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왜 이러십니껴~’
정 대표는 다음날 총리 관저에서 열린 고위당정회의가 끝난 뒤인 밤 10시경 장 전 총장을 조용히 불러 ‘대통령 윤허를 받았으니 사표를 써라’며 일방적으로 통고했다고 한다. 이에 ‘열이 받은’ 장 전 총장은 곧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과 공성진 최고위원 등 친이그룹에게 전화를 걸어 울분을 토했고 다음날 사퇴 기자회견을 하겠다는 등 거세게 반발했다.
이에 이 위원장 등은 청와대에 전화를 걸어 사실 관계를 확인했고 박형준 정무수석이 부랴부랴 장 전 총장을 만나 ‘사실은 그게 아니다’라며 무마를 했다고 한다. 그뒤 장 전 총장 경질 해프닝은 다시 유임으로 분위기가 바뀌는 등 친이그룹과 정몽준 대표 간의 권력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이 과정에 대해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가끔 민감한 현안 지시를 내릴 때 너무 애매모호하게 얘기를 해 나중에 당사자들끼리 혼선과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애초 정 대표와의 독대 때 청와대 정무라인과의 사전 조율이 되지 않았던 장 전 총장 경질 문제를 건의 받고 ‘애매모호하게’ 수락 의사를 비쳤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정 대표가 경질을 전격 통고했지만 그 사실을 몰랐던 장 전 총장의 반발이 예상 외로 커지자 청와대는 다시 장 전 총장의 손을 들어주는 등 혼선이 빚어졌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 대표에게 확실하게 장 전 총장 경질 의사를 밝혔다면 장 전 총장도 그렇게까지 반발을 할 수 없었을 것이란 해석이다. 여기에는 당·청 간 사전 조율의 부재도 있었지만 이 대통령이 민감한 사안에 대해 확실한 언질을 주지 않아 혼선이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예는 지난해 7월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의욕적으로 개혁 행보를 보였던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과 안병만 교육부 장관과의 갈등에서도 나타났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 인사는 “당시 이 대통령은 곽 위원장이 수개월 동안 준비했던 사교육과의 전쟁을 보고받고 그 자리에서 흔쾌히 오케이 사인을 보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 뒤 안병만 장관 등 교육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곽 위원장의 개혁행보도 벽에 부딪혔다. 그때 이 대통령이 애초 곽 위원장에게 약속한 대로 끝까지 힘을 실어줬으면 좋았는데 파문이 커지자 자신의 ‘은밀한 재가’를 뒤집고 안 장관의 손을 다시 들어줬던 것이다. 이 대통령이 가끔 민감한 사안에 대해 애매모호하게 ‘여기도 좋고 거기도 좋고’ 식의 결정을 해 나중에는 결국 양측 갈등이 더 깊어지는 꼴이 된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MB가 때론 좀 모호한 데가 있다.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그것도 맞고 저것도 맞고 식이라서 무책임하다는 평가도 있었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밑에서 ‘감시’ 받으며 20년 동안 CEO를 하면서 생긴 일종의 처세술 같다”라고 말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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