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10개월 만에 민주당으로 복귀한 정동영 의원.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먼 길을 떠났다가 다시 고향에 돌아온 심정입니다. 그동안 너무 많은 심려를 끼쳤습니다. 당과 당원 가족 여러분들께 미안했습니다. 당과 당원 가족들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하나 되어 승리하길 바라는 국민들께 너무나 죄송했습니다. 넓게 이해해주시고, 품어주시길 바랍니다.”
정동영이 돌아왔다. ‘정동영의 귀환’은 민주당에 국회의원 의석 하나가 더 늘었다는 것 이상의 의미다. “감춘다고 감춰지지 않는, 실재하는 영향력”(정 의원 측 관계자)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선후보였다는 상징성에 민주당 텃밭인 호남, 특히 전북에 확고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는 정 의원의 힘은 민주당 역학구도에 지각변동을 불러올 게 자명하다. 정세균 대표와 친노무현·386 그룹 등 주류 일변도의 당 운영도 일정 부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게 됐다.
주류도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복당 과정에서부터 상당한 압박을 가했던 게 이를 방증한다. 실제 복당과정에서 여러 차례 고비가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당내 복당 논의가 연기됐던 것이다. 정 의원 측에선 “말려 죽이려는 것이냐”며 복잡한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었다.
복당이 최종 결정된 10일은 복당신청 유효기간 마지막 날이었다. 민주당의 당규는 복당신청서를 제출한 지 30일 이내에 그 처리 여부를 결정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지난달 12일 복당신청서를 제출했던 정 의원 복당이 만약 이날을 넘겼더라면, 원인무효가 될 판이었다. 주류 측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정 의원 측에선 고의성을 의심하는 기류가 읽힌다.
그렇다면 당장 정 대표를 위시한 주류와 정 의원의 비주류 진영 간 ‘당권전쟁’이 시작될까. 일단 정 의원 측은 ‘로우키’(low key·이목을 끌지 않도록 절제하는 것) 행보를 걸을 것으로 보인다. 불필요하게 주류 측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4일 예정됐던 외곽조직 출범식을 연기한 것도 이 같은 ‘정중동’의 방증이다.
정 의원은 복당 기자회견에서 여전히 자신을 마뜩잖게 생각하는 당내 기류를 의식한 듯 “세력화, 그런 말씀은 질문하지 말아 달라. 지금 그런 말은 입에 담을 상황이 아닐 만큼 상황이 절박하다. 당내 세력화가 아닌, 국민 속에 당력을 넓히는 역할을 하겠다”며, 구체적으로 “‘민주당 지지율 30%시대’를 만드는 데 기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불편한 사이’인 정 대표 및 친노그룹과의 관계 설정에 대해서도 정 의원은 각각 “정 대표와는 정치를 같이 시작했고, 만나면 허심탄회하게 있는 이야기를 다 털어놓고 말하는 사이다.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협력할 것”, “역지사지하면 차이점을 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내부 정적’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정 대표 측도 “크게 신경 쓰지 않겠다”는 모습이다. 대신 정 의원 복당을 계기로 ‘통합의 리더십’을 내세워 인재영입과 야권연대에 박차를 가한다는 복안이다. 정 의원 복당이 이뤄진 10일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 야 5당의 선거연대논의기구 발표가 이뤄진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당 일각에서는 정 대표 측이 춘천에 칩거 중인 손학규 전 대표를 불러 세워 정 의원의 존재감을 흐려 놓는 방법을 택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양측 간 지지기반이 상당부분 겹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손 전 대표가 2008년 초 통합민주당 대표가 됐을 때와, 같은 해 7월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가 당선됐을 때의 주요 지지그룹은 대체로 수도권과 386이었다.
이해관계도 일치한다. 정 대표 지지의 한 축인 ‘친노’는 손 전 대표에게는 아쉬운 영역이다. 경기지사를 지낸 손 전 대표의 수도권 영향력은 정 대표가 필요로 하는 부분이다. 이에 지난해 4월과 10월 재·보선에서 양측은 계속 우호적 관계를 이어왔다. 최근 정 대표가 비서실장으로 손 전 대표 측근인 신학용 의원을 선임한 것이 이런 관계의 한 징표다.
때문인지 정 의원도 손 전 대표와 당장 각을 세울 것 같지는 않다. 정 의원은 복당 기자회견에서 “마침 전날(9일) 손 전 대표의 누님 상가집에 가서 상당히 긴 시간을 얘기했다. 산에 계시지 말고 내려와서 당을 도와달라고 했다”며 함께할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앞으로 한두 달 새 벌어질 지방선거 입후보자 공천과정은 이들 간 격한 충돌을 견인할 뇌관이다. 특히 정 의원이 최근 사석에서 “지방선거에 출마할 후보는 ‘추대’가 아닌, ‘경쟁’을 통해 뽑아야 한다는 게 소신”이라며 일부 광역단체장 후보 선출 과정에서 감지되는 ‘대세론’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이 같은 관측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이는 사실상 당내 경선에서 주류 측 후보에 맞설 ‘대항마’를 세우겠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경기지사를 비롯해 인천, 호남권 등 일부 광역단체장 경선이 양측의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또 천정배·추미애 의원 등 중진들과 비주류 의원모임인 ‘국민모임’ 등과의 연대도 한층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이다.
그러나 진짜 승부는 ‘지방선거 이후’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정 대표가 차기 당권 확보를 위한 물밑작업에 나선 상황에서 정 의원 역시 이를 견제하기 위한 맞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최고위원은 “주류든 비주류든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민주당은 공멸의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며 “지방선거를 앞두고 눈꼴 사나운 당권 투쟁은 일어나서도 안 되고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선 민주당이 수도권에서도 승리한다면, 정 대표는 연임을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손 전 대표의 선택이 변수지만, 어떻게든 정 의원의 입지는 위축되고, 정면승부는 유예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정 대표는 치명적 타격을 입기 십상이다. 그러면 차기 당권 싸움은 정 의원과 손 전 대표 측의 대결로 압축될 여지가 넓어진다.
양원보 세계일보 기자 wonbos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