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1월 14일 이 전 지사를 만나 세종시와 관련한 제반 문제점과 해법, 그리고 도지사 사퇴를 둘러싼 갖가지 궁금증 및 향후 정치 행보를 들어봤다.
―정부가 발표한 세종시 수정안을 총평한다면.
▲수정안을 보니 일단 고심한 흔적은 보인다. 하지만 국가균형발전, 충청권 발전, 타 지역과의 역차별 문제 등 본질적 문제 해결에는 미흡한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원안 이외에는 대안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끝없는 논쟁 속에 빠져들어 대국민 혼란과 갈등이 발생될까 대단히 걱정된다. 이 문제의 본질적 해결은 큰 정치적 결단이 없으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12월 3일 ‘원안 고수’를 주장하며 ‘지사직 사퇴’라는 초강수까지 둔 상황에서 소회가 남다를텐데.
▲세종시 문제는 크게 5라운드로 이제 막 1라운드가 끝난 것뿐이다. 2라운드인 법개정 문제가 곧 시작될 것이고, 3라운드는 6월 지방선거, 4라운드는 2012년 총선과 대선, 5라운드는 차기 정부 출범 이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장기적으로 국론분열의 원인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는 세종시 문제를 정략적 발상이 아닌 정책 사안으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동안 대통령과 여러 번 만나 이 문제에 대해서 얘기한 바 있다. 대통령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받아들이는 쪽에서 인정하지 않을 때에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더욱 이해가 안 되는 것은 행정부처가 이전한다고 해도 2012년부터 옮기게 되어 있다. 대통령 임기 내에는 별로 가시화될 게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왜 정권의 명운을 걸면서까지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삼성 롯데 한화 등 대기업 유치 문제와 관련해서는 ‘빅딜설’ 등 갖가지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데.
▲빅딜설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다른 목적으로 움직인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세계적인 기업이 첨단 사업을 투자하기 위하여 세종시에 입주하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다만,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추진했던 9부2처2청을 제외하는 것을 전제로 한 대기업 유치는 곤란하다. 이번 수정안 발표가 오히려 정치적 선택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도지사 사퇴 후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서 이 대통령이나 정부 여당 관계자들과 만나거나 접촉한 사실은 없나.
▲안타깝지만 공식적으로 그런 사실이 없다. 가장 답답해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세종시 문제의 실질적 당사자인 전 충남도지사로서 이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도 많은 자료와 식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퇴 직전인 지난해 12월 2일 그것도 단 한번 대안에 대한 의견을 말할 기회가 주어졌을 뿐이다. 대안의 내용보다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비민주적이고 투명하지 않았다는 것이 충청인들에게 더 큰 소외감과 분노를 일으키게 하고 있다.
―세종시 문제가 충청권 민심을 넘어 국론 분열 양상으로 확전될 조짐이 일고 있는데 정치권이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어떤 식으로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지 않겠나.
▲세종시 문제는 본질적으로 국가발전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방법론상의 차이일 뿐 누가 옳다 그르다 하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원안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수정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진정성 있는 대화를 통해 소통해야 해결이 가능하다고 본다.
―야권은 물론 여당내 친박계마저 수정안에 반대하고 있어 국회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사견이지만 현 정치구도상 법 통과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야당은 물론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만큼 수정안이 장기간 표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정치일정상 오는 6월에는 지방선거가 있고, 2년 후에는 총선과 대선이 맞물려 있다. 세종시 문제가 정치쟁점화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정파의 힘겨루기는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결국 1~2년 후에도 아무것도 된 것 없이 연기군민을 비롯한 충청인들의 상실감만 커지고 생활고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박근혜 전 대표와 비슷한 노선을 걷고 있는데 박 전 대표와 의견을 조율하거나 교환한 적은 있나.
▲박 전 대표를 만나거나 의견을 조율한 적은 없다. 국가발전을 걱정하는 마음이 방법론상 일치하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충청 출신으로 총리에 발탁된 이후 세종시 수정을 실질적으로 진두지휘해 온 정운찬 총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얼마되지 않은 총리에 대해 평을 한다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임명도 받기 전에 대안에 대한 구체적 방향이나 철학 없이 수정론을 제기한다거나 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보여준 일관성 없는 모습 등을 지켜보면서 오랫동안 학계에 계신 데서 오는 한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특히 정 총리는 말씀을 조금 아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 총리는 취임 이후에 7~8번에 걸쳐 도시의 성격을 바꿨다. 충청권이 가장 반발하고 실망한 것도 총리가 자꾸 말을 바꾸니까 신뢰를 많이 상실한 것이다. 수정안 발표 후 ‘자부심을 느낀다’ ‘명예를 걸겠다’ 등 절제되지 않은 발언은 오만방자하고 지극히 정치적 행보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