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사 동백을 만나러 가기 전에 들러야 할 곳이 있다. 강진다원이다. 월출산 바로 아래 자리한 다원이다. 이곳에 다원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사실, 강진은 차와 연관이 많은 곳이다. 한국 최초로 시판된 ‘백운옥판차’가 강진에서 만들어졌다. 다산 정약용과 초의선사가 만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곳이 강진 백운동이었다. 강진다원은 그 백운동과 머지않은 성전면 월남리에 자리하고 있다. 강진다원은 1980년대부터 이곳 월남리 일대에 조성된 것이다. 기껏해야 조그만 다원이겠지 생각하면 오산이다. 무려 27만여 평에 이르는 월출산 자락에 다원이 넓게 분포돼 있다.
다원이라고 하면 보성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보성의 다원은 유려한 곡선미를 뽐낸다. 반면 강진의 다원은 보성과는 대비되는 미학을 선보인다. 곡선이 아닌 직선의 단순함이다. 보성의 녹차밭이 마치 물결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면, 강진의 것은 가래떡을 늘어놓은 듯 가지런히 정돈돼 있다.
강진다원은 새벽을 틈타 둘러보는 것이 좋다. 해오름의 풍경이 기가 막히기 때문이다. 전망대가 마련돼 있는데 그 왼쪽 하늘에서 해오름이 시작된다. 해가 떠오르면서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다원의 선들이 일제히 되살아나고, 차나무는 이제 막 순을 올리며 초록의 싱그러움을 흩뿌린다. 촉촉한 이슬을 머금은 차밭을 산책하노라면 찌뿌드드했던 몸과 상념 가득했던 마음이 정화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 새벽의 강진다원. 보성의 다원이 부드러운 곡선미를 자랑한다면 이곳의 다원은 단순한 직선의 미학을 보여준다. | ||
동백 만발한 백련사는 강진다원에서 약 30분 거리의 강진만 안쪽에 있다. 강진이 여행지로 소문이 덜 난 탓일까. 백련사로 ‘동백유람’을 오는 이들은 많지 않다.
백련사는 신라 문성왕 1년(839년) 창건된 절로 해남 대흥사의 말사다. 절은 그다지 큰 편이 아니다. 2층 누각의 만경루를 지나면 대웅전이 마주하고 그 좌우로 시왕전, 나한전, 칠성각 등이 자리하고 있다. 만경루 아래에는 찻집이 하나 있다. 만경다설이라는 이름의 전통찻집이다. 오전 9시에 열어서 오후 7시에 문을 닫는다. 대여섯 평 남짓의 좁은 공간. 통유리창이 눈을 멀게 할 정도로 햇빛이 부서지는 강진만을 향해 나 있다. 별 생각이 없던 이도 문득 안에 들어가 차 한 잔 마시며 그 풍경에 취하고 싶어진다.
백련사 동백숲은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돼 있다. 백련사 주변이 온통 동백인데 무려 1만 3000평의 대지에 7000여 그루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한마디로 동백 숲속에 절이 좌정한 꼴이다.
입구 주차장에서부터 동백숲은 시작된다. 백련사까지는 200m가량 된다. 편편한 황톳길이다. 좌우로 높이가 5m도 넘는 동백나무들이 무수하다. 숲 바닥에는 떨어진 꽃송이들이 가득해 융단을 이루고, 나무에는 따뜻한 해풍을 받아가며 망울을 터뜨리는 꽃들, 한창을 뽐내며 떨어질 날을 기다리는 꽃들이 별처럼 박혀 있다. 어떤 꽃이든 떨어지고 나면 추해 보이는 법. 그러나 동백은 말라 비틀어졌거나 썩어 문드러졌더라도 추하다는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는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한 붉은 심장 같은 꽃. 지는 모습도 그저 불쌍하고 애처롭다는 생각뿐이다.
▲ 다산초당. 앞마당에는 다조라 불리는 큰 바위가 있다. | ||
부도밭 왼쪽에는 다산초당으로 통하는 길이 있다. 다산초당은 만덕산 깃대봉을 사이에 두고 백련사와 800m쯤 떨어져 있다. 그래서 다산초당으로 가려면 산을 넘어야 한다. 겁먹을 필요까지는 없다. 산이라고 해봐야 408m로 그다지 높지 않다. 게다가 백련사와 다산초당이 모두 산중턱에 걸터앉아 있기 때문에 오를 때도 힘에 부치지 않는다.
깃대봉삼거리 능선까지 200m가량 오르막길을 걸으면, 그 이후로는 평탄하거나 내리막이다. 다산초당까지는 15분쯤 걸린다. 숲은 동백나무가 아니라 참나무와 소나무, 대나무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다산초당은 1808년부터 1818년까지 10년 동안 다산 정약용이 거처로 삼은 곳이다. 저술에 필요한 2000여 권의 책을 갖추고 기거하며 손님을 맞았던 ‘동암’이라는 서재 겸 응접실이 초당 오른쪽에 있고 왼쪽에는 다산이 유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 ‘丁石’(정석)이라고 새긴 바위가 있다. ‘丁’은 다산의 성을 의미한다. 다산의 바위, 다산이 머물던 흔적 서린 바위쯤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초당 앞에는 ‘다조’라고 불리는 크고 널따란 바위가 있다. 다산이 이곳에 유배오기 전부터 있던 돌로 원래 차 달이는 부뚜막으로 쓰던 것이다. 다산은 이 바위에서 계곡의 물을 떠다가 숯불을 피워 찻물을 데웠다고 한다.
한편 다산초당 바로 옆에는 ‘천일각’이라는 이름의 정자가 하나 있다. 다산의 유배시절에 지은 건물은 아니다. 천일각은 ‘하늘 끝 한 모퉁이’라는 뜻의 ‘천애일각’(天涯一閣)을 줄인 이름이라 한다. 1975년 강진군에서 세운 것으로 강진만을 내려다보는 전망대로 아주 좋다.
[여행안내]
★길잡이: 서해안고속국도 목포나들목→2번 국도→남포교차로→18번 국도→호산삼거리에서 좌측길→백련사 ★먹거리: 강진읍 남성리 버스터미널 부근에 강진을 대표하는 두 개의 한정식집이 있다. 하나는 명동식당(061-433-2147)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해태식당(061-434-2486)이다. 강진만에서 잡은 싱싱한 해산물과 떡갈비 등 육고기를 비롯해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다양한 요리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만든다. ★잠자리: 다산초당 아래쪽에 다산농원민박(061-432-0096)과 다산촌민박(061-433-5555)이 있다. ★문의: 강진군청 문화관광포털(http://gangjin.go.kr/tour), 문화관광과 061-430-3174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