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진 열린사이버대학 이사장이 2008년 부설 연구기관인 ‘오픈소스커뮤니티연구소’ 개소식에서 개회사를 하는 모습. 뉴시스 | ||
변 이사장은 지난 2007년 31세의 나이에 열린사이버대학 재단을 인수하며 교육계의 주목을 받았던 인물. 일반인들에게는 ‘무명’에 가깝지만 변 이사장은 그간 정·관계는 물론 재계에까지 폭넓은 ‘마당발’ 행보를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변 이사장은 참여정부 시절 일부 386정치인들과 골프를 치며 친분을 다졌고 현 정권 몇몇 유력인사들과도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현재 검찰은 변 이사장이 빼돌린 돈의 흐름을 추적하는 한편, 30대 초반의 ‘그녀’가 학교 재단을 인수할 수 있었던 과정에 대해서도 살펴볼 계획이다. 외부 입김이 작용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변 이사장 구속에 왜 정치권이 ‘긴장 모드’로 돌입하고 있는지 그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양부남 부장검사)가 변 이사장과 관련된 첩보를 입수한 것은 지난해 9월. 검찰 관계자는 “학교 재단 이사들이 돈을 빼돌리고 있다는 내부 보고가 있었다. 4개월간 변 이사장을 비롯한 몇몇 이사들의 계좌를 추적하고 재단법인 사무실을 압수한 결과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귀띔했다.
변 이사장은 지난 2007년 5월 학교재단을 인수할 때 빌린 20억 원을 교비로 변제했을 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학교 운영에 쓴다는 명목으로 대학 계좌에서 68억 원을 개인 명의로 인출해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교육과학기술부와 사학진흥재단이 회계감사에 나설 것에 대비해 계좌의 잔액 증명서를 위조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검찰은 1월 18일 변 이사장을 체포하고 사흘 뒤 구속했다.
현재 검찰은 또 다른 재단 이사인 강 아무개 씨와 박 아무개 씨 소재를 쫓고 있다. 특히 강 씨가 재단 인수부터 운영까지 깊숙이 관여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강 씨 체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변 이사장이 돈을 빌린 금융기관 역시 강 씨 장인이자 재단 이사이기도 한 장 아무개 씨가 소개해준 곳이었다.
변 이사장은 검찰 조사에서 “강 씨가 주도한 것이다. 나는 앞에 나섰을 뿐 뒤에 있는 강 씨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다”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 측은 “(변 이사장과 관련된) 증거는 충분하다. 강 씨와 박 씨는 공범으로 보고 있다. 변 이사장과 강 씨는 사석에서 ‘오빠 동생’으로 부를 만큼 친분이 있는 사이다”라고 말했다.
학교 내에서는 이미 지난해 여름부터 이사진이 교비를 빼돌리고 있고, 그중 상당액을 변 이사장 개인이 쓰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한 졸업생은 “젊고 참신한 현 이사진이 학교를 인수할 때만 해도 기대에 부풀었었다. 그러나 학교 운영이 점점 어려워져만 갔다. 이사진이 돈을 빼돌렸기 때문이다. 이를 문제 삼은 P 교수는 직위해제를 당하기도 했다. 우리가 확인하기는 어려웠지만 변 이사장이 유력 정치인의 딸이라는 루머까지 흘러나왔다”고 털어놨다.
재단의 한 전직 이사도 “서류상이나 절차상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76년생인 변 이사장이 학교를 인수한다고 할 때 의심쩍은 면은 있었다. 변 이사장과 함께 학교를 찾아왔던 이사 강 씨(70년생) 역시 너무 젊었다. 이 때문에 그들의 뒤를 봐주는 세력들이 있을 것이라는 말이 파다했다. 변 이사장 역시 자신과 친한 정치권 인사 이름을 들먹이기도 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검찰에서도 2007년 변 이사장이 학교재단을 인수하는 과정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수사 과정에서 변 이사장이 몇몇 정치인들과의 친분을 과시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실제로 재단을 인수하기 전 그들과 몇 차례 만난 것은 확인을 했다. 30대 초반에 불과한 변 이사장이 어떻게 정치인들을 만날 수 있었는지 의문이 가는데 중간에 강 씨가 다리를 놔줬을 가능성이 크다. 강 씨 신병이 확보되면 확인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서 이번 사건의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학력위조에서 시작된 신정아 사건이 결국엔 정치인 리스트로까지 번지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면서 “변 이사장 이름을 들어보긴 했는데 참여정부 시절 몇몇 386 의원들과 친하게 지냈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재단 인수 후 변 이사장은 다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한때 벤처기업 M 사의 이사직에 올랐고 한국여성경영자총협회 이사와 로터리클럽 총무를 맡았다. 몇몇 사회단체에 후원금을 쾌척하기도 했다.
학교 관계자는 “변 이사장이 학교에 자주 오지는 않았지만 워낙 성격이 활발해 많은 직원들이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나이가 어려서 불편했을 수도 있을 텐데 먼저 싹싹하게 말을 붙였고 옷도 세련되게 입었다. 성공한 커리어우먼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로터리클럽 산하의 한 위원회 관계자 역시 “변 이사장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2007년과 2008년에 활발히 활동하다가 2009년부터는 뜸했던 것으로 안다. 어린 나이에 대단하다는 칭찬이 많았고 달변이라는 평을 들었다”면서 “횡령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안타까워했다.
변 이사장은 정치권과의 교류도 빼놓지 않았다. 특히 골프 실력이 뛰어나 몇몇 정치인들과 필드에서 어울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7년 가을에 변 이사장과 경기도에 위치한 골프장에서 함께 골프를 쳤다는 한 정치권 인사는 “학교 선배로부터 ‘젊고 괜찮은 여성 교육가가 있다’는 말을 듣고 소개받은 사람이 변 이사장이었다. 두 번째 만난 날 골프를 치러 갔다. 당시 서른한 살이었는데 실력이 상당했다.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도 식견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정치를 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물음엔 부인을 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언젠가 정치를 할 뜻이 있는 듯했다. 나 말고도 몇몇 정치인들과 이미 만났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뀐 후로는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돈 씀씀이가 커 재력가인 줄 알았다. 학교에 거액의 투자를 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고 덧붙였다.
변 이사장 인맥은 재계와 금융권에도 닿아 있었다. 변 이사장은 삼성 SK 롯데 등 굴지의 대기업과 금융공기업의 몇몇 임원들과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였다고 한다. 특히 변 이사장은 ‘자신의 돈’을 투자할 대상을 찾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이들로부터 자문을 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빼돌린 돈의 사용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필요할 경우 변 이사장의 재계 및 금융권 지인들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검찰 관계자는 “학교 재단 이사장, 한국여성경영자총협회 이사 등과 같은 화려한 명함이 재계 인사들에게 신뢰를 줬던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변 이사장은 벤처업계에서도 ‘잘나가는’ 교육가이자 투자자로 통했다. 본인이 직접 한 벤처회사의 경영에 참여하기도 했을 뿐 아니라 공범으로 의심받고 있는 강 씨는 홍콩의 다국적 투자회사와 접촉을 가졌었다고 한다.
변 이사장은 현 정권 실세들과도 친분을 쌓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엔 현직 국회의원을 포함해 이 대통령 측근으로 꼽히는 일부 인사들도 거론되고 있다. 2008년 5월 대학부설 연구기관인 ‘오픈소스커뮤니티연구소’ 개소식에선 여당 3선 의원이 축사를 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열린사이버대학이 지난해 10월 ‘원격대학’에서 ‘고등교육기관’으로 전환된 것을 놓고 의구심을 나타내기도 한다. 고등교육기관으로 바뀌면 대학원 산학협력단 학교기업 등의 추가 설치가 가능해진다. 또한 학위가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수여’되기 때문에 더 많은 학생들을 유치할 수 있다. 지난해 교육계에서는 열린사이버대학이 재정상태가 열악하고 횡령의혹 등이 불거져 고등교육기관 전환이 힘들 것이란 견해가 우세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열린사이버대학은 예상을 깨고 고등교육기관으로 선정됐다. 변 이사장과 정치권과의 ‘관계’가 주목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변 이사장이 검찰 내사를 받던 시기인 지난해 12월 열린사이버대학이 소유한 부동산 중 일부를 자신이 관여했던 M 사에 매각한 것도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부동산을 사들인 M 사는 그 이후 이를 담보로 잇달아 제2금융권을 통해 총 10억 원이 넘는 돈을 대출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거래가 이뤄지기 직전 변 이사장이 M 사 이사직에서 물러났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기자로부터 들은 한 법조 인사는 “변 이사장은 M 사와 열린사이버대학 양측에 모두 관련돼 있다. 부동산 거래 직전에 이사직을 던진 것도 오해를 살 것을 염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열린사이버대학의 부동산 매각대금과 M 사가 빌린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를 검찰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수사 무마를 위한 정치권 로비자금 혹은 구멍 뚫린 재정 상태를 메우는 데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여권의 한 관계자는 “(현 정권 인사들과) 단순한 친분이 있는 것만 가지고는 뭐라 할 수 없는 것 아니냐”면서 “지금까지는 돈의 대부분을 변 이사장과 강 씨 등이 개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아직 다 밝혀진 것은 아니어서 예의주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전 정권에서 변 이사장이 재단을 인수하는 과정에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검찰이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수사해 국민들과 또 학교 관계자들에게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놔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 수사가 빼돌린 돈의 사용처와 함께 지난 참여정부 시절 변 이사장의 재단 인수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검찰 관계자는 “변 이사장이 폭넓은 인간관계를 가졌던 만큼 돈도 많이 썼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변 이사장의 ‘활동비’ 내역을 추적하다보면 정치권 로비와 같은 의혹도 자연스레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신정아 미술계 컴백 타진 중
자서전으로 먼저 발판 마련?
이런 상황에서 기자는 신 씨와 가깝게 지냈던 지인들을 통해 그녀가 조심스럽게 미술계로의 ‘컴백’을 타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한 유명 갤러리에 근무하는 A 씨는 “미술계에선 아직 신 씨 재능을 아깝게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신 씨가 작년에 한 갤러리 관장의 초청으로 그림을 보고 간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작품은 물론 갤러리 운영에 관해 꽤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던 것으로 안다. 수감생활과 휴식을 취하면서 미술계 발전에 관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것은 곧 신 씨가 미술계로의 복귀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털어놨다. 또 다른 갤러리 관계자 역시 “신 씨가 <문화일보>에 실린 누드사진이 합성이라는 황규태 사진작가의 편지를 공개한 이후 조금씩 활기를 찾고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 상반기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는 자서전을 통해 신 씨가 ‘명예회복’을 모색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앞서의 A 씨는 “자서전 출간 얘기는 알 만한 사람은 안다. 신 씨가 솔직히 심경을 고백할 것이다. 당시 신 씨를 향한 국민들의 비난이나 언론의 관심은 한 개인이 감당하기엔 너무 컸던 것도 사실 아니냐”면서 “자서전이 호응을 얻으면 신 씨를 미술계에서 볼 수 있는 날도 빨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