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룡령 옛길을 걷는 사람들. 북적이는 고개 너머의 설악산과는 대조되는 풍경이다. 한적해서 더욱 좋은 구룡령 옛길. | ||
▲길잡이: 서울→6번 국도→양평→44번 국도→홍천→56번 국도→명개리
▲먹거리: 갈천약수 전방 1㎞ 지점에 갈천약수가든(033-673-8411)이 있다. 갈천약수를 이용한 토종닭백숙이 일품이다. 미네랄이 풍부한 갈천약수는 닭 특유의 냄새를 없애고 육질을 부드럽게 한다. 엄나무와 황기, 구기자, 대추 등을 넣어 건강에 더욱 좋다.
▲잠자리: 명개리에는 숙박업소가 없다. 갈천리 쪽으로 가는 것이 좋다. 구룡령을 넘어 56번 국도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갈천리가 나온다. 이곳에 갈천훼미리리조트(033-673-7111)가 있다. 한국관광공사 우수 숙박업소 ‘굿스테이’로 지정된 곳이다. 2인~6인을 수용할 수 있는 방들이 여럿 있다.
▲문의: 홍천군 내면사무소 033-432-7049, 양양군 서면사무소 033-670-2620
구룡령 옛길로 향하는 길은 새벽을 틈탄다. 구룡령의 운해를 감상하기 위해서다. 일교차가 큰 요즘, 구룡령은 어김없이 구름 속에서 허우적댄다.
구룡령은 강원도 홍천군 내면 명개리와 양양군 서면 갈천리에 걸친 고개다. 용이 휘돌며 하늘을 오르는 것처럼 아흔아홉 구비를 넘어간다고 구룡령이라고 한다. 원래는 구운령이었다. 개 구(狗), 구름 운(雲) 자를 썼다. 이 고개에는 홍천 내면 명개리에 사는 처녀를 사모한 양양 서면 갈천리 총각이 키우던 개와 고개를 뒤덮은 구름의 도움을 받아 사랑을 이루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름이야 어쨌든 북으로 설악산, 남으로 오대산에 이어지는 이 고개는 해발 1089m 높이에 있다.
보통 운해를 보려면 야간산행을 감행하며 깨나 다리품을 팔아야겠지만, 구룡령은 고맙게도 자동차에게 몸을 내어준다. 홍천에서부터 56번 국도가 양양으로 이어지는데, 이 도로가 구룡령을 넘는다. 고개의 등허리를 끼고 도는 도로가 이리저리 뒤틀린다. 도무지 속력을 낼 수 없는 길이다. 게다가 600~700고지를 넘어서면서부터 길을 가리는 구름 탓에 마치 바닥에 끈끈이주걱이라도 깔아 놓은 듯 자동차 바퀴의 굴림이 점점 더뎌진다. 헤드라이트 불빛은 짙은 구름의 장력을 풀어헤치지 못 하고 힘을 잃는다.
▲ 운해 속에 잠긴 구룡령 소경. | ||
해가 떠오르고 온기가 구름 속으로 스며들자 운해의 찰기가 사라진다. 구름이 풀풀 날리며 길을 잃고 사방으로 흩어진다. 구룡령의 운해와 작별을 고하고 구룡령이 품은 옛길을 걷기로 한다. 구룡령 옛길은 2007년 12월 대한민국 명승 제29호로 지정된 길이다. 일제가 임산물과 광물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56번 국도를 놓기 전까지 사람들의 발끝 온기로 따스하던 길이었다. 이후 기억에서조차 지워지다시피 했던 그 길이 이제 다시 우리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홍천군과 양양군, 산림청 등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옛길을 걷는 방법은 두 가지다. 홍천군 내면 명개리나 양양군 서면 갈천리에서 시작해 끝에서 끝을 훑는 것. 또 하나는 이곳 구룡령 정상에서 명개리나 갈천리 둘 중 하나를 택해 왕복하는 것이다. 반드시 원점회귀를 해야 할 필요가 없다면 물론 전자를 권한다. 그리고 원점회귀를 한다 해도 다시 걸어오는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중교통 사정이 시원치 않지만, 명개리든 갈천리든 큰길(56번 국도)까지 걸어 나오면 지나가는 차를 잡아탈 수도 있으니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그렇다면 고민은 한 가지로 줄었다. 과연 명개리에서 출발하느냐, 갈천리에서 출발하느냐다. 조언을 하자면 명개리가 낫다. 명개리에서 구룡령으로 오르는 편이 수월하다. 갈천리 쪽에서는 가파른 경사 길이 많다.
구룡령에서 내려와 명개리로 길을 잡는다.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 5㎞가량 내려가자 오른쪽으로 명개리 가는 좁은 길이 나타난다. 시멘트포장이 되어 있다. 그런데 이 길이 일품이다. 왼쪽으로 졸졸 개울이 흐르고 좌우로 우거진 숲에 단풍이 곱게 들어 있다. 5분쯤 길을 달리니 오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명개리 마을이 나타난다. 10가구 남짓 사는 동네다. 고랭지배추와 고추 등의 농사를 짓는다.
명개리에서 옛길에 오른다. 이곳에서부터 구룡령 옛길 정상까지는 3.5㎞다. 헐벗은 나무 사이 돌무지무덤이 있는 마을 뒤편 숲을 지나 영골약수로 향한다. 약수까지는 1.9㎞, 평탄한 길이다. 자작나무와 참나무, 단풍나무, 이깔나무, 주목 등이 우거진 길이다. 간혹 나무들은 완벽한 터널을 이루기도 한다. 개울이 길동무를 한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참 청량하다. 노랗게 말라 들어가야 할 이끼지만 아직 생생하다. 개울의 푸른 이끼 위로 떨어진 붉은 단풍의 색대비가 강렬하다.
단풍은 절정을 지나고 있다. 달려 있는 이파리만큼이나 떨어져 쌓인 것들이 많다. 영골약수를 지나면서는 단풍보다 낙엽이 더 많다. 영골약수는 말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막혔다. 지난 여름 수해 때 막혔는데 아직 정비하지 못 하고 있다. 길 가는 나그네의 목을 축여줄 소중할 물이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크다.
영골약수를 지나고 서서물나들로 가는 길이 조금씩 오르막을 띤다. 그렇게 힘든 편은 아니다. 서서물나들은 구룡령 옛길의 홍천 쪽 개울이 모습을 드러내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주변으로 산죽이 마치 양탄자처럼 깔려 있다.
서서물나들에서부터는 길이 조금 가파르다. 그러나 약 500m만 오르면 구룡령 옛길 정상이다. 땀 한 번 흘리고 나면 될 일이니 겁먹을 필요 없다. 이전보다 더 낙엽이 폭신하게 깔린 길이 정겹다.
구룡령 옛길 정상에 이르자 오른쪽으로 구룡령, 왼쪽으로 갈전곡봉, 정면으로 갈천리 가는 길이 열려 있다. 56번 국도가 있는 구룡령까지는 1.2㎞, 갈전곡봉까지는 2.4㎞, 갈천리까지는 2.7㎞다. 갈천리로 내려가는 길에 횟돌(석회암)이 나왔던 횟돌반쟁이, 소나무가 우거진 솔반쟁이, 조선시대 양양 고을을 너무도 사랑했던 한 청년이 죽어 묘를 썼다는 묘반쟁이 등의 희한한 이름을 가진 지역을 지난다. 길 위에는 명개리에서 오르던 것처럼 단풍과 낙엽이 찬란한 가을을 노래한다.
한편, 갈천리 쪽을 택하지 않고 갈천약수터로 내려오는 제2의 방법도 있다. 갈전곡봉 방향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에 갈천등산로가 있다. 이 길은 따라 쭉 내려오면 위장병에 특효라는 갈천약수터가 있다. 철, 나트륨, 칼슘, 마그네슘 등을 다량 함유한 이 약수는 비릿하면서도 톡 쏘는 맛이 특징이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