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민주당 복당 기자회견을 한 우근민 전 제주지사. 그는 19일 결국 탈당을 선언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지난 3월 19일 민주당 제주도당 사무실. 우근민 전 제주지사는 민주당 탈당과 제주지사 무소속 출마를 발표하는 내내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3월 3일 ‘단 하나의 필승카드’라는 평가와 함께 민주당에 복당했을 때만 해도 이런 ‘비극’이 닥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우 전 지사는 “더럽혀진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민주당이 ‘우근민 파동’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이다. 성희롱 전력이라는 ‘아킬레스건’이 있던 우 전 지사를 복당시켜 ‘쉽게’ 선거를 치르려던 민주당이 ‘갈지(之)자’ 행보 끝에 명분도 실리를 모두 잃게 됐기 때문이다. 논란은 결국 민주당의 ‘우근민 토해내기’로 보름여 만에 일단락됐지만, 후폭풍은 만만찮은 모습이다.
일단 모양새가 전형적인 ‘감탄고토’(甘呑苦吐·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라 당이 ‘신뢰’를 잃었다는 지적이다. 공천심사위원장인 이미경 사무총장은 “우 전 지사가 (선거사무소 개소식 연설을 통해) 성희롱에 대해 진정 어린 반성과 사과를 하겠다는 말을 뒤집은 게 후보 부적격 결정의 중대한 기준이 됐다”고 했다.
그러나 우 전 지사는 “개소식 연설에는 그 어디에도 대법원 판결 자체를 부정하거나 사과를 뒤집은 말이 없고, 개소식에 지도부 어느 누구도 내려온 사람이 없다”며 “이미 ‘제거’ 방침을 정해 놓고 국민들에게는 핑계거리를 대기 위한 공작”이라고 반발했다.
당장 제주지역이 술렁이고 있다. 일부 도의원들은 “중앙당이 먼저 당 복귀를 요청해놓고 이제 와서 부적격 판정을 내린 것은 신의를 저버린 행위”라며 우 전 지사와의 동반 탈당 가능성도 내비치고 있다.
제주지사 선거판도도 예측불허가 됐다. 제주지역 한 의원은 “제주도와 제주도민을 우롱한 당 지도부는 정말 정치를 못한다”며 “민주당에 우호적이던 도내 분위기가 급변해 지사 선거뿐 아니라 도의원 선거까지 어려워지게 생겼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문제는 다른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것. 당의 한 관계자는 “고희범 예비후보나 김우남 의원 정도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게 대체적인 여론”이라고 말했다. 박지원 정책위의장이 ‘느닷없이’ 제주 출신의 강금실 전 법무장관의 출마를 요청하고 나선 것도 이 같은 당내 우려를 반영한다는 지적이다.
당 복수 관계자들에 따르면, 우 전 지사 영입은 지방선거기획단장을 맡고 있는 김민석 최고위원의 작품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김 최고위원은 처음 성희롱 전력 시비가 일자 “그 문제는 8년 전 일이고, 그때도 사과했고 지금도 사과하고 있으며 큰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며 우 전 지사를 적극 옹호한 바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 남경필 인재영입위원장 등이 우 전 지사를 접촉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김 최고위원 등이 영입경쟁에 가세했던 것”이라며 “원래 우 전 지사는 작년 12월쯤 복당하려고 했지만 정동영 의원 복당이 늦춰지면서 미뤄졌고 그러다 결국 사단이 났다”고 말했다.
때문인지 우 전 지사는 김 최고위원에 대한 섭섭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우 전 지사는 지난 3월 17일 기자회견에서 “김 최고위원이 복당결정 과정에서 성희롱 사건에 대한 ‘사과소명서’를 제출토록 했다는데, 난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사실을 이야기해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당 지도부는 이런 상황을 미리 예측하지 못한 걸까. 한 핵심관계자는 “잠깐 소란스러울 수는 있을 것으로 봤지만, 당 전체가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될 정도로 궁지에 몰릴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부산 여중생 성폭행살해 사건이 결정적이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피의자 김길태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반감이 들끓으면서 우 전 지사에게 불똥이 튀었고, 그러면서 그의 성희롱 전력도 ‘실체’보다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일부 언론이나 여성단체에서는 성추행과 성희롱의 법적 의미도 구분하지 않은 채 우 전 지사를 ‘추행범’으로 몰아가는 등 다소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또 상대 예비후보가 모 언론사 대표 출신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도 있다. 지도부의 한 관계자는 “해당 언론사가 우 전 지사 성희롱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면서 불씨를 계속 살려나갔다”고 주장했다. 공천심사위원 중 ‘강성’ 여성위원들이 적잖게 배치돼 있었던 것도 우 전 지사에겐 악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삼고초려까지 하면서 영입한 ‘우근민 카드’를 쉽게 포기한 데는 수도권 선거전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뇌물수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한명숙 전 총리가 피의자인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진술 번복으로 무죄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당이 우 전 지사의 약점을 알면서도 영입에 목을 맸던 것은 한 곳의 광역단체장이라도 더 찾아와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며 “재판 결과에 따라 수도권 판세가 변하면, 그 여파가 제주까지 내려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원보 세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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