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전 대표. 캐리커처=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여야 각 잠룡들의 2009년 한 해 ‘손익계산서’를 정산해보면 과연 어떠할까. 두 번의 재보선 성적표, 이슈메이커로서의 매스컴 노출빈도, 여론조사를 통해 나타난 후보지지도 등 3개 분야로 나누어 평가해 보았다.
◇재보선 성적표
4·29, 10·28 두 번의 재보선에서 큰 수확을 거둔 잠룡으로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정세균 민주당 대표,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꼽을 수 있다. 박 전 대표는 ‘선거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재보선을 통해서 또 한 번 증명해 냈다. 지난 10월 재보선에서는 선거불개입 방침을 밝히며 ‘움직이지’ 않았지만, 4·29 재보선에서는 한나라당이 ‘5패’를 맞는 수모 속에서도 박 전 대표만은 ‘이득’을 챙겼다. 경주 지역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친박’ 정수성 후보가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친이’ 정종복 후보를 예상외의 큰 표 차로 누르면서 당내 친이계에서는 “민주당 후보에게 패한 것보다 아픔이 더 크다”라는 말까지 나왔었다. 더구나 당시 박 전 대표는 직접적인 지원도 하지 않아서 ‘손 안 대고 코푼 격’의 승리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한 정치 분석가는 “박 전 대표가 내년 지방선거에도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선거 과정에서 어떤 영향력을 발휘한다면 올해의 재·보궐선거보다 더 파급력이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두 번의 재보선 정국에서 선전하며 민주당의 침체 위기를 어느 정도 돌파해냈다는 평가다. 4·29 재보선에서는 당시 한나라당이 ‘0패’의 참패를 거둔 반면 민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 등 악재 속에서도 수도권인 인천 부평 을에서 승리하며 ‘책임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0·28 재보선에서도 수도권과 충청 지역 3곳(경기 수원 장안, 안산 상록 을, 충북 증평·진천·괴산·음성)의 의석을 모두 가져오는 선전을 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정권 심판론’ 정서가 작용하는 재보선이 야당에 유리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 대표의 ‘수훈’이 높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 바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당내에서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 대표의 한계론과 조기전대설이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정동영 의원의 복당 문제 등 해결과제도 여전히 걸림돌로 남아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여의도 정가를 떠나있는 손학규 전 지사도 재보선을 통해서 그 위력을 과시했다. 그는 춘천에 머무르며 외부 나들이를 거의 하지 않으면서도 두 번의 재보선에서는 적극적으로 나서 당을 도왔다. 특히 10·28 재보선에서 당의 전략 공천을 고사하고 ‘무명’의 이찬열 후보를 지원해 수원 장안 지역의 승리를 이끌어낸 점은 높게 평가받고 있다. 4·29 재보선에서도 그는 선거기간 내내 부평 을과 시흥시장 선거에 ‘올인’하며 민주당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승리는 정세균 대표보다 손학규 전 지사의 공”이라는 평가가 나왔을 정도. 또 그에 대해 ‘선거의 여인 박근혜’와 비견되는 ‘선거의 달인 손학규’라는 닉네임이 붙기도 했다.
무소속 정동영 의원 역시 재보선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한 케이스. 정 의원은 지난 4·29 재보선에서 신건 후보(전주 완산 갑)와 무소속 연대를 이뤄 민주당 후보들을 상대로 완승을 이끌어냈다. 정 의원은 재보선을 통해 ‘여의도’로 복귀했지만 ‘친정’인 민주당 입당 문제로 당 주류의 견제를 받고 있고, 대권가도에서 역시 ‘전북지역 맹주’라는 한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숙제를 안게 됐다.
◇ 이슈메이커 누구
박근혜 전 대표는 미디어법·세종시법 등 정가를 달구었던 주요 정치현안에 대해 이슈메이커로서 스포트라이트를 크게 받았다. 특히 세종시 문제에 대한 ‘원안+알파’ 발언은 올 한 해 정치권 최대 유행어로 평가받을 만큼 파급력이 컸다. 박 전 대표가 처음 언급한 ‘원안+알파’는 매스컴을 통해 수없이 회자되고 논의되면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한 정치분석가는 “세종시법이 박 전 대표가 원했던 애초의 ‘원안+알파’와는 거리가 있는 결론을 맺게 된다고 하더라도 대중들은 박 전 대표의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발언을 더 기억할 것이다. 말 한마디로 이슈를 만들었다는 측면에서 박 전 대표의 영향력은 대단하다”고 설명했다.
대권 잠룡 중 박 전 대표에 이어 이슈메이커로서 매스컴 노출빈도가 높았던 인물로 김문수 경기지사를 꼽을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을 종종 쏟아냈던 김 지사는 지난 한 해에도 ‘쓴소리’로 주목을 끌었다.
경기도지사로서 수도권 규제완화를 주장하고 있는 그는 정부의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대해 “배은망덕한 정부” “공산당보다 더한 규제”라는 원색적 표현을 써가며 비판하는가 하면, 과외단속에 대해서는 “이명박 대통령은 촛불시위도 못 막았는데 과외를 어떻게 단속하겠느냐. 안 되는 이야기를 자꾸 하는데 소위 말하는 헛발질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또 내년 지방선거에 대해서도 “청와대가 당을 좌지우지한다. …내년 지방선거 공천 때 대통령 의중과 무관하게 선거구민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차기 대권주자 후보지지도에서는 2~3%의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김 지사가 쏟아낸 ‘말·말·말’들은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렸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김문수 지사는 이명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면서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 유시민 전 장관. 캐리커처=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
차기 대선과 관련한 인물 지지도 측면에서도 박 전 대표는 모든 여론조사 기관의 지지도 조사에서 ‘독보적 1위’를 기록했다. 박 전 대표는 다른 잠룡들의 추월을 불허하는 높은 지지율로 단 한 번도 1위를 놓치지 않았다. 2~3위권 잠룡들이 10%대 언저리에서 치열한 경합을 벌이는 동안 박 전 대표는 대체로 30%대 후반~40%대 초반의 지지율을 넘나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검찰의 압박 수사 논란이 이어지면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후보인 박 전 대표의 지지율도 다소 추락했지만, 당시에도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30%대 초반을 유지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민주당 등 야권의 인물난이 계속되고 여권 내 정운찬 총리,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 등 후보군이 지지부진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내년에도 큰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차기 대선의 표심으로 이어질 ‘실수’ 지지율이 얼마나 될지는 대권이 임박한 시점에야 가시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의 골수지지층은 15% 내외이며 나머지는 ‘거품지지율’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차기후보군이 압축되면서 경쟁이 본격화될 경우 현재의 지지율 중 한나라당 지지층 일부가 빠져나갈 가능성도 있는 것. 이 때문에 현재의 높은 지지율에 대해선 박 전 대표 측에서도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대권주자 지지도 부문에서 급부상한 인물은 유시민 전 장관. 유 전 장관은 지난 6월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16.1%의 지지율로 박 전 대표에 이어 2위로 부상하면서 야권의 차기 대권후보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이른바 ‘노무현 효과’가 약해진 때문인지 여타 여론조사에서는 2~5위권을 넘나들고 있다.
유 전 장관에게 과거의 지지도 ‘2위 자리’를 내준 정동영 의원은 10%에 못 미치는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정 의원은 무소속인 탓에 용산참사, 미디어법 등 정치 현안에 대해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며 ‘나 홀로 행보’를 이어갔지만 큰 반향을 이끌어내진 못했다. 여기에 입당 문제 등으로 계속 부딪치고 있는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의 관계회복도 여전히 미지수다. 또 다른 야권 주자인 정세균 대표의 경우 여러 여론조사기관의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군에 좀처럼 포함되지도 못하는 낮은 지지율(1~2%)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정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비판적 제스처로 주목받아야 함에도 이러한 면에서 오히려 박근혜 전 대표에게 밀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지지율만 놓고 보자면 민주당이 정동영·손학규 두 외곽 주자들을 끌어안거나 이들의 지지율을 넘어설 수 있는 파괴력 있는 외부 인사를 영입해야 차기 정권을 가져올 가능성이라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권가도 빨간불 켜진 잠룡들
정운찬 '세종시 때문에 종쳤어…'
▲ 정운찬 총리 | ||
지난 9월 국무총리직에 깜짝 발탁되면서 큰 화제를 모았던 정운찬 총리는 ‘친이계’의 새로운 대권후보군에 포함되면서 주가가 급등했었다. 그러나 총리임명 청문회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은 ‘깨끗한 학자’ 이미지를 갖고 있던 정 총리에게 큰 흠집을 냈다. 여기에 세종시 문제를 두고 박근혜 전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충청민심까지 잃은 상황. 당내에서도 정 총리에 대해 ‘대권주자감’으로 한계가 있다는 비판적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내년 지방선거까지 이어질 세종시 문제를 잘 마무리 짓고 이를 지방선거 승리로까지 연결시킨다면 올해 고비를 맞이했던 정 총리의 위상이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가를 떠나 있던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도 지난 9월 국민권익위원장직에 오르며 화려하게 컴백했으나 이후 연이은 구설수를 불러왔다. 이 위원장은 권익위의 홈피를 개인홍보용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이는 지난 10월 국감에서마저 논란이 되었다. 또 고위공직자 청렴도 순위를 매겨 공개하겠다는 계획 등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최근 ‘계좌추적권’을 확보하겠다는 법안을 입법예고해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내에서도 친박계와의 갈등의 중심에 서 있었고 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거론돼 왔기에 여느 정치인보다 신중한 행보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월 선거법위반혐의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한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 역시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여 있다. 당분간 정치행보를 재개하기 어려운 문 전 대표는 요즈음 강연 일정 등을 소화하고 있다고 한다. 자유선진당과 함께 교섭단체를 구성했던 창조한국당은 문 전 대표의 의원직 상실과 자유선진당 심대평 의원의 탈당으로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잃게 된 상황. 현재 송영오 신임대표 체제로 이끌어가고 있으나 군소정당으로 전락해버려 앞날이 더 불투명해졌다.
세종시 문제에 대해 당의 사활을 걸고 있는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 또한 심대평 전 대표의 탈당에 이어 세종시 원안의 수정 필요성을 제기한 이영애 의원의 돌출발언 등으로 대표로서의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었다. 힘겹게 2009년을 보내고 있는 이 총재는 2010년 지방선거를 통해 마지막 승부수를 띄워야 하는 위기국면을 맞고 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