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회계 자료를 바탕으로 검찰 수사 착수 여부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 최준필 기자
국세청의 구조부터 따져보면, 국세청 본청에는 세무 조사를 지휘하는 조사국이 있고 그 밑으로 6개 지방국세청에 각각의 조사국이 있다. 보통 대기업은 서울지방국세청이 담당하는데, 서울국세청 안에도 조사1국부터 조사4국, 그리고 국제거래조사국이 있다. 특히 저승사자로 불리는 곳이 보통 조사4국이다. 정기적으로 정해진 때 조사를 하는 곳들과 달리, 비정기적으로 세무조사에 나선 탓에 ‘정치 세무조사 전담조직‘으로 풀이됐다.
그래서일까. 대부분의 검찰 수사는 국세청의 자료를 기반으로 시작했다. 최근 이중근 회장이 구속 기소된 부영그룹은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 과정에서 다스 관련 회계 자료는 국세청에서 검찰에 넘긴 게 수사로 반영됐다. 특수수사에 밝은 한 검사는 “요새 기업들의 재무회계가 워낙 고도화되고 전산화돼서 예전처럼 검찰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기업 비리는 다 횡령이고 배임인데, 그걸 확인하려면 국세청이 넘겨주는 자료가 매우 중요하다”고 털어놨다.
국세청의 중수부라고 부르기까지 하는 조사4국. 논란을 우려한 탓에, 국세청은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조사4국의 규모를 줄이는 작업에 돌입했다. 하지만 LG그룹은 조사4국이 잠시 휴식에 들어가기 전, 레이더를 돌리는 과정에서 잡혔다. 지난해 12월, 서울청 조사4국이 엘지상사 등 그룹 계열사를 상대로 세무조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조세포탈 목적의 부정한 행위가 포착된 것.
검찰이 LG그룹 본사를 압수수색하고 있는 가운데, 취재진이 이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국세청으로부터 고발장과 함께 관련 자료를 넘겨 받은 서울중앙지검 조세범죄조사부(부장검사 최호영)는 약 한 달간의 검토 및 내사 끝에 본격 행동에 나섰다. 9일 LG그룹 본사 재무팀 등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세무 회계 관련 자료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했다. 검찰이 밝힌 국세청 고발장에 명시된 혐의는 LG그룹 사주 일가가 계열사 주식을 양도하는 과정에서 100억 원대 소득세를 탈루했다는 것. 검찰은 일가가 주식을 거래한 증권사도 압수수색해 거래 내역 관련 자료도 확보했는데 혐의는 더 확대될 수 있다.
검찰은 앞에서는 “구본무 회장 등은 조사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수사를 확대하겠다는 의지가 상당하다. 뒤에서는 어떻게든 수사를 확대해보겠다고 혐의를 끌어 모으고 있다. 사건 흐름에 정통한 법조인은 “이번에 검찰이 제시한 압수수색 영장을 보면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등 구씨 일가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며 “압수수색 과정에서도 영장에 적시된 범죄 사실과 다소 거리가 있는 자료들도 가져가겠다고 해서, LG그룹 변호인들과 약간의 의견 충돌이 있었다”고 귀띔했다. 실제 국세청에서 고발한 대상에는 구본무 LG그룹 회장, 구본준 부회장 등은 빠졌지만 그 외 방계그룹 구씨 일가 이름은 다수가 적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원칙론적인 입장으로 수사 확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지난 10년간 흐름을 확인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얼마든지 수사를 확대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 것이라는 평이 나온다. 국세청 관계자는 “원래 세무회계 자료를 보려면 10년 정도는 봐야 정상적인 처리 과정과 목적이 있는 특이한 구조를 비교할 수 있다”며 “원칙론적인 얘기지만, 10년간 있었던 다른 범죄로도 수사를 확대할 수 있다는 의사를 드러낸 것”이라고 풀이했다.
하지만 검찰이 ‘과거 적폐 방식 수사’를 또 하려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기본적으로 국세청이 고발한 혐의가 ‘명백한 잘못’이 아니라, ‘이견’으로 볼 여지도 있기 때문. LG그룹 측 관계자는 “검찰 수사에 협조할 것이다. 또 검찰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며 “다만, 일부 특수관계인들이 시장에서 주식을 매각하고 세금을 납부했는데, 그 금액의 타당성에 대해 과세 당국과 이견이 있었고, 그에 따라 검찰이 수사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