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둑해지면 나타나 숲을 차지하는 노루. | ||
▲길잡이: 제주시→1131번 도로→마방목지→1112번 도로→물찻오름 숲길
▲먹거리: 물찻오름에서 5분쯤 달려 교래리로 내려가면 음식점들이 많다. 그중 교래손칼국수(064-782-9870)를 추천한다. 제주 토속 음식인 꿩메밀국수가 일품이다. 바지락칼국수도 양이 많고 구수하다.
▲잠자리: 물찻오름 근처에 있는 절물자연휴양림(064-721-7421) 내 숙박시설을 이용하면 좋을 듯하다. 펜션 등에 비해 저렴하고, 숲 속에서 맞는 아침이 상쾌하다.
▲문의: 제주특별자치도 문화관광포털(http://cyber.jeju.go.kr) 관광마케팅과 064-710-3854
제주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해석이 이루어지고 있는 요즘이다. ‘제주 올레(좋은 길 작은 길을 뜻하는 제주 사투리)길’의 영향이 크다. 그간 제주는 여행지라기보다 관광지라는 간판이 더 어울리던 곳이었다. 하나라도 더 봐야만 ‘비행기값’이라도 뽑고 갈 것 같았다. 그래서 바삐 움직였고, 한 곳에서 느긋할 수 없었으며, 정해진 코스를 벗어나지 못 했다. 그러나 제주사람들이 걷던 마을길과 해안길이 올레길이라는 트레킹코스로 선보인 이후 제주는 천천히 걸으며 색다른 풍광을 몸으로 느끼는 곳이 되었다.
물찻오름 숲길은 올레길에는 포함되지 않은 트레킹코스다. 해안을 따라 주로 개발된 올레길이 제주 바다와 주변 갯마을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면, 중산간 지역에 있는 이 숲길은 제주의 허파인 곶자왈의 비밀스런 모습을 고스란히 공개한다. 곶자왈은 ‘화산 폭발 후 용암이 흘렀던 곳에 형성된 숲’을 이르는 제주 말이다. 곶자왈은 대지의 양분이 다른 곳에 비해 월등히 많고, 지하수 함량이 높아 식물이 잘 자란다. 그래서인지 곶자왈에는 온갖 나무와 식물들이 뒤엉켜 거대한 밀림을 이룬다.
물찻오름 숲길은 1112번 도로가 ‘5·16 도로’라고 더 알려진 1131번 도로를 만나는 인근에서부터 시작된다. 조천읍 교래리에서 1112번 도로를 타고 1131번 도로 방향으로 올라가다보면 절물자연휴양림이 나오고, 조금 더 가면 좌측에 물찻오름 입구가 보인다. 쭉쭉 뻗은 삼나무가 우거진 지점의 한가운데다.
숲길은 편도 4.7㎞ 거리다. 길은 참 평탄하다. 왕복으로 거의 10㎞에 달하지만 힘에 부침이 없다. 물찻오름은 오름(기생화산) 정상 분화구에 물이 차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오름의 생김이 마치 성과 같다고 해서 ‘수성악’(水城岳)이라고도 불렀다. 그 이름만 듣고도 올라보고 싶은 충동이 일긴 하지만 참아야 한다. 올 연말까지는 자연휴식년제로 탐방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아쉬워하진 말자. 물찻오름에 이르는 숲길만으로도 충분한 위안이 된다.
숲길은 지난 3월까지만 해도 차량통행이 가능했다. 하지만 현재는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다행이다. 접근이 쉬웠던 이전에는 너도나도 차량을 이용해 물찻오름을 찾았더랬다. 물찻오름의 통제는 그 때문이다. 겨우 비고가 167m에 불과한 작은 오름이 그 많은 사람들의 무게를 감당하기에는 버거웠다. 사람들은 마구 오름을 짓밟았고, 거기 깃들어 사는 수많은 식물과 동물의 삶이 위협받았다.
차량을 통제한 지 겨우 반 년, 물찻오름은 이제 통제를 풀어도 될 만큼 식생이 살아났다. 물론 숲길도 마찬가지다. 붕붕거리며 지나는 차량의 꽁무니를 걸어서 좇고 싶은 사람은 없게 마련. 당연히 숲길을 걷는 사람이 적었다. 하지만 이제 숲길은 완전히 ‘사람 길’로 거듭났다. 차량의 소음이 가렸던 계곡 물소리와 까마귀들의 까악 대는 소리, 조릿대를 훑고 지나는 바람소리 같은 자연의 숨결이 절로 들린다.
숲길 입구의 삼나무 조림지와 탐방지원센터를 지나면서 트레킹은 시작된다. 길 좌우로 숲이 밀림처럼 우거져 있다. 이곳에는 무려 78과 254종의 나무와 풀이 자란다. 소나무·서어나무·단풍나무·말오줌때·사람주나무·때죽나무·졸참나무·참꽃나무 등의 목본류와 천남성·꿩의밥·새우난 등의 초본류, 가는홍지네고사리·뱀톱 등의 양치류 등이 서식한다. 나무들이 무성한 가지를 뻗어 우산을 펼치고, 풀들이 그 아래에 양탄자를 깔듯 점령을 하고 있다. 마치 비밀의 숲에 발을 들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화창한 날의 마방목지. | ||
낮 동안에 사람들로 부산했던 숲길은 저녁부터 새벽까지는 노루들의 것이다. 오후 다섯 시가 넘어서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면 노루들이 숲에서부터 길로 내려와 마음껏 뛰논다. 사람의 인기척이 들리면 후다닥 달아났다가도 어느 정도의 안전거리를 유지하면서 빤히 관찰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서면 부르는 소리에 반응을 하며 태연히 풀을 뜯는다.
편도 4.7㎞라던 숲길은 사실 물찻오름까지만을 두고 말함이었다. 길은 계속 이어진다. 물찻오름을 지나 서귀포시 남원읍 안남리 ‘사려니오름’까지 길이 나 있다. 다 합치면 편도 15㎞에 이른다. 왕복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관통해서 빠져나가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한편, 물찻오름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제주의 상징 동물인 조랑말을 마음껏 볼 수 있는 마방목지가 있다. 1112번 도로를 타고 올라가다가 1131번 도로를 만나 우측으로 방향을 틀고 3~4분 정도 달리면 나온다.
길 좌우로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고, 그 곳에서 수백 마리의 조랑말들이 풀을 뜯거나 뛰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마방목지 한쪽에는 널찍한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이 곳은 맑은 날도 좋지만 비오는 날이 더 운치 있다. 비가 내리면 거의 구름이 주변을 뒤덮는데 실루엣으로 보이는 말들의 풍경이 무척 인상적이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