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화와 산수유꽃이 흐드러지게 핀 구담마을. | ||
구담마을은 숨어 있는 매화여행지다. 광양 다압면 매화마을이나 해남 산이면의 보해매실농원에 비해 구담마을은 입소문을 덜 탔다. 봄꽃놀이를 떠날라치면 호젓함을 일찌감치 포기해야 하지만, 구담마을은 그러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곳이다.
임실에서 순창 동계 방면으로 이어지는 717번 군도를 타고 달리다보면 우측으로 천담교가 나오는데, 이 다리를 건넌 후 좌회전 해 2㎞가량 더 가면 구담마을이 나온다. 길은 섬진강을 따라 흐른다. 마을과 가까워지면 매화나무들이 하나둘씩 길가에 보이고, 달콤한 꽃향기가 코를 간질인다. 이것은 맛보기에 불과하다. 단
지 이곳이 매화마을임을 알리는 이정표에 불과할 뿐,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온통 매화밭.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의 짙은 꽃향기가 사방에 가득하다.
구담마을은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10여 년 전 개봉된 이 영화는 한국전쟁 전후를 시대배경으로 하는데, 동양화 같은 여백미로 시선을 사로잡았던 강변 신이 순창의 장구목과 구담마을 일대에서 촬영됐다.
마을은 아주 작다. 30여 채의 가옥이 있지만 그중 사람이 사는 곳은 13채에 불과하다. 주민은 30명 정도. 대부분 노인들이다. “돈 벌믄 돌아들 와서 산다는디, 글쎄? 돈 못 벌믄 돌아들 오것제.” 혼자서 집을 지키고 있던 한 노파는 툇마루에서 햇빛을 즐기며 “젊은 사람들이 다 떠나고 없다”고 했다.
▲ 구담마을에는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아직도 지게를 지고 짐을 나르는 등 옛 모습을 볼 수 있다. | ||
구담마을 앞으로는 섬진강이 유유히 흐른다. 마을회관 오른쪽에 전망대가 설치돼 있는데 이곳에 서면 흐드러진 매화군락 뒤로 은빛 찬란한 섬진강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구담마을은 마음이 참 편안해지는 곳이다. 매화꽃산책로가 섬진강가로 이어지는데 정겨운 고샅길(시골 마을의 좁은 골목길)이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좁은 길 왼편으론 허름하지만 푸근하고 정겨운 집들이 있다. 기둥에는 씨옥수수와 말린 시레기, 한봉 벌집 등이 걸려 있다. 길가에는 들꽃들이 만발했다.
비탈의 손바닥만 한 밭들을 빌려 심은 매화나무들은 대부분 하얀꽃을 피워낸다. 그러나 간혹 홍매화가 섞여 도드라진다. 마치 곱게 분 바른 볼에 찍은 곤지처럼 유난히 튀는 홍매화다. 콘크리트길은 강변으로 내려가면서 흙길로 바뀐다. 강변엔 너럭바위들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다. 수십 명이 함께 앉아 쉬어도 좋을 바위들은 봄볕에 따뜻하니 달궈져 있다. 주변에는 버들강아지가 봄마실을 나왔다. 솜털 부드러운 버들강아지는 햇빛에 터질 듯 부풀어 올라 있다.
강물은 야트막하다. 속이 훤히 비치는 강물 속에 송사리와 같은 작은 민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 강을 건너는 징검다리도 있다. 댓돌 같은 편편한 바위를 징검징검 놓아 다리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폴짝폴짝 뛰면서 건너도 보고, 가위바위보를 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봄의 여유를 느끼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구담마을에는 산수유꽃도 한창이다. 산수유나무는 많지 않은 편이다. 마을 초입 왼쪽에 자리한 집 뒤편에 산수유나무 두 그루가 있다. 비어 있는 집이다. 깨진 장독대가 나뒹군다. 점묘법으로 그린 수묵화처럼 산수유꽃은 앙상한 나무 가지 여기저기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나무가 몇 그루 있다. 마을 뒤편 산 쪽으로 솔숲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왕복 300여m에 불과한 길이다. 경사는 제법 가파른 편. 그러나 나무로 계단을 놓아 걷기에 불편함이 없다. 산책로가 시작되는 부근의 오른쪽에 하늘색 슬레이트집이 보이는데 산수유꽃 그늘 속에 잠겨 있는 듯하다.
산책로 주변은 따지고 보면 숲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소나무 100여 그루가 모여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규모야 어찌 됐든 아주 운치 있는 길임에는 분명하다. 소나무는 아름드리로 무척 굵고 또한 키도 크다. 생긴 모양도 단순하게 직선으로 뻗은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구불거리는 것이 보는 재미가 있다.
산책로 중간에는 벤치를 설치해 쉴 수 있도록 배려했다. 벤치에 앉으면 소나무 사이로 구담마을과 매화밭, 그리고 섬진강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구담마을을 품고 있는 임실 여행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옥정호다. 물안개가 필 때 그 진경을 보여주는 이 호수는 사진가들의 단골 출사지다. 안개 속에 파묻힌 옥정호의 붕어섬을 담기 위해 사진가들은 새벽길을 마다 않고 임실로 달린다. 국사봉 전망대나 정상에 오르면 붕어섬의 모습이 온전히 보이는데 전망대까지는 10여 분, 정상까지도 20여 분이면 족히 도착할 수 있어 부담이 없다. 다만 요즘의 붕어섬은 그 모양이 또렷하지 않다. 오랜 가뭄 탓에 물속에 잠겨 있어야 할 부분들이 밖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사선대관광지와 가까운 곳에 있는 도화지도예마을은 도자기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전문가의 지도 아래 자신만의 도자기를 만들어 가져 갈 수 있다. 한지와 황토염색 등의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여행안내]
★길잡이: 호남고속국도→태인IC→30번 국도→강진사거리→717번 군도→천담교→구담마을 ★먹거리: 섬진강을 끼고 있는 임실은 민물고기매운탕이 유명하다. 운암대교 인근에 배가매운탕을 잘 하는 강촌식당(063-222-6322)이 있다. 섬진강에서 잡은 싱싱한 배가사리로 끓인 매운탕이 얼큰하면서도 개운하다. 새우와 각종 민물고기 우린 육수가 무척 고소하다. ★잠자리: 구담마을 인근에는 잠자리가 마뜩치 않다. 강진면으로 나가거나 차라리 옥정호가 있는 운암면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좋다. 특히 옥정호 인근에는 리베라(063-222-5023), 리버사이드(063-221-7968) 등 숙박업소가 많다. ★문의: 임실군청(http://www.imsil.go.kr) 문화관광해설사 063-640-2641
김동욱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