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7일 ‘노무현재단’에서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정치공작 분쇄 비대위’ 첫 회의를 참석하기 위해 한명숙, 이해찬 전 총리가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그러나 정치권에선 친노 측이 한 전 총리로의 후보 단일화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장벽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경선보다는 민주당 전략 공천을 원하고 있는 한 전 총리의 출마에 이미 서울시장 도전 의사를 밝혔던 기존 후보들이 반발하고 있고, 국참당 내부에서조차 쓴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무죄’를 주장하고는 있지만 한 전 총리가 재판 중이라는 점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노 인사들은 한 전 총리가 거대 여당에 맞설 최적의 후보라는 결론을 내리고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을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친노 그룹이 서울시장 선거 ‘필승 카드’로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한 전 총리의 ‘후보 내정설’을 따라가 봤다.
“다른 지역은 몰라도 서울만큼은 기필코 친노 세력 중에서 후보를 낼 것이다.”
최근 기자와 만난 한 친노 인사의 말이다. 참여 정부에서 고위 관료를 지내기도 했던 그는 “야권에서 한명숙, 유시민보다 경쟁력 있는 후보가 어디 있느냐”면서 “둘이 단일화를 이뤄내 출마한다면 독주하고 있는 오세훈 현 서울시장과 오차범위 내에서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야권의 유력 후보인 한 전 총리와 유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모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반드시 친노 인사들 중에서 서울시장 후보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두 사람은 오 시장 뒤를 이어 2, 3위를 다투며 다른 야권의 ‘잠룡’들을 멀찌감치 따돌리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친노 그룹이 서울시장 후보에 대한 지분을 주장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의도 주변에선 한 전 총리와 유 전 장관이 단일화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오 시장의 재선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여기서 친노 그룹의 고민은 비롯된다. 더군다나 한 전 총리(민주당)와 유 전 장관(국참당)이 서로 다른 당에 속해 있어 운신의 폭이 그리 넓지만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친노의 어깨를 무겁게 할 듯하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같은 친노 인사이긴 하지만 멀리 보면 지지층이 비슷한 둘은 정치적 라이벌이기도 하다. 지방선거의 하이라이트이자 ‘대통령 인턴’으로 불리는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포기하는 것이 쉽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른 진보 진영과의 단일화 논의 이전에 둘 중 한 명을 선택하는 것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국참당 창당을 놓고 이미 한 차례 서로 길이 엇갈렸던 친노 그룹으로선 분열이 곧 패배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단일 후보를 낼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현재 한 전 총리와 유 전 장관은 서울시장 출마에 대해 확실한 의사표시를 하지 않고 있지만 공식석상에서 여러 차례 긍정적인 발언을 한 바 있다. 한 전 총리는 지난 1월 5일 자신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친노 시민단체 ‘시민주권’의 신년 오찬회에서 “앞으로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여러분들과 국민들이 요청하는 결정에 따를 각오이며 마지막 힘을 쏟을 생각”이라며 출마를 시사했다. 유 전 장관 역시 최근 출마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해보겠다”며 그동안의 소극적 태도와는 다른 스탠스를 취하고 나섰다. 친노 측 유력 서울시장 후보 2인이 모두 출사표를 던질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하지만 친노 그룹 내부적으로는 한 전 총리를 서울시장 최종 후보로 내세우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전해졌다. 유 전 장관은 불출마로 가닥을 잡았다는 것. 한 친노 인사는 “그동안 한 전 총리 본인이 고사해서 그렇지 출마만 결심해준다면 당을 떠나 한 마음으로 도와줘야 한다는 논의는 있어 왔다. 한 전 총리가 검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은 이후 출마에 긍정적인 입장으로 선회했고 지난 연말과 올해 초 친노 인사들이 여러 차례 접촉해 의견을 조율했던 것으로 안다. 우리 측 ‘좌장’ 격인 이해찬 전 총리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귀띔했다.
정치권에서는 한 전 총리가 이미 선거 캠프를 꾸렸다는 소문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 전 총리가 선두에 서고 민주당의 전·현직 의원 3~4명과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관과 고위 공무원 등을 지냈던 인사들이 물밑에서 선거를 치를 채비에 한창이라는 것이 골자다. ‘5+4 회의’에 관여하고 있는 한 실무자도 “1월 들어 실무 회의를 여러 차례 가졌다. (서울시장 후보 문제는) 중요 사안이므로 당연히 얘기가 오갔다. 한 전 총리를 출마시키자는 쪽으로 중지가 모아졌고 이견이 없었다. 한 전 총리도 1월 초 선거 캠프에 참여할 사람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렇다면 유 전 장관이 보여주고 있는 행보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친노 그룹 안팎에선 이를 두고 ‘단일화 전략’의 일환일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일찌감치 후보를 정하는 것보다는 진보진영의 2, 3위 후보가 ‘줄다리기’를 하며 극적으로 손을 잡는 모양새를 통해 단일화 효과를 극대화시킨다는 것이다. 유 전 장관의 한 측근은 “(유 전 장관이) 여러 차례 한 전 총리와 경쟁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토로한 바 있다. 유 전 장관으로선 한때 총리로 모셨던 분에 대한 예우를 지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양보하는 정치인’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대권 행보에도 손해 볼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전 총리, 유 전 장관 측의 행보는 민주당 내 사정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에선 김성순 의원, 이계안 전 의원 등이 경선에 참여할 뜻을 밝혔고 그 외에도 자천타천으로 거론되고 있는 인사들까지 합하면 5~6명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민주당 상임고문을 맡고 있는 한 전 총리는 ‘전략공천’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내 기반이 취약한 한 전 총리가 경선에서 험난한 승부를 펼칠 수도 있을 것이란 관측 때문이다. 친노 측은 국참당에서 유 전 장관 출마 가능성이 계속해서 나오면 한 전 총리 ‘전략공천론’이 더욱 힘을 받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 승리에 사활을 걸고 있는 민주당이 유 전 장관과의 단일화를 위해서라도 한 전 총리를 후보로 지명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당 지도부도 한 전 총리 전략공천에 긍정적”이라면서 “친노뿐 아니라 진보진영 단일화에 한 전 총리만 한 인물이 현재로선 없다”고 잘라 말했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도 “친노 그룹에서 한 전 총리 단일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론을 선점하기 위한 민주당과의 기 싸움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친노 그룹 내에선 한 전 총리가 재판을 받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득’이 될 것으로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내려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 이 경우 ‘탄압 수사’ 논란이 불거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특히 지방선거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후 1주년 무렵에 치러지기 때문에 한 전 총리와 노 전 대통령 이미지가 ‘오버랩’될 가능성이 크다. 친노 그룹 역시 지방선거에서 대대적인 ‘노무현 마케팅’을 할 것으로 알려진 터라 그 파괴력은 더욱 배가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한 전 총리가 검찰에서 시달리면 시달릴수록 유권자 표는 늘어날 것이란 말도 들린다. 다만, 친노 측이 우려하는 것은 한 전 총리 재판이 장기화돼 지방선거에서 상대진영의 공격 ‘거리’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 전 총리가 넘어야 할 장애물은 내부에서도 존재한다. 특히 민주당이 한 전 총리를 전략공천할 경우 앞서도 언급했던 기존의 서울시장 예비 후보자들이 거세게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야권의 분열을 촉발시킬 수도 있는 셈이다. 김성순 의원과 이계안 전 의원은 당 지도부가 한 전 총리를 전략공천할 움직임을 보이자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서울시장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는 동교동계의 한 전직 의원 역시 기자와의 통화에서 “공당인 민주당에서 그런 비민주적인 행태를 보이겠느냐. 서울시민을 무시하는 처사다. 만약 특정 인사가 전략공천될 경우 탈당을 포함한 모든 대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예비 후보자의 한 측근은 “이런 말까지 하기는 좀 그렇지만 재판을 받고 있는 정치인을 후보로 내세워서야 되겠느냐. 왜 민주당이 일부 친노 세력에게 끌려다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유 전 장관이 몸담고 있는 국참당 일각에서도 한 전 총리로의 단일화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국참당의 한 당원은 “한 전 총리는 민주당 잔류파 아니냐. 유 전 장관을 비롯한 창당파에서 후보가 나오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당원 역시 “국참당 출범 이후 첫 선거다. 단일화가 중요하긴 하지만 최소한 독자 후보를 내서 끝까지 경선은 해야 하지 않느냐. 자칫 ‘민주당 2중대’란 소리를 들을까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이밖에 몇몇 당원들은 유 전 장관이 지난 2002년 대선 직전 개혁국민정당 창당을 주도했다가 1년여 만에 해산시키고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던 사례가 반복될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친노 그룹에서도 이러한 안팎의 걸림돌을 잘 알고 있다. 기자가 접촉한 복수의 친노 인사들은 “설령 우리가 한 전 총리로 단일화를 이뤄내더라도 그것을 야권 전체로 확산시키기까지는 험난한 가시밭길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성사되기만 한다면 한동안 명맥이 끊겼던 서울시장 자리를 되찾아올 수 있는 유일한 후보라는 교감도 커지고 있는 상태다. 과연 한 전 총리가 진보 진영의 단일 후보로 설 수 있을지 정치권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