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지난 11일 정책의원총회에서 민주당으로 복당한 정동영 의원(오른쪽)이 정세균 대표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민주당 주류 측 한 관계자는 최근 복당한 정동영 의원의 ‘광주 나들이’를 보고 상당히 못마땅한 눈치였다. 복당 기자회견에서 “당과 당원에게 깊이 사과드린다”, “넓게 이해하고 품어달라”며 한껏 몸을 낮추던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정 의원은 지난 2월 16일 광주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면서 ‘실력자’로서의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자신이 광주시장·전남지사 후보로 지원하고 있는 양형일 전 의원과 주승용 의원을 양옆에 세우고 수백 명의 측근·지지자들과 함께 등장했던 것. 더군다나 광주 지역언론과의 기자간담회에서는 지도체제 문제와 지방선거 공천방식을 놓고 주류 측 논리에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기도 했다. 당 안팎에서는 6·2 지방선거와 전당대회를 겨냥한 포석 깔기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저는 원칙적으로 ‘국민경선론자’입니다. 국민과 시민을 믿어야 합니다. 당원과 지지자와 시민의 손에 의해 선출되는 후보가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열과 바람이 나옵니다. 야당은 돈과 조직이 아닌, ‘바람과 열기’로 해야 합니다.”
정 의원은 이날 광주 기자간담회를 통해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비책으로 꺼내든 ‘시민공천배심원제’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 의원은 “시민배심원제가 시민사회와 협력을 끌어내는 데는 유용한 도구일 순 있을 것”이라면서도 방점은 ‘국민경선제’에 찍었다. 앞서 라디오에 출연해 꺼냈던 “(배심원제는) 쓸모 있는 도구이겠지만 서울시장 후보를 뽑는 데 몇 백 명이 모여 결정하는 것은 감동과 파괴력이 없을 것”이라는 말의 연장이었다.
정 의원은 또 정 대표가 최근 언급한 ‘호남 물갈이론’에 대해서도 상당히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물갈이는 아래로부터 이뤄져야 한다. 광주시장을 예로 들면, 광주시민의 손에 의해 물갈이돼야 한다”며 정 대표를 위시한 주류 세력의 ‘찍어누르기식 물갈이’를 경계했다.
이에 대해 정 의원 측은 “선거 승리를 위한 대안 마련 차원이지 지도부에 각을 세우려는 뜻이 아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주류 측은 “그 대안을 (지도부도 아닌) 정 의원이 고민하려는 것이냐”며 눈을 흘기고 있다.
이를 의식한 때문이었을까. 정 대표는 같은 날 갑작스럽게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시민배심원제’와 ‘호남물갈이론’ 등 여러 사안에 대한 기본입장을 밝혔다.
“내 입으로 ‘물갈이’란 천박한 표현을 써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일단 ‘고인 물’은 썩는 것 아닙니까. 아무런 변화가 없고 기득권이 유지되는 그런 공천은 잘 된 공천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했다면 자리를 물려주고 나갈 수 있다고 보는데요.”
사실상 정 의원의 ‘광주 발언’에 대한 반박이었다. 특히 배심원제에 대한 반대 기류가 있다는 질문에, “반대하는 것은 그 사람들 ‘자유’”라며 “결국 최종 결정은 최고위원회에서 하는 것”이라고 말해 정 의원 측에 경고를 보낸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심지어는 지방선거에서의 ‘정동영 역할론’에 대해선 “우리 언론은 참 성급한 것 같다. 아직 그런 것까진 생각해본 적은 없다”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양측 진영 간 논리 싸움도 한창이다. 주류 측은 국민경선제가 ‘동원 선거’로 얼룩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국민 참여가 저조할수록 동원 규모에 따라 경선 결과가 좌우되는 폐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주류 측 핵심관계자는 “국민참여경선 방식으로 치러졌던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경선 때도 정 의원 측의 집요한 동원 선거를 경험하지 않았느냐”며 정 의원의 노림수를 경계했다.
또 야권 선거연대 논의를 진행 중인 상황에서 유시민, 노회찬 등 타당 인사들과 함께 경선을 치르는 것은 현행 선거법상 불가능하다는 점도 지적한다. 배심원제가 가장 현실적 대안이며 국민참여경선을 치르더라도 여론조사를 가미하는 ‘절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 의원 측은 “당적이 서로 다르더라도 경선 규칙 등만 합의가 되면 ‘전술정당’(페이퍼정당)을 만들어 후보를 선출할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또 배심원제가 ‘태생적 한계’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배심원단 규모가 2000명이 넘는 데다 일반 배심원도 지역별로 100명에 달하는데, 이들을 한 장소에 불러 심사를 맡길 경우 거마비 지급은 불가피하다는 것. 그러나 이 경우 선거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 의원과 가까운 한 인사는 “최근 당에서 선관위에 유권해석을 의뢰한 결과, 실비 지급은 선거법 위반이란 회신을 받았다”며 “아마도 다른 방법을 강구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양측의 신경전은 지도체제를 놓고도 이어졌다. 정 의원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도부와 나머지 의원들의 소통에 다소 간극이 있는 것 같다”며 현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대표 경선에서 탈락한 쪽은 당무에서 완전히 소외돼 당내 논의에 참여할 기회를 봉쇄당한다는 것이다. 또 ‘대표 따로’ ‘최고위원 따로’식의 지도부 구성에도 이의를 제기했다. “단일선거로 득표순에 의해 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기존처럼 대표와 최고위원을 분리 선출할 경우, 대표 1인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폐해를 지적한 것이다.
이 같은 주장 이면에는 정 대표 혼자 힘으론 리더십 공백 상태인 민주당을 이끌 수 없다는 견제심리가 깔려 있다. 비주류 측 한 재선의원은 “매일 텔레비전 뉴스에 정동영·손학규·정세균 등 당내 간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장면만 나와도 민주당 지지율은 반등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실었다.
정 대표는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16일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집단지도체제 문제는) 전당대회 때 가서 얘기할 사안”이라며 “다 때가 있는 것이고, 지금은 지방선거 얘기에 집중을 해야 한다”며 논의 확산에 제동을 걸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손학규 전 대표도 지방선거를 앞둔 4월 중 복귀할 것으로 점쳐지는 만큼, ‘정·정·손’ 3자의 대결구도가 본격화하면 ‘게임의 법칙’을 정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당내 파장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원보 세계일보 기자 wonbos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