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세균 대표(왼쪽)과 정동영 의원. | ||
지난 1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기자회견장. 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경기도지사 출마선언을 위한 ‘공식’ 기자회견을 마치고 기자들에 둘러싸여 ‘비공식’ 기자회견을 갖는 자리에서 ‘이종걸·정동영 연대’를 공식화했다. 이미 관련 보도는 숱하게 쏟아진 상황이었지만 본인 입으로 이를 인정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의원은 한 발 더 나아가 “이 자리에 정 의원님이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마음은 함께하고 있을 것”이라며 “어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를 만나 ‘야권 연대를 통해 승리하라’는 덕담을 들었다”며 ‘백그라운드’를 자랑했다.
지방선거를 넉 달여 앞두고 민주당 내 주류·비주류 간 치열한 신경전이 가속화되고 있다. 연말연초만 해도 당권투쟁을 놓고 벌어졌던 기싸움은 이제 지방선거 공천과정에 자파 인사를 심기 위한 각축으로 확전되는 양상이다. 당 안팎에서는 “사실상 ‘정세균 대 정동영’의 대리전이 전국 각지에서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당장 이 의원의 기자회견장 주변 풍경만 봐도 이 같은 대립구도는 그려졌다. 주류 측 인사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정 의원 측근들과 비주류 그룹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 의원의 옆자리에는 최근 당권투쟁 과정에서 정세균 대표 측 공격에 앞장섰던 강창일, 장세환, 이춘석 등 민주당 비주류 의원 모임인 ‘국민모임’(국민과 함께하는 국회의원 모임) 의원들이 서 있었다. 또 노동조합법 강행처리로 당에서 중징계 처분을 앞두고 있는 추미애 의원도 명동 농성현장에서 한걸음에 달려와 이 의원을 격려했다. ‘강성 비주류’이자 경기지사 출마가 예견됐던 천정배 의원마저 이 의원 옆자리에 함께 서줬다. 이들 모두 정 의원 복당문제 해결을 위해 이심전심 힘을 보태주는 인사들이었다.
같은 날 불과 몇 시간 전 서울 영등포 민주당사에서는 정반대의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노(무현)의 남자’ 안희정 최고위원의 충남지사 출마 기자회견이 벌어진 자리에서였다. 정 대표와 이미경 사무총장 등 지도부와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참여정부 출신 주요 인사들, 친노 386인 강기정, 백원우, 이광재 의원 등 100여 명이 몰려와 주류의 위용을 자랑했다. 이 자리엔 국민참여당 ‘주권당원’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도 참석했다.
안 최고위원은 “지역주의 극복, 국민통합은 정치인 김대중, 노무현의 필생의 과제였고 숙원이었다”며 “김종필, 이회창, 정운찬 등 충청도 지도자들이 보여준 ‘2인자 노선’을 극복하고 충청도의 역사를 다시 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격려사에 나선 정 대표도 “안희정 최고위원이 6·2 지방선거에서 꼭 충남도지사로 꼭 당선됐으면 좋겠다”며 ‘자파’임을 숨기지 않았고, 한 전 총리와 유 전 장관 역시 “반드시 승리해 노무현 대통령의 유산인 세종시를 지키고 이명박 정권의 오만과 폭정을 심판해주길 믿는다”고 거들었다.
이 같은 정세균·정동영 세 대결 구도는 전국 각지에서 전개되고 있다. 앞서 경기지사를 놓고는 정 대표가 지원하는 김진표 최고위원과 정 의원이 돕는 이 의원이 맞붙는다. 또 인천시장 후보 경선도 정 대표 측근인 김교흥 전 의원과 정 의원 측 유필우 전 의원이 일합을 겨룰 예정이다.
광주시장 후보군 가운데선 참여정부 장관 출신인 이용섭 의원과 양형일 전 의원이 각각 정 대표, 정 의원과 가까운 인사로 분류된다. 정 대표와 정 의원은 각각 광주에서 열린 이 의원과 양 전 의원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세몰이를 돕기도 했다.
전북 역시 김완주(정 대표 측) 현 지사와 정균환 전 의원(정 의원 측)의 양자대결로 굳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최대 격전지가 될 서울은 한명숙 전 총리 대세론이 워낙 강해 정 의원 측에 뚜렷한 대항마가 보이지 않지만, 일각에선 송영길 최고위원이 ‘정동영세’를 등에 업고 서울시장에 출사표를 던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하고 있다.
기초단체장은 더 치열한 싸움이 예상된다. 당의 한 관계자는 “호남권을 중심으로 정 의원 쪽에 줄을 댄 출마희망자들이 한둘이 아니다”며 “당 안팎에서 정 의원 복당을 압박하는 여론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류 쪽에선 정 의원 행보에 대해 노골적인 성토를 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한마디로 “당원도 아닌 사람이 당 경선에 개입해도 되는 것이냐”는 비판이다. 주류 측 한 인사는 “은인자중하더라도 조기복당을 마냥 반길 상황이 아닌데 너무 설친다는 느낌이 든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때문에 당초 1월 말쯤으로 정리될 것으로 알려졌던 정 의원 복당 건이 이런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해 연기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실제 민주당 지도부는 지난 1월 28일 최고위원회를 열고 정 의원이 지난 재보선 과정에서 친노그룹을 강하게 비판한 데 대해 ‘진정성 있는’ 유감표시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들어 2월 2일 당무위원회의 복당 안건 채택을 보류키로 결정했다.
정 의원 측은 일단 즉각적인 반응은 보이지 않고 있다. 복당 심사를 앞두고 괜한 분란을 일으켜 구설에 올라봤자 실익이 없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다만, ‘세몰이’ 지적에 대해선 “실재하는 정 의원의 영향력을 감춘다고 감출 수 있겠느냐”(핵심 관계자)며 다소 억울해하는 표정이다.
정 의원 역시 최근 기자들을 만나 “지방선거 구도가 민주당에 유리하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인을 추대하거나 대세론을 조장하는 흐름으로 가서는 본선 싸움이 힘들어진다”며 “당원과 국민들의 의사를 물어 경쟁구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 당내 주류 진영의 비판을 일축했다.
양측 간 대결구도에서 주목을 받는 것은 손학규 전 대표의 선택이다. 강원도 춘천에 칩거 중인 손 전 대표는 현재까지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지만, 결국 정 대표 측과 손을 잡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손 전 대표가 주류 측 지원을 받는 이용섭 의원을 응원하기 위해 지난 1월 21일 광주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장을 찾은 것이나 정 대표가 손 전 대표의 측근인 신학용 의원을 최근 비서실장으로 발탁한 것 등이 ‘정·손 연대’를 방증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대중성(손 전 대표)과 조직(정 대표) 등 서로의 강점이 달라 상호보완이 가능하다는 면에서 이 같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양원보 세계일보 기자 wonbos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