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의 실적 위주의 정치가 지지율을 끌어올리자 친박 그룹 내부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의 존재감에 악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
하지만 2010년에도 그의 ‘반대 정치’가 먹혀들 것인지에 대해선 이견이 분분하다. 특히 지난 연말 이명박 대통령이 UAE(아랍에미리트) 400억 달러 원전 수주로 대박을 치자 친박그룹 내부에서는 걱정스런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이 계속 ‘실적’ 위주의 정치로 지지율을 끌어올릴 경우 박 전 대표의 여당 내 존재감이 점점 미약해져 차기 대권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우려가 그것. ‘이 대통령의 자살골을 기대하지 말고 선제적인 슛을 날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친박그룹 일각의 ‘박근혜 신화 만들기’ 고언을 따라가 봤다.
이명박 대통령의 ‘UAE 400억 달러 원전 수주’ 뉴스에 차기 대권 주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민주당의 정세균 대표는 ‘수주 액수가 부풀려졌다는 논란이 있고, 이미 노무현 전 대통령 때 UAE에 터를 잘 닦아놓았기 때문에 이 대통령은 막판에 숟가락 하나 얹어놓은 것뿐’이라며 평가절하하고 있다. 하지만 보수언론의 대대적인 ‘홍보’에 힘입어 여론은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원전 수주 뒤 실시된 리얼미터 조사에서 이 대통령은 53%의 지지율을 기록, 1년 8개월 만에 50%대에 재 진입하는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원전 수주 효과로 이 대통령은 ‘세종시-4대강-예산안’의 트라이앵글 안개 정국에서도 계속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한 셈이 됐다.
▲ 지난 12월 27일 이명박 대통령과 칼리파 빈 자예드 알 나흐얀 UAE 대통령이 아부다비 에미리트 팰리스 호텔에서 원전사업 계약 서명식을 마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아부다비=연합뉴스 | ||
그런데 이 대통령의 원전수주 효과는 박근혜 전 대표의 정치적 위상에도 일정부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타협 없는 반대’를 외치고 있는 박 전 대표의 향후 정치적 입지가 위축될 수 있다는 진단도 있다. 이런 분석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이명박-박근혜 두 정치 지도자의 성공 방정식을 먼저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한 정치 분석학자는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의 경우 (자신의 자서전 이름과 같은) ‘신화는 없다’(는 도전과 실적주의)를 통해 정치적 성공을 일정 부분 이어나가고 있는 반면, 박근혜 전 대표는 ‘신화가 없다’는 점 때문에 대권가도가 순탄하지 않을 수 있다”라고 말한다.
이 대통령은 현대건설 CEO 출신으로서 <신화는 없다>라는 자서전을 통해 샐러리맨의 성공 신화를 창조한 바 있다. 그리고 그 신화는 UAE 원전 수주 성공 신화에서도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1980년대 월성 1, 2호기 건설 당시 공사를 맡은 현대건설 사장을 지냈다. 또 고리 3, 4호기와 영광 1, 2, 3, 4호기 건설 당시에도 각각 현대건설 CEO를 지냈다. 보수언론과 청와대는 “이 대통령의 현장 경험과 치밀한 접근법이 작품을 만들었다”라고 평가하면서 샐러리맨 출신 대통령의 성공 신화를 재창조하고 있다.
그런데 한 정치 컨설턴트는 이에 대해 “정치인들은 <신화는 없다>류의 성공 신화를 무수하게 쏟아낸다. 그중에서도 이 대통령의 자서전은 두 번이나 드라마화되는 행운이 따르면서 정치인 자서전 가운데 가장 성공한 예가 될 것이다. 내용도 검증이 안 되고 미화 논란도 많았지만 결국 최고의 ‘스핀 닥터링’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스핀’은 원래 ‘돌리거나 비틀어 왜곡한다’는 부정적인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로, 스핀닥터란 용어는 1984년에 처음 등장하였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미국 대통령 후보들의 텔레비전 토론이 끝난 뒤 스핀닥터들이 자기 진영에 유리하도록 홍보력을 발휘하였다고 썼는데, 스핀닥터는 여기서 유래했다. 이 대통령의 성공 신화는 그 실제보다 더 미려하게 ‘스핀 닥터링’된 결과라는 점에서 논란이 될 수는 있지만 바로 그런 부분 때문에 지지율 상승효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반면 박근혜 전 대표는 오히려 ‘신화가 없다’라는 지적 때문에 대권가도에서 고전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있다. 박 전 대표의 ‘신화’는 부친인 박정희 향수에 기반한 측면이 강하다. 여당의 한 전략 전문가는 이에 대해 “박 전 대표는 ‘박정희 후광효과’를 극복해야 한다. 그에게 ‘공주’라는 이미지는 달갑지 않은 왕관과도 같다. 하지만 공주 이미지는 ‘타고난’ 것이어서 극복이 매우 어렵다. 그래서 박 전 대표 스스로 자신만의 성공 신화를 다시 써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명박 대통령의 ‘자책골’에 대한 반사이익으로만 ‘묻어갈 경우’ 차기 대권도 어렵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경우 샐러리맨 신화를 뿌리 삼아 끊임없이 ‘스토리’를 현재의 정국에서도 재생산해내고 있다. 반면 박 전 대표는 자신만의 성공 스토리가 없다. 그 스토리의 부재는 차기 대권가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역대 대선은 특정 정치인의 인물 자체와 그 성공 스토리를 통해 승패가 결정 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박 전 대표의 경우 자신만의 성공 신화가 없다. 또한 ‘선거의 여제’라는 신화에도 “예선에서는 통하겠지만 본선에서는 어려운 ‘작은 성공’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이런 ‘박근혜만의 신화가 없다’는 분석은 지금까지 그를 계속 ‘콘텐츠 부재론’으로 공격하는 빌미를 제공해주었다. 이런 약점을 의식해서인지 박 전 대표는 지난해 5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 처음 ‘행복’과 ‘복지’라는 ‘박근혜 브랜드’를 발표했다. 이 연장선상에서 박 전 대표는 최근 사회복지 관련 법안들을 대대적으로 손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행복’과 ‘삶의 질’이라는 ‘박근혜식 가치주의’가 차기 대선의 화두가 될 것임을 천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선 친박그룹 내부에서도 논란이 있다. ‘행복’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고 국민들에게 탁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의 ‘한반도 대운하’ 같은 구체적인 플랜이 대선과 같은 빅 이슈 한 방에 결정 나는 선거에서는 위력을 떨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박근혜만의 신화 부재와 모호한 정책 채택이 이명박 대통령의 실적 전략과 대비되면서 향후 박 전 대표의 대권가도에도 부담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여당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의 경우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일단 UAE 400억 달러 원전 수주와 같은 구체적 실적으로 여론을 선도하고 있다. 그것은 현대건설 CEO 신화와 결합하면서 지지층의 마음을 끌어들이고 있다. 반면 박 전 대표는 민주당과 같은 이미지로 비쳐진다. 특히 세종시의 경우 대안 없는 반대만을 외치는 것이 계파 수장의 선택일 뿐 차기 대통령이 유력한 정치인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대통령이 원전 수주를 이끌어오자 박 전 대표의 세종시 반대가 더욱 옹색해진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런 분석은 친박그룹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이 국가 지도자로서 계파를 초월해 세일즈 외교를 펼치는 사이 박 전 대표는 계파 논리에 빠져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친박의 한 중진 의원). 그래서 이 대통령이 앞으로 제2, 제3의 원전 수주 성공 정국을 이끌 경우 박 전 대표의 ‘묻지마 반대’도 비판의 대상이 될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이 대통령이 만약 ‘성공 신화 대박’을 계속 터뜨리며 올해 지방선거에서 ‘절반의 성공’으로 선방할 경우 박 전 대표의 차기 대권주자로의 부상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또한 현재의 권력에 가려진 채 ‘미래권력’의 존재감이 미약해지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박 전 대표를 배제하고 자신의 대리인을 여당의 대권주자로 내세울 공간을 더 넓혀줄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신화는 없다>라는 신화론에는 분명 거품이 많다. 또한 실적보다 부풀려진 ‘스핀 닥터링’의 산물이라는 냉혹한 지적도 많다. 하지만 현존 권력을 넘어서야 하는 미래권력 박 전 대표 또한 ‘신화가 없다’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신화를 창조해야 하는 것이 심화되어가는 홍보전쟁에서 살아남는 길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과연 차기 대선에서 어떤 신화로 최고의 권좌에 오르려 할까.
박근혜 '한마디 정치' 뜯어보니
그녀가 말하면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