1월 1일에는 해돋이행사 관계로 이 시각의 열차와 강릉에서 삼척으로 향하는 10시 30분 열차가 쉰다.
한편 바다열차를 이용해 동해바다의 아름다움을 실컷 맛보고 난 후에는 저녁 무렵 정동진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도록 하자. 해오름 여행지인 정동진은 밤에도 아름답다. 아침과 달리 사람들이 없어 여유로운 정동진에서 기다란 해변을 걷는 맛이 좋다. 또한 언덕 위에 앉아 있는 커다란 유람선 선셋크루즈가 불을 밝히면 그 야경이 기가 막히다.
::여행안내::
★길잡이: 영동고속국도 강릉분기점→동해IC→강릉 방면 7번 국도(좌회전)→천곡로→천곡항.
★먹거리: 오징어가 제철이다. 동해 묵호항 인근에 오징어물회로 이름 난 부흥횟집(033-531-5209)이 있다. 이 집의 오징어물회에 오징어만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가늘게 채 썬 오징어 사이에 다양한 제철 생선회가 섞여 있다. 초고추장을 넣은 후 물을 부어 그냥 후루룩 들이키거나 밥을 말아 먹어도 맛있다.
★잠자리: 망상해수욕장 인근에 하늘바다펜션(033-533-7241)이 있다. 최근 지어진 펜션으로 무척 깔끔하다. 어달해수욕장 앞에는 바다가 바로 보이는 바다사랑펜션(033-535-1829)이 있다.
★문의: 동해시 문화관광포털(http://dhtour.go.kr) 033-533-3011, 바다열차(http://www.seatrain.co.kr) 033-573-5473~4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