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재는 백두대간 이화령과 차갓재 사이에 자리한 고갯길이다. 포암산 아래 있다. 이 길은 충청북도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와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를 연결한다. 고개를 비롯해 각각의 동네 이름이 심상치 않다. 관음은 현세구복의 부처이고, 미륵은 미래에 올 부처다. 그래서 하늘재는 현재와 미래를 잇는 통로다.
또한 하늘재는 역사가 기록하는 가장 오래된 고갯길이다. 김부식이 집필한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하늘재와 관련된 기록이 보인다. 하늘재의 본래 이름은 계립령이다. 신라본기에는 아달라왕 3년(156년) 여름에 계립령 길을 열었다고 전한다. 영주와 단양을 잇는 죽령옛길이 아달라왕 5년에 개척됐으니 그보다도 2년 앞서 생긴 셈이다. 하늘재를 넘어 북으로 진출하려는 신라와 이를 견제하던 고구려·백제가 서로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 이 고개다. 고려시대에 이 길은 대원령이라 불렸다. 미륵대원에서 따온 이름이다. 고갯길 아래에 미륵사가 있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는 유추가 가능하다.
군사적으로나 사람들의 내왕길로나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던 하늘재는 문경새재가 조선 태종 14년(1414년) 태어나면서 찬밥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역사성을 인정받아 지난해 국가지정명승지에 이름을 올리면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하늘재는 하늘에 맞닿아 있다고 해서 조선시대부터 불린 이름이다. 문경의 관음리에 ‘백두대간 하늘재’ 표지석이 서 있는데 그 높이가 525m이다. 길은 3.2㎞로 십 리가 채 못 된다. 표지석이 있는 곳은 전망대로서 꽤 괜찮다. 북서로 손에 잡힐 것 같은 포암산(962m)이 떡 하니 가로 누워 있고, 남동에 걸쳐 주흘산과 봉명산, 단산 등이 능선을 엎치고 덮치며 물결을 이룬다.
새벽에 찾은 하늘재는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일교차가 제법 큰 편이라 안개의 발생 빈도가 높은 계절 탓이다. 포암산의 봉우리가 안개 속에 감춰져 있다. 포암산은 베바우산이라고 불리던 산이다. 하늘재에서 보면 동쪽의 사면이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베 조각을 이어 붙인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베바우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암릉의 색깔도 마치 베처럼 누렇다. 한 번 올라보고 싶은 유혹을 느낄 만큼 산이 잘생겼다. 암릉지대 왼쪽으로 낙락장송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가파른 절벽들이 곳곳에 솟아 있다.
▲ 하늘재의 철쭉은 진한 것이 없다. 거의 흰색에 가까운 분홍이다. 모양도 목련을 닮았다(원 안). 문경 쪽 하늘재에서 바라본 포암산의 새벽 풍경. | ||
포암산을 덮었던 안개가 고갯길에도 내렸다. 이 길은 단순히 고개를 넘는 고갯길이 아니다.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구멍이 보이지 않을 만큼 울창한 숲길이다. 동굴처럼 길은 이어져 있다.
푸릇한 안개에 젖은 숲이 더 없이 상쾌하다. 숲에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뒤섞여 있다. 상수리, 갈참, 신갈, 굴참, 떡갈, 졸참나무 등을 통칭하여 참나무라 부른다. 식물학적으로 참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쨌든 이 숲에는 참나무류들이 다양하게 뒤섞여 숲을 건강하게 지탱하고 있다.
길가에는 물봉선이며, 찔레꽃, 노란앵초 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란히 이어진 계곡의 물소리가 청량하게 들린다. 새벽을 깨우는 낯선 사람의 방문에도 새들은 놀라지 않고, 기분 좋은 지저귐으로 노래를 선사한다.
철쭉도 만발했다. 특이하게도 이곳의 철쭉은 색깔이 짙지 않다. 다홍빛 철쭉은 이곳에서 연분홍에도 미치지 못 한다. 마치 탈색된 듯 하얀빛인 것들도 있다. 키가 3~4m를 넘길 만큼 큰 데다가 잎이 다른 곳의 것들에 비해 두꺼워서 몽우리가 돌돌 말려 있는 하늘재 철쭉은 목련을 보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길은 약간 내리막이다. 경사가 급한 곳은 없다. 타박타박 걸으며 숲의 피톤치드로 한껏 매연에 찌든 폐를 씻어낸다. 새벽의 어스름이 물러나자 포암산 오른쪽 등성을 넘어온 태양이 숲 사이로 햇살을 드리운다. 빛으로 샤워를 하면서 더욱 투명하게 빛나는 이파리들. 산들바람에 사르르 수런거리며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30분쯤 걸었을까. 미륵사지를 1㎞ 남기고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두 길은 미륵사지 앞에서 다시 만난다. 오른쪽이 자연생태탐방로다. 숲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어떤 숲이 건강한지, 숲에는 어떤 생물이 살고, 어떤 꽃이 있는지…. 숲에게 던질 수 있는 다양한 질문에 대한 답을 보여주는 탐방로다.
미륵불 주변으로 오층석탑과 거북이를 닮은 바위, 일부러 깎아 놓기도 힘든 동그란 공기바위를 비롯해 절터가 잘 보존돼 있다. 절터 위쪽에는 삼층석탑과 미륵리불두가 있다. 높이 138㎝, 넓이 118㎝의 거대한 부처머리조각이다. 고려시대 지방의 불상양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눈코입이 그다지 조화롭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근감이 드는데, 우습게도 그 못생긴 외모 때문이다. 이스트섬의 거대 석상처럼 생겼다.
한편 하늘재 고갯길 기점으로 삼았던 관음리는 도요로 유명한 곳이다. 포암요, 망댕이사기요 등이 이곳에 있다. 특히 망댕이사기요 가마는 1843년 개설된 우리나라 특유의 칸 가마로 작업장과 디딜방아, 살림집 등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이번 주말까지 문경새재 1관문과 오픈세트장 일원에서는 문경 전통 찻사발축제가 열리니 이곳을 경유해 여행을 완성하면 좋을 듯하다.
>>여행 안내
★길잡이: ▶충주 방면: 중부내륙고속국도 괴산 나들목→597번 지방도→미륵사지→하늘재 ▶문경 방면: 중부내륙고속국도 문경새재 나들목→901번 지방도→갈평리에서 관음리 방면 좌측 길→포암사→하늘재 ★먹거리: 하늘재 근방에는 음식점이 없다. 충주 쪽에서는 수안보에서 월악산국립공원 쪽으로 가다보면 왼쪽에 자리한 ‘대장군식당’(043-846-1757)이 별미집이다. 꿩요리를 잘 하는 집으로 코스를 시키면 샤브샤브, 냉채, 꼬치, 불고기 등 다양한 음식이 나온다. 문경 쪽에는 문경새재 성곽 밖에 묵을 잘하는 ‘소문난식당’(054-572-2255)이 있다. 도라지무침, 느타리버섯무침, 다시마튀각, 오이소박이 등을 곁들인 청포묵조밥정식이 주 메뉴로 정갈하고 담백하다. ★잠자리: 충주 수안보에 라마다호텔(043-848-8833), 수안보산수파크)043-848-0009) 등 숙박시설이 많다. 문경에는 새재에 문경관광호텔(054-571-8001)과 관문모텔(054-571-7777) 등이 있다. ★문의: 월악산국립공원관리소 043-653-3250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