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사성 해오름. 남한강물에서 안개가 피어올라 형성된 ‘구름’ 위로 해가 떠오른다. | ||
<여행안내>
▲길잡이: 영동고속국도 여주IC→37번 국도 여주군청 방면→대신석재에서 우회전
▲먹거리: 파사성이 있는 천서리는 막국수로 유명한 곳이다. 꿩고기를 푹 고아 우려낸 국물과 동치미국물을 섞어 만든 냉육수가 일품이다. 강계봉진막국수(031-882-8300), 천서리막국수(031-883-9799) 등이 알아준다.
▲잠자리: 파사성에서 약 15분 거리에 있는 금사면 상호리에 녹색농촌체험마을(031-866-4900)이 있다. 민박을 놓는다. 여주읍 쪽으로 가면 연양리 엠투엠모텔(031-885-1818), 상리 드라마모텔(031-885-1171) 등 숙박시설이 많다.
▲문의: 여주군청 문화관광과 031-887-2866
파사성이라는 이름이 낯설다. 사실 이 성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여주 사람들에게 물어도 인근 주민이 아니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경우가 많았다. 파사성은 여주군 금서면 천서리에 자리하고 있는 산성으로 파사산 정상 부위를 두르고 있는 석축성이다. 신라 제5대 임금인 파사왕(80~112년) 때 쌓은 것이다. 어림잡아 2000년 가까이 됐다. 조선시대 선조 25년에 승장 의엄이 다시 고쳐 쌓았다. 남한강의 동쪽 강변에 파사산이 위치하고 정상의 능선을 따라 산성이 이어져 있다.
▲ 신륵사. | ||
파사성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동문지 쪽과 남문지 쪽이 그것이다. 동문지는 산을 20분가량 올라야 하고, 남문지는 성곽 바로 아래까지 차량을 이용해 올라갈 수 있다. 여주에서 양평 방면으로 이어지는 37번 국도를 따라 가다보면 70번 국도를 만나는데, 이곳에서 우회전하면 대신면 천서리 방면이다. 걸어서 올라가는 동문지 쪽이다. 반면 천서리 쪽으로 길을 틀지 않고 직진하면 오른쪽으로 대신석재가 보이는데, 이 앞길로 올라가면 찻길이 이어진 남문지 쪽이다. 원래 남문지 쪽은 일반차량 통행로가 아니다. 1999년부터 여주군이 성곽복원공사를 진행하면서 닦은 공사로다. 덕분에 쉽게 올라갈 수 있게 되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걸어서 올라가길 권한다.
약 700m. 천서리에서 동문지까지 거리다. 평지라면 10분이 채 걸리지 않겠지만 다소 경사가 있는 산길이다. 해발 250m의 정상까지 오르는 동안 볼 것이라고는 별로 없다. 참나무류가 우거진 숲은 겨울바람에 헐벗었다. 다만, 낙엽이 좋다. 땅에 깔아놓은 이불 같은 낙엽을 밟으며 걷는 기분이 아주 좋다. 20분쯤 힘차게 오르자 동문지에 도착한다. 그렇지만 바로 성 안으로 바로 들지는 않는다. 마애여래입상을 보기 위해서다.
마애여래입상은 성곽 오른쪽으로 약 300m 지점에 있다. 여기저기 꽂힌 팻말마다 다르게 거리를 표기해 놓아서 정확한 거리를 알 수 없다. 산길을 따라 5분가량 가자 오른쪽으로 거대한 바위절벽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 마애여래입상이 새겨져 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1호로 지정된 불상으로 고려시대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가 5.6m에 이르고,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혀 있다. 그러나 깊게 새기지 않아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마애여래입상을 보고 다시 파사성으로 돌아와 성곽 위로 오르자 곧 파사산 정상이다. 내려다보니 남문지 방향으로 성곽이 길게 뻗어 있다. 성곽은 이리저리 굽이치면서 남문지로 향한다. 남문지 너머는 남한강이다. 바로 이 방향으로 해가 떨어진다. 남한강과 성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해거름이 일품이다. 특히 산등성이로 해가 떨어지고 난 후가 장관이다. 하늘처럼 남한강이 핏빛으로 붉게 물든다.
파사성은 해오름 또한 빠지지 않는다. 해가 뜨는 동쪽으로는 성곽이 없어서 다소 밋밋할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남한강의 물안개가 극적인 상황을 연출할 때도 간혹 있기 때문이다. 무척 추운 겨울날 남한강은 동틀 무렵 어마어마한 물안개를 풀어놓는데, 이것이 구름처럼 주변에 깔리는 것이다. 산 아래로 운해가 가득 하고 그 위로 해가 붉게 떠오른다.
한편, 파사성이 있는 여주는 이천, 광주와 함께 도자기의 고장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현대도자미술관과 여주세계생화도자관 등 도자기를 주제로 한 전시시설이 여럿 있다.
신륵사 곁에 있어서 함께 묶어 둘러보기 편한 여주세계생활도자관은 세계 도자의 경향과 생활도자기의 미를 조명하는 전문 전시관이다. 도자기라고 하면 다소 고루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이곳에서는 우리 생활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도자기들을 선보임으로써 흥미를 유발한다. 2개의 대형전시실과 기획전시실, 다목적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도자체험실과 흙놀이방, 전통 옹기가마 등의 시설도 있다.
▲ 천서리의 노부부가 메주를 만들기 위해 가마솥에 찐 콩을 절구에 빻고 있다. | ||
비록 절은 작지만 보물창고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많은 유물들이 사방에 널려 있다. 우선 경내로 들어가기 전 오른쪽 언덕에 희한한 모양의 탑이 하나 눈에 띈다. 보물226호 신륵사다층전탑이다. 전탑 바로 위에는 신륵사에 대장각을 지어 봉안한 사실을 기록한 대장각기비(보물 230호)가 있고, 경내로 들어가면 다층석탑(보물 225호)과 조사당(보물 180호), 극락보전(경기도유형문화재 128호) 등이 있다. 절 뒤편에는 보제존자석종(보물 228호)이 자리하는 등 눈길 닿는 곳마다 보물덩어리들이다.
이런 유형의 문화재와 함께 신륵사의 종소리도 그 보물의 목록에 끼워넣고 싶다. 뜬금없이 웬 종소리냐 의아할 수 있겠다. 하지만 신륵사의 종소리를 들어본 사람은 안다. 그게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것인지. 오죽했으면 신륵사가 아니라 저물녘 울려 퍼지는 신륵사의 종소리, ‘신륵모종’(神勒暮鍾)을 여주8경 가운데 첫손에 꼽았을까.
강 너머로 해가 떨어지고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하면 신륵사에도 고요가 찾아온다. 사람들과의 부딪힘도, 소음으로만 들리던 대화소리도 없는 고즈넉한 시간. 다만 남한강으로 날아든 청둥오리떼의 울음소리, 바람에 쓸리는 갈대소리가 간혹 들려올 뿐이다. 이러한 자연의 소리는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해줘서 사색에 더 도움을 준다.
고달사지도 둘러보아야 할 곳이다. 그러고 보니 여주는 불교문화재가 적잖이 있는 곳이다. 고달사는 신라 경덕왕 23년(764년)에 건립된 절이다. 고려 초기 국가가 관장하는 3대 선원 가운데 하나였으나 조선 중기 폐사되었다. 1998년부터 절터 발굴을 시작해 현재 6차까지 완료되었다. 국보 4호로 지정된 고달사지부도를 비롯해 원종대사 혜진탑과 석불좌, 쌍사자석등 등 보물이 있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