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집과 돌담이 아름다운 마을
어쩌면 도장마을을 두고 오지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접근이 어렵지 않고, 장수읍이나 도장마을이 속해 있는 변암면소재지와도 가깝기 때문이다. 도장마을은 장수군에서 19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달리다가 국포리 갈림길에서 751번 지방도로 갈아타고 우측으로 2㎞쯤 들어가면 나온다. 도로 옆으로 작은 개천이 흐르고 마을은 그 건너에 있다. 개천 위로는 10여m 길이의 도장교라는 다리가 놓여 있다.
현재 도장마을에는 22가구 40여 명이 산다. 400여 년 전, 선씨 성을 가진 사람이 가장 먼저 마을로 들어왔고, 그 후로 이씨·정씨·모씨·강씨 등이 들어와 마을에 터를 잡았다. 마을은 한창 때 60호가 넘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1977년 장남호라는 저수지가 생기면서 수몰이 되고, 젊은 사람들이 떠나면서 서서히 쇠락해 지금에 이르렀다. 저수지는 도장마을에서 500m쯤 올라가면 나오는데, 그 주변에 마치·시목·삼박골·절골 등 도장마을에 속하는 작은 촌락들이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여느 농촌처럼 대부분 70대 이상의 노인들로 논농사와 콩, 고추 농사를 주로 짓는다. 한봉(토종꿀)을 하는 집들도 더러 있다. 요즘은 고추따기로 한창 바쁘다. 마을 안길은 보호수로 지정된 380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있는 곳까지 깔끔하게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더욱 오지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눈을 돌려 마을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게 아니다. 촘촘히 어른 어깨 높이까지 쌓아올린 돌담이며 허름한 흙집이 시간을 수십 년 전으로 되돌려 놓은 듯하다.
낮선 이도 가족 같아
낯선 이의 방문에 동네 사랑방이나 다름없는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서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던 노인들이 빤히 쳐다본다. 비록 마을까지 이어진 길은 잘 닦였지만 그 길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고, 더욱이 마을로 찾아오는 사람은 우체부 외에 거의 없다.
그렇다보니 마을로 발을 들인 이방인이 신기할 수밖에. ‘뭐 볼 거 있다고 상노인들만 사는 동네에 왔냐’는 물음에 ‘돌담길이 좋다’는 동문서답으로 응수하자, ‘흐르는 세월 앞에 속수무책’이란다. 무슨 소린가하면 무너지고 쌓기를 수십 수백 번 해온 돌담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쌓을 기력이 없다는 것이다. 집들도 마찬가지. 처마가 기울면 기우는 대로 둘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는 하소연이다.
이곳 주민들은 정이 차고 넘친다. 일면식이 없는 이에게도 ‘밥때’라며 붙잡고, 옥수수를 땄다며 건네고, 아들네미가 사온 포도가 달다며 맛을 보란다. 어느 한 집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무 집이나 그렇다. 담장 위로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다보면 ‘목이 아프지 않냐’며 들어오라는 사람들이다. 이곳에서 돌담은 결코 벽이 아니다. 다만 고샅(시골마을의 좁은 골목길)과 마당을 구분하는 경계일 뿐이다.
도장마을은 아직까지도 수돗물을 사용하지 않는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식수로 쓴다. 지하에서 올라오는 샘물을 쓰는 집도 있다. 대여섯 곳에서 샘이 솟았는데, 이제는 한 집만 남았다. ‘천호동집’이다. 내외가 현재 마을에 살지 않고 서울 천호동에 산다. 하지만 고향이 그리워 그들은 한 달에도 몇 번씩 무시로 내려와 머물다 간다. 이번 여름에는 방학을 맞은 손녀와 함께 내려왔다. 토종닭과 놀기를 좋아하고, 잠자리 잡는 데 일가견이 있는 손녀는 이곳이 좋다며 방학이 끝나도 올라가지 않겠다고 떼를 쓴다. 푹 파져 살던 오락실도, 하물며 구멍가게도 하나 없어 뭐라도 하나 살라치면 하루 세 번밖에 다니지 않는 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가야 하는 이런 촌구석이 뭐가 좋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할아버지는 그저 허허 웃는다.
저수지를 둘러볼 참으로 마을을 나서는데, 한 주민이 저수지 끝에도 집이 하나 있다며 들러보란다. ‘수몰이 됐다고 들었는데 웬 집이냐’고 물으니 고향 떠났던 내외가 10여 년 전 다시 돌아와 집을 지어 살고 있단다. 정확히 만 11년 전 귀향한 모용환 씨(74) 집이다.
모 씨는 수몰 때 고향을 잃고 그 정취를 잊지 못해 결국 수구초심으로 고향에 왔다고 했다. 그는 부인 박옥례 씨(70)와 텃밭을 일구고,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소일거리를 한다. 유기농법으로 지은 콩과 고추·호박·옥수수 등은 타지에서 살고 있는 자녀들이 먹을 일부를 떼어 놓고, 장에 내다 판다. 집 마당 앞에 있는 사과나무는 온전히 손자들 몫이다. 추석에 빨갛게 익은 사과를 함께 따서 먹자고 단단히 약속했단다.
저수지를 따라 200m쯤 오솔길을 걸으면 닭장과 염소우리가 있다. 오소리의 공격이 만만치 않아 흑구와 백구 한 마리씩을 닭장에 함께 놓아기른다. 얌전한 이 녀석들은 닭에게는 해코지를 하지 않고, 밤이면 몰래 찾아드는 오소리들과 한판 승부를 즐긴다.
닭장 근처에는 환경감시소가 있다. 낚시꾼들이 제법 찾는 탓에 맑은 저수지가 오염이 될까봐 장수군에 건의해 설치한 것이다. 장수군이 허가만 내주고, 실은 독지가가 돈을 내놓았다고 한다. 컨테이너박스 건물로 취사 및 숙식이 가능하다. 환경감시원은 따로 없다. 이들 부부가 환경감시원이다.
컨테이너 건물 앞에는 커다란 밤나무가 물가에 가지를 드리우며 서 있다. 밤나무 아래는 평상이 놓여 있다. 부부가 여름을 나는 곳이다. 낚시꾼을 비롯해 야영객들도 마음껏 이용한다.
한편, 도장마을에서 모용환 씨 집을 넘어 산서면 쌍계리로 이어지는 말치재 길은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다. 길이 가파른 고개의 중턱을 이리저리 휘감아 돌며 나아가는데, 운전의 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산서면 쪽으로 훤히 펼쳐지는 풍경이 무척 인상적이다. 특히 해거름의 풍경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먹거리: 번암면 지지리 지지계곡산장(063-353-7776)이 토종더덕닭백숙과 숭어회를 잘하기로 소문이 났다. 특히 산에서 직접 채취한 약초와 더덕을 넣어 푹 삶은 백숙이 일품이다. 약초와 더덕의 향이 닭에 배어 잡냄새가 없고 은은하다.
▲잠자리: 도장마을에는 숙박을 할 수 있는 곳이 없다. 장남호 낚시터와 계곡 주변에서 야영을 할 수 있다. 인근 번암면 동화리에 동화댐모텔(063-353-4701), 사암리에 두메산골(063-352-2268), 죽산리에 장수호텔(063-353-5555) 등이 있다.
▲문의: 장수군청(http://www.jangsu.go.kr) 산림문화관광과 063-350-2450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